1주일 시한의 추적
아카가와 지로오 지음 / 대학출판사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일주일 시한의 추적이라... 시간은 일주일이다. 일주일 안에 인질을 찾아야 한다. 동생이 사람을 치어 죽이자 누나는 차마 동생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볼 수 없어 완전범죄를 조장하지만 그 죽은 사람에게서 나온 쪽지 한 장을 무시 못하고 인질이 된 누군가의 딸을 찾기 시작한다.

이렇듯 우리의 도덕심은 상대적이다. 내가 관련되었을 경우에는 모든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지만 내가 관련이 되지 않은 경우는 필요 이상으로 도덕적으로 매달린다. 그냥 처음부터 경찰에 신고했으면 좋았을 일에 끼어 들어 누군가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도 한다. 그래서 인연이란 묘하고 무서운 것이다.

아카가와 지로의 <일주일 시한의 추적>은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다. 하지만 인물과 지명을 한국적으로 바꿔서 미묘한 긴장감이 사라졌고 재미가 반감된 느낌이다. 이런 유치한 번역은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소의 참새 캐드펠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릴리윈은 떠돌이 음유시인이다. 마을의 금세공장인인 소문난 구두쇠 월터 오리파버의 아들 대니얼의 결혼에 그의 재주를 보여주다가 주전자를 깨트리고 쫓겨난다. 그가 쫓겨나고 얼마 후 지참금을 금고에 넣던 월터가 머리를 맞고 쓰러진 것을 딸 수잔나가 발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릴리윈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그를 쫓는다. 쫓겨서 달아나던 릴리윈은 수도원으로 뛰어 들고 수도원의 법에 따라 40일간의 유예기간을 얻는다. 그를 치료하던 케드펠은 릴리윈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그의 진실성을 믿고 조사를 시작한다.  

오리파버 집안의 하녀 래니트는 릴리윈이 범인이 아니라고 믿는 마을의 유일한 사람이다. 사랑은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며 시작된다. 빨래를 하던 날 수잔나는 래니트에게 릴리윈을 찾아가도록 휴가를 준다. 릴리윈은 밤늦게 래니트를 바래다주기 위해 위험을 각오하고 수도원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다음날 오리파버 집에 세 들어 살던 자물쇠장인이 죽은 채 강가에서 발견된다.  

캐드펠 시리즈는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정직한 사람들 위주로 사건이 구성된다. 법과 정의나 종교의 힘이 자칫 소외될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농노나, 나병환자, 떠돌이 음유시인, 하녀라 할지라도 그들이 억울하게 당하도록 놔두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떠돌이 음유시인 릴리윈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수도원은 그를 보호하고 캐드펠은 진상을 조사하고, 하녀 래니트가 인질로 잡히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휴 버링가는 노력을 다한다. 어찌 보면 아무 상관하지 않아도 말이 없을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들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정의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떠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인을 하게 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중세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도 가문이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였으니까. 그런 시대에 살면서 가족에게 이용만 당하고 방치된다는 것은 사람을 악하게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인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지 배우지 않아도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대비되는 인물을 통해 중세 영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다.   

억눌린 욕망은 언제나 분출될 출구를 찾아 헤맨다. 그 욕망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에 의해 형성된 거라면 그것은 더욱 끔찍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하게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고 걱정거리를 서로 나누며 함께 사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아래서. 누군가는 가족이 그냥 생기는 줄 안다. 화목한 가정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그런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서로에게 배려하고 끊임없이 양보한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달콤하게 할 수 있는 가. 그것은 달콤한 향기를 서로 끊임없이 내뿜었을 때 어느 한순간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그것은 어른들이 해야할 몫이다. 가족을 구성한 사람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그걸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반응들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어떤 것도 아이들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 어른들을 따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착하게 태어난 아이는 어른의 가르침이나 보살핌 없이도 아름답게 자란다. 우리는 그들을 천사라 부른다. 하느님께서 지극히 돌보시는 작은 천사. 이 작품을 읽으면 모두 착한 천사를 만날 수 있다.

세상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기는 사람, 학대를 당하는 자식, 힘이 없어 항변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서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마땅히 보호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기고 반성하게 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사회가 여전히 중세 사회만도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전히 억울한 사람들 천지고 아버지들은 여전히 자식들에게 군림하려고 한다.  

