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토 1
앤 패챗 지음, 김근희 옮김 / 민음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의 제목인 벨칸토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벨칸토는 이탈리아말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며 이는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아름다운 소리, 부드러운 가락, 훌륭한 연주효과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기교적 과장에 치우치는 폐단이 있어 글루크나 바그너는 벨칸토를 배척해 왔다. 그러나 벨칸토 자체는 고도로 예술적인 기법으로 현재 이탈리아오페라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창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기교적 과장에 치우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려는 점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의 눈을 가려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96년 페루의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 사건이 남긴 것은 유명한 ‘리마 신드롬’이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듯이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으로 그 사건에 대해, 신드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면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 의식을 여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리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인질사건은 1996년 12월 17일 페루 반군들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400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면서 시작되어 이듬해 4월 22일 페루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끝이 났다. 당시 14명의 인질범은 모두 사살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질범들은 인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질들을 위한 의약품류의 반입을 허용하는 한편,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 놓는 등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을 보였다. 리마신드롬은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심리학자들이 붙인 범죄심리학 용어이다. 즉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인물들이 동화되지만 완전한 리마신드롬이라고 하기보다는 같이 동화되고 자신이 갇혀 지내는 동안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을 하며 잃었던 것들을 발견하고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어 그래도 살아가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두 인물은 록산 코스라는 오페라 가수와 겐이라는 일본 회사 사장의 통역관이다. 한 사람은 낭만이라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소통이라는 실제적인 일상  생활의 역할을 담당한다.


첫 장면부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런 점은 바그너의 배척하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이러면서 은근슬쩍 나를 바그너와 같은 선상에 놓아보았다. 이것도 이 작품만큼이나 너무 기교적인 과장스런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읽을수록 결말이 궁금해지게 되는 작품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많은 회사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장의 생일 파티를 열고 그가 좋아한다는 오페라 가수를 비싼 돈을 지불하고 초대를 한다. 하지만 사장은 투자할 생각은 없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 가수를 보기 위해 왔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인질이 된다. 인질들은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대통령만을 납치해 밀림의 본거지로 갈 생각이었지만 대통령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불참을 하는 바람에 그들은 협상을 위해 남자들과 오페라 가수를 잡고 대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면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도 노래를 연습하겠다고 악보를 요구하는 여가수와 창문이 있는 집, 텔레비전을 처음 보는 어린 테러리스트들의 이질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대비, 여가수도 삶을 위해 살고 어린 테러리스트들도 삶을 위해 산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지. 마치 누군가에게는 꿈꿀 자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마지막으로 치닫는 과정과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도 망각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면서 곡물 값 안정을 위해 바다에 곡물을 버린다는 말을 듣고 저 곡물들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왜 주지 않는가를 알아봤더니 그보다 기름 값이 더 먹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허무함과 씁쓸함이 느껴졌다.


우린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 남보다 더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마치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달의 반대편 얼굴처럼 우리가 진짜 봐야 하는 것들은 보지 않고 있다. 누군들 아름답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을 단지 잘못 태어났음만을 원망하라고 말해야 한다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유명한 성악가를 떠올려보자. 들어주는 이 없이 노래하는 이가 무슨 소용이며 내 배 채우기 위해 다른 아이 배를 골리는 일이 무에 다른 일인지를.


지금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재능이 있는 지도 모른 채,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이 작품이 바쳐졌으면 좋겠다. 진정한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서... 

 

여담이지만 책 띠가 있을때는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의 우아한 드레스 차림만이 보이는데 띠지를 벗겨보니 그 드레스 밑에 핏 자국이 선명히 보인다. 이 핏자국은 과연 누구의 핏자국일까? 우리의 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보다 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정말 작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표지는 못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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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5-2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엄청 멋진 리뷰여요!

반딧불,, 2006-05-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만두님 리뷰 읽고 있으면 황홀해요.

반딧불,, 2006-05-2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0148205

참 여전한 인기!


물만두 2006-05-2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밥먹으러 가기전에 후다닥 올려서 고칠려고 왔느데 벌써 읽으셨네요^^;;;
반디님 무슨 황홀씩이나요^^;;; 인기가 아니고 구글로봇의 상주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