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트리스탄 이야기는 프랑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여주인공 이졸데는 이죄(Iseut) 또는 이졸드(Isolde)라고 불러야 옳다. 켈트인(人)의 옛 전설을 소재로 하여 12세기 중엽에 프랑스에서 이야기로 엮어졌는데, 그 사랑과 죽음의 강렬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거의 전(全)유럽에 보급되어 서구 연애문학의 전형이 되었다.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콘월의 왕인 백부 마르크 밑에서 지용(智勇)을 겸비한 젊은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몰오르트를 쓰러뜨리고 국난을 구했다. 백부의 아내가 될 미녀를 찾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퇴치하고 왕녀 이죄를 데리고 개선하는 도중, 해상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르크와 이죄가 마셔야 할 ‘사랑의 음료’를 마심으로써 트리스탄과 이죄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사랑과 죽음의 음료로, 이를 마신 자는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죄는 마르크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연인인 트리스탄과 항상 만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일이 발견되어, 두 사람은 처형을 피하여 깊은 숲 속으로 도망쳤으나 3년 뒤에 왕과의 화해가 성립되어 이죄는 궁정으로 돌아오고 트리스탄은 추방된다. 트리스탄은 이죄를 사모하여 브르타뉴에서 이죄와 같은 이름의 아내를 얻었으나, 연인을 잊을 수 없어 병상에 눕게 되며, 연인을 데리고 올 사자(使者)를 보내 놓고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직후에 이죄는 도착하지만 그녀도 슬퍼한 나머지 죽고 만다.

이 이야기의 원형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으나 12세기의 70년대 무렵과 80년대에 토마와 베를르라고 하는 두 시인이 이를 고쳐 썼고, 그 단편(斷片)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는 12세기 후반에 아일하르트 폰 오베르크가 베를르의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썼고, 또한 13세기 전반에는 고드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가 토마의 이야기를 번안하였다. 이 토마의 이야기는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도 번안되어 오늘날에도 그것이 남아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이야기가 발라드풍(風)으로 고쳐 써졌고,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의 산문이야기의 번역이 남아 있다.

이 비련은 후세의 시인이나 작가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극과 이야기 등으로 쓰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바그너의 악극이다. J.콕토는 이 이야기를 《영원한 회귀(回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 덧붙여 말하면 트리스탄의 이름은 노란블란드에 사는 픽트인(人)의 왕 이름 드로스탄에서, 이죄는 아일랜드의 해적왕의 딸 에시르트에서 유래하고, 이 두 인물을 콘월의 왕 마르크와 결부시켜 전설화한 것은 웨일스인(人)이라는 추정도 성립된다. 현대어로 번역된 것으로는 프랑스의 중세학자 베디에 편(編) 《트리스탄과 이죄 이야기》(1900)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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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억하기론 결혼할때 울려퍼지는 노래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오페라에서
나온걸로 알고 있답니다..^^

물만두 2006-03-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피스토님 그렇군요~

마태우스 2006-03-2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요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뭐 한 사람이더라? 하는 의문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었는데요 님 페이퍼가 상쾌하게 의문을 날려주셨습니다. 네이버 찾아보면 되기야 하지만 그게 또 귀찮더라구요. 막상 컴 앞에 앉으면 까먹구요^^ 이죄보다는 이졸데가 더 나아 보여요 원죄 같아서 말입니다^^

물만두 2006-03-2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이버에서 찾아 올린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