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에 나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밀려났다고 말하는 듯 작가는 한 소년의 탄생을 색다르게 시작한다. 그 시작에 좀 더 나아가 간난아이 때 자신은 창아 (娼兒)였다고 말을 서슴없이 한다. 오오, 발칙한 작가로다. 처음부터 발칙하고 당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작가는 소년이 자라는 성장과정을 기묘하게 묘사해 나아간다.


이름도 독특한 주인공은 이름처럼 악마적으로, 자신이 추앙하는 미시마 유키오처럼 되고자 애를 쓴다. 때로는 유약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고 때로는 모사꾼처럼 행동하는 주인공은 그러나 다르게 바라보면 그저 보통의 아이들과 다름이 없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작가의 의도적 변이에 의해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지만 그래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욱 와 닿는다.


남는 것은 결국 ‘나’라는 개인의 인격체인가, 아니면 ‘나’를 가장한 수많은 다른 인간의 패러디와 합성에 의해 이루어진 모조품인가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년은 청년으로 자라게 마련이지만 온전히 하나의 주체를 가진 유일한 인격체로 자라지는 않는다. 그 동안 많은 사람을 모방하고 따라하고 지도받고 습득하고 그러는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라는 것보다 복제되어 양산된 모조인간들만이 더 많이 남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 하는 행동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작가도 주인공도 마찬가지고. 해서 작가는 당당하게 ‘나는 모조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스스로 거짓인 줄 알면서도 존재하는 ‘나’와 수많은 것들을 모방할 수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모조인간’ 사이에서 당당히 모조인간을 선택한다. 그 모조인간은 바꿔 말하면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존재다. 이제 그는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모조인간이란 결국 소년의 자아찾기를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모조인간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모두가 모조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당신도 예외는 아니고. 그런데 모조인간이면 어떤가. 그게 나쁜 것도 아닌데.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를 자신의 의도대로 나누는 인간보다 모조인간이 차라리 낫다. 모조인간이 득시글대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바벨탑을 쌓는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바벨탑이란 무너지기 위해 쌓게 되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런데 내가 작가에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작가 후기에서였다. 자신의 책만 보게 하고 싶다는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당신이 모조인간이라고 거기서 확신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주인공의 행동도 일관성이 있어서 좋았다. 이 작품을 나는 모조인간의 탄생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모조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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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2006-05-2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생각 안 나신다더니...
생각 안 나는 상태에서 쓰는 게 이 정도면
읽고 바로 썼으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자만이 하늘을 찌르는 만두 공주님, 결론은.. 부럽 부럽 ㅠ.ㅠ)

물만두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소년님 생각이 나나 안나나 거기서 거깁니다^^;;;

로쟈 2006-05-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 쓰겠다고 받아놓은 책인데, 이제 2악장을 읽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분들은 따로 계시군요.^^

물만두 2006-05-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평단 도서는 받는 즉시 읽고 쓰지 않음 까먹어서 되도록이면 빨리 읽고 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