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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평점 :
밤과, 꿈과, 환상이 얽힌 기묘한 이야기! 정말 이 말이 잘 어울리는 두 편의 단편을 읽었다. 몽환적이고 아지랑이가 살랑거리는 기시감을 느끼는 것 같으면서 가슴 한 쪽에서 둔한 통증이 울리는 먹먹함이 있는 이 세계인 것 같으면서 또 다른 세계인 것 같은 이야기.
<바람의 도시>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다. 사노라면 언제나 우리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누구의 몫이 아닌 완전한 내 몫인 것이 인생의 선택이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만남에서 이별까지. 운명이라거나 인연이라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그런 선택의 일부분인 것이고 어쩜 우리 인생도 하나의 선택으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길을 걷는 내내 그 길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길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는 것도 선택이었음을.
아이들은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릴 적 호기심에 늘 가보지 않던 길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혼자 가길 좋아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호기심이었는지를 깨닫고 그때 아무 일 없이 그 길을 온전히 추억 속에 담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 길 중 어떤 길은 내가 다니면 안 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서 무사히 제대로 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살지 못하는 세상 중 어떤 세상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렌이 사는 세상은 또 하나의 세상일뿐이다. 우리도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있고 그도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 공존은 하지만 두 곳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게 공평한 일이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그것이 가장 큰 공포가 아닐까.
이 작품이 공포물인 것은 그 이면에 있는 공포의 막을 책을 다 읽은 뒤 알게 된다는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의 공포가 여백을 채우고 있다. 바람의 도시에서는 누군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밖의 도시에서도 누군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울음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하나의 선택, 우연을 가장한 호기심이 비극적 공포가 되는 것은 찰나의 일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잊는다.
<야시>는 또 다른 선택의 이야기다.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바람에는 대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얻고자 하면 반드시 잃는 게 있고 지나고 나면 그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소중했음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모른다. 이곳에 가서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지. 아니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린 지금 충분히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살고 있다. 대가가 무엇인지 잃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마저 잊은 채. 무서운 건 오히려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된다는 사실... 망각보다 무서운 늪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무엇을 팔겠냐고 물었을 때 슬퍼하지 않을 약을 사고 내 생명의 반을 내놓았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슬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고 내 생명은 내 몫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그리고 슬픔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고 지우려 하는 것 또한 자만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기억하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족을 그래도 그리워하는 이유와 지워져 가는 기억과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을 후회하고 돌리려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잘못된 선택은 용서를 받은 것이라고. 공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소품 정도의 짧은 단편 두 편을 담고 있지만 그 단편들 모두 탄탄하다.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무서움과 공포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섭지 않은 공포가, 자극적이지 않은 공포가 살아가면서 더 두려워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이 작품은 공포물을 읽기 싫어하는 편협한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었다. 인생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공포를 알고 깨닫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