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낳은 신화, 그 주인공의 영웅적 이야기
19~20세기에 걸쳐 인류가 이루어낸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는 사건이 ‘수메르의 발견과 부활’이다. 19세기 중엽 무렵부터 가속화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신화와 종교의 뿌리, 문명의 처음,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수메르’라는 최고·최초의 국가가 고스란히 부활하는 쾌거를 부르게 했다. 5천 여 년 전, 지구상에 그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도 찬란했던 초고대(超古代) 문명이 2천 여 년 동안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성숙한 문명이었던 수메르는 오랜 세월의 폐허 속으로 사라져 인간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최초로 문자를 발명하여 언어를 사용했던 수메르인들이 남긴 놀라운 흔적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화된 거의 모든 것의 처음이었다. 유사 이래 인류가 그 동안 쌓았던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곳곳에 불과 150년 전까지도 전혀 몰랐던 ‘수메르의 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서구인들로부터 ‘최초’라는 타이틀을 잘못 움켜쥔 그리스 신화와 히브리 신화는 수메르 신화로부터 출발하였다. 신화뿐만 아니라 문명과 역사를 비롯한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인간이 그토록 영생불멸을 갈구하면서 믿어왔던 종교와 철학의 원뿌리가 수메르에 있었다. 수메르에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제정된 우르-남무 법전은 ‘최초의 법전’이라는 함무라비 법전보다 350년 전인 약 41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시 그 보다 250년 전인 약 4350년 전 수메르의 도시국가였던 라가쉬의 통치자 우르카기나는 당시 부패한 사회를 돌이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회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가장 강렬하고 깊숙이 뿌리내린 ‘수메르의 염색체’는 수메르의 거대한 도시국가였던 우루크의 영웅 길가메쉬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Odysseia)보다 1700년이나 앞서 쓰이기 시작한 〈길가메쉬 서사시〉는 지금으로부터 4816년(BC 2812년) 전부터 126년 동안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위대했던 우루크를 통치했던 영웅 길가메쉬 왕의 이야기다. 신화와 역사 양쪽 모두에 속해 있는 존재, 전설상의 인물로만 여겼던 길가메쉬는 그에 대한 기록물들, 즉 수메르인들과 그 후손들이 만들어 놓은 점토서판(粘土書板)에 문자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들이 해독되면서 그가 역사의 수레바퀴 속으로 등장하게 된다. 인류의 최초의 영웅은 이렇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길가메쉬는 오디세우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영웅의 원형이었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오디세이아뿐만 아니라 고대 영국의 영웅 서사시며 게르만 민족 최고의 서사시인 〈베어울프(Beowulf)〉로부터 톨킨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이르기까지 영웅 문학의 출발점이요, 최고(最古) 정점(頂點)에 우뚝 서 있다. 또한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쉬 서사시는 유대교를 비롯한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에서 동일하게 믿고 있는 창세기 신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으로 구성된 점토서판 원문 모두를 음역하고 한역하여 소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2부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두 판본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의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독특하게 재구성했으며 흥미만점의 해설도 추가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길가메쉬 서사시가 빛을 발하기까지의 과정을 묶은 1부〈최초의 신화, 그 탄생의 비밀>, 죽음의 공포를 최초로 사유한 수메르인과 길가메쉬 서사시를 음역하여 써 내려가면서 느꼈던 ‘죽음의 공포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서사시’에 대한 저자 김산해의 감상문(3부), 오랜 세월 동안 길가메쉬 이전의 황금시대에 일어난 수메르 신화를 기록한 수많은 점토서판을 공부한 저자가 고대 수메르 필경사들을 떠올리며 288행으로 압축해놓은 수메르 신화의 귀중한 결정판과 대홍수 이후의 수메르 도시국가 키쉬의 왕으로부터 우루크의 길가메쉬까지 이어지는 왕명록이 소개되어 있으며, 길가메쉬 이후 수메르를 뒤이어 등장한 최초의 셈족 국가 악카드의 시조 싸르곤 1세까지의 연대기(4부)를 정리한 책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이다.

 
 이 서적은 처음 기록된 연대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오래 된 것이다. 학자들은 유명한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보다 약 1천 5백 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지만 고전(古典)을 읽는 마음은 일종의 회귀본능(回歸本能)이라고 생각된다. 원초(原初)의 세계로 달리는 마음은 인류 생존이 시작된 이래 한결같이 인간의 내부 깊은 곳에서 작용하였고, 그것의 표현이 제의(祭儀)요, 신화(神話)인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우룩을 다스린 위대한 왕 길가메시의 이야기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문명에 항거하는 투쟁과 우정, 사랑, 모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무릇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지만 이<길가메시 서사시>도 읽는 이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이야기이며, 생명, 죽음, 연애, 투쟁 등 궁극적인 문제를 테마로 하여 엮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인간 최고(最古)의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점에 기인하는 신비스러움이 행간(行間)에 연면히 흐른다는 점이다.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인간적 한계의 자각과 그로 인해 절망하며 "영원한 생명"을 찾아 광야를 방황하는 인간적 고뇌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비극 그것이다.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전개되는 만남과 연애, 우정, 죽음, 모험의 작품 세계는 바로 우리 인간이 갈망하는 원초적인 신화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로는 1960년 펭귄판 고전 문고를 사용했다. N.K.샌다즈 가 영문으로 판독한 이 책은 초판이 나온 이래 계속 중판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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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2-1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다닐때 길가메시 서사시 사서 반쯤 읽다가 아직 다 못읽었어요. ;;;
다른 신화류이 책에 비해서 좀 제비가 없는듯...제건 두번째 책의 초기 판본에 들어갈거에요.

물만두 2006-02-1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처음 듣는다네 ㅠ.ㅠ;;;

페일레스 2006-02-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참 쓸쓸한 책이죠. 끝내 영생을 얻지 못하지 않습니까? -ㅅ-

물만두 2006-02-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물어보셔도 모릅니다. 안 읽어봤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