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의 사카구치 안고
사카구치 안고 |
사카구치 안고의 홈 페이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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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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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
10월 20일 , 아버지 진이치로, 그의 후처인 어머니 아사의 5남으로 출생. 13남매 중 12 번째 . 본명을 헤이고. 아버지 진이치로는 헌정본당의 총무를 역임하는 중의원 의원 |
1913 |
4월 고등초등 학교 입학. 아버지의 방임주의로 손을 슬 수 없을 정도로 개구쟁이였다. 그러나 학과성적은 우수했다. |
1919 |
4월 현립 니가타 중학교 에 입학 . 입학 후 극도로 근시가 심해져 학업에 흥미를 잃고 거의 학교를 쉼 |
1921 |
거의 등교를 하지 않아 낙제. 가정 교사를 붙이지만 여전히 학교를 결석하고, 맑은 날 엔 해안이나 언덕에 드러누워 , 구름이나 바람의 움직임을 보고 지냈음. |
1922 |
중 3때 드디어 유급을 당해 8월에 퇴학. 9월에 도쿄의 사립 부잔 중학교에 전학, 도쿄에서는 병중인 아버지 진이치로와 맏형 켄기 치와 함께 살았음. 학교는 여전히 쉬었고, 불량소년들과 어울리거나 만담을 들으러 가거나 했음. 한 편으로는 문학에 친숙해져서 단가를 짓게됨. 야구, 수영, 육상 등에 열심, 입상도 함 |
1923 |
11월 2일 . 도쿄의 도쓰카에서 아버지 사망(향년65세) 문학을 좋아하는 동급생의 권유로, 히로쓰 가즈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나카 준이치로 등의 작품을 읽어 문학에 관심을 높임. 또한 종교에도 끌려, 종교서나 철학서 등에 심취 |
1930 |
3월 도요 대학 인도철학과를 졸업. 11월에 아테네 프랑세의 친구들과 동인지 『말』창 간호를 내고, 마리 세이케비치의 『메란주-프루스트에 관한 크로키』의 번역을 발표 |
1931 |
1월 「초겨울 찬바람이 부는 술창고에서」를 『말』 2호에 발표(본 호로 폐간). 그 후 그 잡지는 『파랑새』라는 이름으로 이와나미 서점에서 발행한다. 「고향에 보내는 찬가」 「피에로 전도자」 장 콕토의 「에릭 사티」를 번역 발레리의 「스테판 말라르메」발표 「바람 박사」-『문예춘추』7월호에서 마키노 신이치로부터 격찬을 받음 「흑곡촌」 「대나무 밭」연재 |
1932 |
2월 「매니」 『FARCE에 관하여』 『군집의 사람』 「마을의 사람」 |
1933 |
「작은 방」 다무라 다이지로의 권유로 동인지『벚꽃』에 듦. 그러나 곧 탈퇴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작」을 『행동』에 발표 |
1934 |
1월 1일 나가씨마 야쓰무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고 『나가시마의 죽음에 관하여』를 집 필. 3월에 「신동이 아니었던 랭보의 시」 「다니단조의 조용한 소설」 신경쇠약으로 술을 마시다가 바의 마담과 신주쿠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반 동거 시작 |
1935 |
3월에 『비원에 관하여』를 발표. 문학에 대한 정열을 강함과 순진함에 의존해서 스스 로를 위로하려고 고무하고 있었음. 『흑곡마을』간행. 마담과 헤어짐 |
1936 |
혼고 기쿠후지 호텔로 이사. 24일에 마키노 신이치가 자살을 하고 타격을 입는다. 「마키노 씨의 영전에 부쳐」를 『와세다문학』에, 「마키노씨의 죽음」을 『작품』에 발표 11월에 5년간 연인이었던 야다 쓰요코에게 이별의 편지를 씀 『눈보라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 |
1937 |
『눈보라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었으나 도쿄에 있을 수가 없어서 교토를 방문. 친구 집에서 기거하며, 5월에 후시미 구 이나리초에 방을 얻고 『눈보라 이야기』의 태반을 완성 하나 자신을 잃고 술과 바둑으로 나날을 보낸다. |
1938 |
5월에 『눈보라 이야기』탈고. 「한산(閑山)」을 잡지『문체』에 발표 |
1940 |
『도둑맞은 편지 이야기』를 쓰게 됨 |
1941 |
「문학의 고향」을 『현대문학』에 발표 2차대 전 발발 |
1942 |
어머니 사망 3월에 「일본 문화 사관」을 『현대문학』에 발표 |
1943 |
2월 『진주』간행, 시국에 맞지 않는다고 금지 당함 |
1944 |
징용을 피하기 위해 영화사의 촉탁이 됨. 야다 스요코가 사망(38세) |
1946 |
4월에 『타락론』을 발표 『백치』발표-나중에 영화화 됨 「외투와 푸른 하늘」 『어디로』 |
1947 |
1월 『바람과 빛과 스무 살의 나와』 『나는 바다를 껴안고 있고 싶다.』 『불연속 살인 사건』 『파란 도깨비의 속곳을 빠는 여자』 『사카구치 안고 전집』전 9권 |
1948 |
히로뽕, 아도륨의 다용에 의해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 1월 『천황 폐하께 올리는 글』 『금전 무정』 『불연속 살인사건』으로 탐정 작가 클럽상을 수상 |
1949 |
2월 수면제 중독으로 도쿄대학 신경과에 입원 『정신병 비망록』 『신경쇠약적 야구 미학론』 『일본 이야기-스키야키로부터 하나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쿠다가와상 선고위원으로 선정됨 |
1950 |
『안고 세상 이야기』를 『문예춘추』에 연재 |
1951 |
2월 「안고 세상 이야기」로 문예춘추 독자상을 수상. 세금체납으로 재산을 차압당하고 , 6월에 국세청을 상대로 「질 수 없습니다. 이길 때까지 는」을 『중앙공론』문예특집호에 발표. 경륜장에 다니기 시작, 경륜 부정 사건에 화를 내고 자전거 진흥회를 상대로 「빛을 가리는 자 없도다-경륜부정사건」을 『신조』에 발표. 세상에 주목을 받다. |
1954 |
현대 일본 문학 전집 49권 『이시카와 준, 사카구치 안고, 다자이 오사무집』(「바람 박사」외 6편 수록) |
1955 |
1월에 「관인 유서」를 『중앙공론』에 발표. 2월, 「안고 신일본 풍토기」를 『중앙공론』에 3월까지 연재. 2월 17일 오전 7시55분, 기류의 자택에서 뇌출혈로 사망. 1957년 6월, 니기타 시 기이하마 호국 신사 경내에 자필 시비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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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에 나온 웅진의 일본문학선 그 세 번째 권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는
읽으며 엄청난 흥분을 느꼈던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와는 또 다른 파격.
'무뢰파'라는 인상적인 용어와 함께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은 유명하다.
"살아라! 그리고 타락하라!"
그의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어느 님께 구해 달라고 부탁도 하고 헌책방도 꽤나 기웃거렸는데
오늘 집에 우송되어온 북새통을 보니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두 권의 책 소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