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47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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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다. 봄이다. 황인숙의 시집을 미친 듯이 사모으던 작년에 읽지 않고 넣어 두었다가 오늘에서야 읽게 된 시집. 너무 자주 읽어야 할 것들을 뒤죽박죽 만들고 미루고 제쳐두고 그러지만 때론 어느 순간 저절로 내 눈에 띄어 내 손이 가게 만드는 책들도 있다. 오늘은 이 시집이 눈에 띄었다.


유난히 봄에 대한 시가 눈에 띈다. 봄이 오니 그런 모양이다. 작가는 죽고, 썩고, 메말라가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악착같이 살아감을 보여주고 있다. 죽을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동의한다. 죽을 가치도 없어 나도 산다. 아니 죽을 이유도 없고, 죽기도 싫고, 그래도 나 죽으면 슬퍼할 누군가가 있다는 이기심으로 산다. 마치 그 슬픔 때문에 산다는 것처럼.


당신과 나도 철새처럼 만났다. 만남은 짧고 어쩜 만남이 아닌 스침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운은 남길 것이다. 여운 없는 만남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오늘은 병원에서 약 타오는 날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더 나빠지지 않아 고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좋아하셨다. 구원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만들어 가지는 것, 내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래서 당신의 시를 읽으며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시는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독자의 이 말이 당신에게는 구원이 될테니까. 우린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 아니 위약효과처럼 그럴싸하게 보일 수는 있다. 진짜는 신께서 하신다고 하니까.


가짜일망정 우리 서로를 구원하며 살았으면 한다. 구원, 그거 별거 아니다. 오늘이 있어 고맙고, 내일이 와서 고맙고, 당신이 있어 고맙고, 바람 불어 고맙고, 봄이 와서 고맙고... 그런 많은 고마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당신께 고마움을 바친다. 오늘 나는 당신의 시를 읽고 좋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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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03-0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읽고 난 뒤 감사의 말을 올리겠습니다.

물만두 2006-03-0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세요. 이 시인 좋아요~

페일레스 2006-03-0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1일부터 한국일보에 황인숙씨가 [길 위의 이야기]라는 장편掌編을 연재하고 있답니다. ^^ 한 번 보시겠어요?
[길 위의 이야기]

물만두 2006-03-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6-03-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저도 읽어볼게요.
물만두님, 제가 님의 이런 진솔한 리뷰 좋아하는 것 아시죠?^^

물만두 2006-03-0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