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단편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젤라즈니표 SF작품의 성찬’이다. 젤라즈니의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이 작가가 모든 신화를 SF 작품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장편 <신들의 도시>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모든 종교의 성서, 신화, 신들을 작품속에 녹여내고 있다. 물론 그래서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다면 이 작가의 이런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 단편집에서는 많은 다른 작가들이 그렸던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화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아마 SF 작가들이 이 인간에 대해 서로 그려내는 것들만 따로 모아 단편집을 만들어도 재미있고 우수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집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들처럼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실제적으로 간단하고 접하기 쉽게 보여주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이 단편집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신화를 차용한 단편과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한 작품으로 나눌 수가 있다.


신화를 다룬 단편을 살펴보자.


<12월의 열쇠>는 가장 기본적인 신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신은 만들어지는가, 신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가 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를 미래 변형된 종족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우주의 진화된 어떤 종족에게서 뿌려진 씨앗들의 후손은 아닐까 하는 공상...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이 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화성에 생명체가 산다. 그들에게도 문명과 문화가 있고 신전이 있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치려 들다니. 이것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과 남성적 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이런 일들을 행하며 자신만의 옳음에 도취되어 사명감에 불타는 이들에게 헛된 일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은 허수>는 한마디로 인간이기보다는 신이 되기를 원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실수이지만 신에게 사랑은 허수다. 어렵다. 여기에서까지 실수와 허수에 대해 알아야 하다니. 하지만 허수가 어렵듯, 인간에게 사랑은 그보다 더 어렵고 사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이 되려는 자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뭔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를 보면서 아더왕의 전설과 성배라는 소재가 끝없이 등장함에 감탄하는 한편 언제 이들이 이런 꿈에서 헤어날지가 궁금해졌다. 정복과 증거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믿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신화가 그렇다지만 요즘의 팩션과 맞물려 이미 나온 작품이지만 이 작품처럼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다. 하지만 반면 이렇게 다양하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그들의 힘과 창조정신은 배우고 싶다.

 

인간을 다룬 단편을 살펴보자.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무모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더 큰 것, 더 대단한 것, 더 위대한 것, 더, 더, 더, 외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미래는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뇌의 크기가 진짜 그리 중요한 것도, 고등생물이라는 것의 증명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거 이미 우린 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단편집에서 단연 으뜸인 작품으로 꼽고 싶다.

 

<악마차>는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스스로 진화하는 차들의 이야기다. 인간과 지능을 가진 차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왜 기계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 이외는 모든 것에도 해당되며 또한 인간들 사이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짧은 단편이지만 메시지는 강한 작품이다. 권력을 쥔 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복종을 강요하는 건 기계든 아니든 언젠가 이런 반란에 직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의 산에서>는 젤라즈니의 또 다른 한 가지 문제인 남성지향적인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산이 있어 오른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정복욕이고 그것은 남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하는 여인은 아직도 남성들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기사도 정신을 느끼게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산은 그렇게 어렵게 목숨 걸고 오를 필요가 없는 산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남성들은 그 부분에서 웃지 못했을까? 나는 그 부분에서 너무 웃었다. 이제 제발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좀 벗어버리기를 남성 여러분께 호소하는 호소문같이 느껴졌다. 뭐,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든지 간에...

 

<수집열>은 짧지만 아주 재미있는 이 단편집에서 수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기가 막힌 반전이 숨어 있는 이 작품은 과연 수집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통해 인간의 무지함을 꼬집고 있다.

 

<완만한 대왕들>은 정말 재미있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최고의 유머를 뽐내는 작품이다. 우와! 젤라즈니가 이런 작품을?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대왕들, 너무 웃겼다. 뭐, 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어차피 웃기는 존재 아니던가 싶다.

 

<폭풍의 이 순간>은 서글픈 작품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왜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인간이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한한 것들과 무한한 것들을 통해 미래 인간이 지향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주전쟁>에서의 시간 점프라던가,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냉동 수면 같은 것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불멸, 불사가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주는 지는 미지수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이런 작품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 정의한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는 죽음과 불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신화적이기도 하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인간적 몸부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죽음의 산에서>와 마지막이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와 베타>는 기계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인간이 되기로 한 기계 프로스트의 마지막은 감동적이기까지 하지만 인간이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존재인지는 의문이고 거부감이 든다. 작가가 무엇이든 인간의 신격화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단편이라지만 작품들마다 분량도 서로 다르고 각기 다른 모습에 적응하기도 벅찼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일관되게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SF 작가들 중 한 획을 긋는 작가가 된 것도, 젤라즈니표라는 작품의 특징을 각인시킨 것도 그의 대단한 역량의 이루어낸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장르 소설이라는 분류 없이 그냥 문학 작품, 소설로 읽어도 이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나를 혹사시킨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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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5-1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올해에 젤라즈니 걸작선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것도 너무 기대 되요...ㅎㅎ

물만두 2006-05-1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습니까? 전 신화적이면만 좀 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넷 2006-05-1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행복한 책읽기에서 작가선집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여름방학쯤에 나온다고 하는 것 같던데... 잘 모르겠지만 빨랑 나왔으면 좋겠어용.~~ 젤라즈니 너무 좋아요~~>_<;;;

물만두 2006-05-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겹치는 작품없이 나왔음 좋겠네요. 그 전에 다아시경부터 출판해줬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