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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언제나 삐에로가 의미하는 것은 서글픔이다. 하얀 얼굴에 눈물을 찍고 커다랗고 빨간 입을 웃는 모양으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 행동을 보며 우린 웃다가도 가슴 한 곳이 짠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삐에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즐거운 곳에서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이 중요한 건 행복이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공중 그네가 양쪽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여러 명의 호흡이 맞아야 서로 떨어지지 않고 믿고 신뢰하며 공중을 날을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는 그 아이를 소중하게 키웠다. 그 아이는 형이 있어 행복했다. 어른이 되어 그들은 아버지 삐에로, 형 삐에로, 동생 삐에로가 되었다. 서로를 위해서. 아버지 삐에로는 암투병중이지만 동생 삐에로는 부적이라도 있으면 암이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아버지 병실에 복숭아를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형 삐에로는 동생 삐에로를 위해 모종의 결심을 하고 아버지 삐에로는 세 부자가 닮았음에 행복해한다. 그럼 된 거 아닐까. 더 무엇이 필요한 거지?
하지만 세상은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삐에로에게 더 높은 곳에서 줄을 타라고 하고, 공중 그네를 타라고 하고 마침내 그물 없이 타라고 한다. 세상은 삐에로야 죽던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데 삐에로가 그런 세상을 아랑곳할 필요가 있을까. 삐에로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이유가 있을까.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용을 모두 얘기하면 독자에게 기밀을 누설하는 것같이 느껴지게 만드는지라 더 이상 내용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작가 아사카 코타로를 믿고 어떤 서평도 보지 말고 그냥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어떤 주변의 말보다 보는 것, 내 눈으로 읽는 것이 가장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얘기하고 싶다. 만약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의 전개가 이런 식이었다면 어떤 결말이 되었을까... 비교해서 읽는다면 작품의 차이를 느끼며 ‘아사카 월드’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슈이치의 자전거가 중력 없는 곳에서 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의 행복만큼 슈이치의 상처가 가슴 아프게 오버랩된다.
아무리 진부하다고 해도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그런 진부하고 다소 낡은 소재를 가지고 작가는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입혀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려도 피카소의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러시 라이프>에서도 느꼈지만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에 매료되어 점점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다. 올해 정말 좋은 작가를 만났다. 행복하다.
세상에 가족이 존재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고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그래도 아직까지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사랑이 있는 한 세상의 종말은 좀 늦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든다. 인간이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성선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삐에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중력 없는 세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