정말로 살 만한 세상은 요원한 것인지 답답하다. 우리에게는 캐드펠같은 정의롭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가 언제 나타날까. 휴 버링가와 같은 현명한 정치가는 언제 나타날까. 아니 우리 앞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우리 자신들이 과연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의문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잔소리하는 작품이 아니다. 도덕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12세기나 21세기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작품들은 청소년 권장도서로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 속의 처녀 캐드펠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던 고아남매 에르미나와 이베스, 휴고닌 집안의 마지막 사람인 이들은 적이 침입하자 힐라리아 수녀와 함께 시루즈베리로 향하던 중 실종된다. 캐드펠은 레오나드 원장의 부탁으로 엘라리어스 수사를 간호하다가 휴고닌 남매를 중간에 만났다는 그의 중얼거림을 듣게 된다. 하지만 엘라이어스 수사는 도적 떼를 만나 만신창이가 되었고 기억을 상실했다. 캐드펠은 그가 발견된 곳을 더듬어 수색하다 어느 허름한 집에 숨겨있던 이베스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얼어붙은 개울에 잠겨있는 힐라리아 수녀의 벌거벗은 시체를 발견한다. 한편 휴고닌 남매의 외숙으로 모드 황후를 따르던 로렌스 댄저스는 그의 기사인 올리비에 드 브레타뉴를 보내 실종된 외 조카들을 찾는다. 이베스에게서 누나인 에르미나가 에브라드 보테럴을 따라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지만 그곳에서도 에르미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부정한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부도덕한 생각은 생각 자체로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죄책감으로 가슴깊이 자리를 하고 끊임없이 괴롭힌다. 엘라이어스 수사는 그래서 괴로웠다. 아내를 잃고 수도원에 들어온 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힐라리아 수녀와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두려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엘라이어스 수사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라이어스 수사는 그녀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부정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사는 도적들에게 당해 기억을 잃고, 수녀는 벌거벗은 채 강물 속에서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어지러운 세상에는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는 존재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들은 도둑이고, 강도고, 살인자들이다. 그들이 무리를 이루고 치안이 불안한 마을을 약탈한다. 당하는 사람들은 힘이 없고 나약한 가난한 사람, 노약자, 부녀자들이다. 캐드펠은 수녀의 살인사건을 조사해야하고, 버링가는 그것과 더불어 사라진 황후 편에 속한 남매를 찾아야 하고, 또 약탈자들도 소탕해야 한다.   

캐드펠과 그의 친구 휴 버링가를 다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을 만나서 알지 못하는 중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욱 매력적이다. 그들은 살인을 처리하지만 인간이 물을 수 있는 죄만을 다스린다. 죄인이라고 그가 짓지 않은 죄를 덮어씌우는 일은 없다. 죄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만큼 다른 이의 명예도 존중한다. 이것은 지금 피의자에게 미란다원칙을 말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히 여겨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수도원이 보호해야 할 어린 소녀가 사라졌다. 그리고 얼음 속에서 나체로 발견된 한 구의 시체. 누가 성스런 수녀를 죽인 것일까? 도대체 소녀는 어디로 갔었던 것일까? 소녀를 은밀히 찾는 사람은 누구인가? 수도사에게도 아들이 있을 수 있다. 나이 들어 수도원에 들어왔다면 그럴 수도 있다. 아버지는 스티븐 왕이 다스리는 지역의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모드 황후를 따르는 사람의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연히 만난다.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본다. 하지만 아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속세를 떠난 사람인데.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조용히 돌본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있는 줄도 몰라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어쩌면 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 베드로 축일장 캐드펠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199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와 개인의 발전의 원천은 장사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전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은 잘 살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운 시대에도 사람은 산다고 했던가. 히틀러의 나찌시대에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을 노래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살았다고 하던데 사람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전쟁을 겪고,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축일장을 열고 장사치를 불러모아 돈을 벌어들인다. 그들은 장에 제각각의 이유로 모이고 서로 다른 이가 왕이 되기 원하는 첩자들은 북적대는 장터에서 접선을 하려한다. 그때 살인이 일어나고 캐드펠이 사건에 개입한다.  

시루즈베리 시에 매년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든다. 이때를 틈타 왕의 첩자들이, 혹은 황후의 첩자들이 각각 만나기로 한다. 그 사이에 어떤 무리는 명예가 아닌 돈만을 목적으로 그들을 노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각각의 상대에게 돈을 받고 팔 목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그가 가진 정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목숨걸고 지키려는 사람도. 

시대는 두 편으로 나뉘어 누군가는 그 한쪽 편에 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때다. 그런 때 축일장은 양쪽의 스파이들이 저마다 자기편과의 접촉을 시도하기 좋은 장소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상대방이 그런 점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하여 한 상인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물론 상대편이겠지만 문제는 누가 상대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또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는 잘생긴 귀족이고 다른 한 남자는 장인의 아들이다. 여자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당연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을 의탁하기에는 보잘것없는 평민의 아들보다는 귀족이 훨씬 좋은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이런 수상한 시절에 누구나 진실 한 두개 정도는 감추고 다니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캐드펠 수사 같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캐드펠은 성직자이나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람의 사정을 살피는 인간적인 수사다. 집행관 휴 버링가는 공평한 관리로 묘사되어 캐드펠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이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요즘도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을 잡으려는 자, 전쟁을 막으려 애쓰는 자, 그 전쟁으로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려는 자, 사랑에 눈먼 자, 영리한 여자. 모든 인물이 살아 숨을 쉰다. 모처럼 엘리스 피터스의 진가를 목격하게 된 것 같아 즐겁다.  

이 작품에는 낭만적 로맨스와 뒤마의 <삼총사>와 같은 분위기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한 여인에 대한 젊은이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왕과 여왕의 전쟁 사이에서 첩보 활동을 하는 시민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승부가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어리석은 여인도. 우리로 말하면 장날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마을 사람들, 그런 중세적 분위기 속에 서 벌어지는 접선, 의문의 죽음을 캐는 한 수도사의 모습과 그 가운데 피어나는 사랑이라니 안 읽고는 못 배기는 작품으로 말하자면 캐드펠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항상 수도원과 시루즈베리 마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마치 진짜 그 시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끔 그곳에 들러 만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서 내가 중세 영국에 놀러 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정말 재미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이 시리즈를 계속 읽는지도 모르겠다.

12세기 영국의 첩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대의 세련된 첩보물에 비하면 밍밍한 감이 있지만 아마도 12세기에는 아주 스릴 넘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아주 재미있고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한번 읽으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중에서 영국추리작가협회상을 탄 작품이라고 해서 제일 먼저 본 작품이다. 먼저 나를 붙잡은 것은 12세기 영국의 시루즈베리라는 지역의 성 자일즈 - 성 바울 수도원의 자세한 묘사였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 캐드펠이라는 수사와 그의 조수 마크 수사, 그리고 이 작품의 줄거리의 핵심인 캐드펠과 젊은 시절 결혼할 뻔했던 여인과 그의 철없는 아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와 여전히 그들 곁에 있는 살인을 한 자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수도원 최고의 약초 재배자이자 약물 제조자인 캐드펠 수사가 만든 독약에 의해 영주가 살해당하다니. 그것도 전재산을 수도원에 기부하려던 영주가 아닌가. 그러니 응당 캐드펠 수사가 조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과거와 얽혀 있으니 그도 참 이래저래 난감하게 된다. 이때 휴 버링가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는 없고 대신 온화한 성품의 마크 수사가 등장한다. 이 마크 수사도 참 좋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12세기 영국에서 아무런 재산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농노로, 자유민으로 산다는 것은. 중세 영국에서 신분과 함께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토지나 장원 등 물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특히 남자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것 없이는 노예와 마찬가지다. 누구도 노예의 신분을 좋아하지도 감수하지도 않는다. 그 시대를 산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제도가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사건을 조장하고 거기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작품은 그런 부당하고 모순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가 공감하기 쉽게 말이다.  

살인자는 두 종류가 있다. 악한 살인자가 있고 선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살인자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논할 가치도 없지만 후자의 경우 우린 그에게 어떠한 벌을 내려야 할까. 수도사 캐드펠은 이 점에 확고하다. 법에 의해 어떤 처벌을 받기보다는 그가 저지른 죄를 어떤 형태로든 참회하고 속죄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법률에 의한 처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어떠한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속죄하는 것만큼 중요한 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결말은 뜻밖의 한없는 이해와 용서, 참회와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결말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천년전의 사회에도 있었던 이런 너그러움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지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의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작은 연민과 적당한 배려일텐데. 추리소설로서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밀한 머리싸움이 없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12세기의 중세 영국의 사회상과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