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가타리의 단독 저서 중 한국에서는 최초로 번역 출간된 책. 가타리는 이 책에서 욕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는데,그것의 출발은 역능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기반으로 '생산하는 욕망'을 설정해나감으로써. 지배의 미시적 작동을 분석했던 푸코와 달리,미시적,분자적 움직임을 통해 권력을 파괴 해나가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가타리는 기존의 거시정치의 대안으로 미시정치를 강조한다.펠릭스 가타리(F lix Guattari), 《분자혁명(La R volution Mol culaire)》,ditions recherches, 1977.가타리는 1955년∼1970년까지의 여러가지 글을 묶어서《정신분석과 횡단성(Psychanalyse et Transversalit - Essais d'analyse institutionnelle, Editions de Maspero, 1972)》이란 책을 낸 바 있다. 《분자혁명》은 서구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소수자, 주변자, 피지배 대중, 실업자들이 역능에 기초해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중반의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혁명 운동의 방향을 제기한 책이다. 가타리는 실제로 다양한 운동에 개입하면서 1980년에는 이탈리아의 상황과 관련한 글과 미시정치에 관한 글을 첨가하고 일부 내용을 뺀 채 《분자혁명》 2판을 냈다. 특히 2판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도 첨가했다. 영어판(Guattari, F lix, Molecular Revolution, Penguin, 1984)은 77년판과 80년 2판에서 뽑고, 《정신분석과 횡단성》(박종철출판사, 근간예정)에 있는 다른 글들도 포함하여 새로운 편집 체제를 갖춘 것이다. 일어판 《분자혁명》(杉村昌昭 譯, {分子革命}, 法政大出版局, 1988)은 불어본 80년판의 번역본이다. 또한 77년판에서 '영화' 부분과 '기호적 구축물' 부분만을 번역한 것(杉村昌昭 譯, {情神と記號}, 法政大出版局, 1996)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미움 받았던 민족
유대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면서도 역사상 가장 미움 받았던 민족’이 아닐까 싶다. 인류최초로 유일신교를 만들고, 예수,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하이네, 말러, 쇤베르크, 샤갈, 아인슈타인,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벤야민 등 학문, 종교, 예술, 경제, 과학, 정치 곳곳에서 인류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해낸 민족이자, 록펠러, 모건, 뒤퐁, 로열더치, GE, ATT, IBM, 보잉, US 스틸, 제록스 등 굴지의 기업들을 일궈낸 사업가들을 배출한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이다. 그런 한편으로 2천년이 넘게 나라를 잃고 떠돌아야 했으며 어디를 가든 박해를 받아야 했고 20세기 초반에는 나치에 의해 600만 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민족이 또한 유대민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아브라함 이후로 4천여 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전 세계 각지에서 고통과 핍박을 견디며 저 나름의 위대한 정신적 성취를 거둘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너무 무지하거나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도대체 2천년이 넘도록 국가를 잃고 아무런 현실적인 힘없이 세상을 떠돌면서도 어떻게 오늘날까지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 대답을 영국의 지성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유대교의 탄생: 고통 속에서 빛을 찾아낸 유대인들

폴 존슨에 따르면 유대인의 역사는 아주 특별한 세계사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적대자들을 만났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질성을 유지하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이스라엘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4천년에 걸친 이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조망되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사를 만나게 된다. 즉, 1942년 나치의 한 감옥에서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세계사의 위대한 사건들을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의심받으며 학대당하는 힘없는 이들, 압제당하고 모욕 받는 이들, 한마디로 고난 받는 이들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다음과 같은 아브라함의 고백으로부터 <<유대인의 역사>>를 시작한다.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 이 이후로 4천여 년의 유대인의 역사는 한마디로 유랑의 역사였다.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보내야 했던 40여년의 세월이 그러했고, 앗시리아와 바빌론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겼던 포로기 시대가 또 그러했다. 그리고 결국 로마 제국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2천여년의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유랑과 핍박의 역사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통 속에서 빛을 발견할 줄 아는 민족이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는 달리 인류 최초로 인격적인 신을 발견했던 유대인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고 그 후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고통스런 현실의 과정을 이야기로 기록하고 관념화함으로써 유대교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인류에게 지성의 빛을 선물하다

폴 존슨은 유대인들이 인류에게 건네준 가장 큰 선물은 인격적인 유일신론으로부터 비롯된 지성과 윤리의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인격적인 유일신을 믿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게 되는 한편 신이 내려주는 계명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윤리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국가나 군사력 또는 넓은 영토를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지성과 합리적인 사고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야만적이며 비합리적인 세상을 합리적이고 하나님에게 순응하는 세상으로 바꾸는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지성을 더욱 더 강화해나가야 했다.
그러한 유대인들의 지적인 통찰은 하나님에 대한 사상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대교에서는 유대인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헌신하라고 권면했다. 특히 디아스포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세 유대의 학문은 통치와 지식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교권통치체제, 즉 학자들인 랍비가 지배하는 사회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의해 고향을 떠난 유대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그들은 어디를 가던 공동체를 만들어 정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동체는 다른 이방세계와는 다르게 학자들에 의해 다스려졌던 것이다.

중세 유대 합리주의의 표상 - 마이모니데스

중세 유대의 학문이 지녔던 특징은 교권통치의 원형이자 그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마이모니데스에게서 잘 드러난다. 그는 유대교와 율법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능한 박학한 학자였다. 그는 다가올 메시아의 시대가 불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합리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발전, 즉 진보의 결과로 이해했다. 따라서 그는 현세에서 인간의 상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이성을 통해 세상을 더 문명화된 장소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독교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신앙에서 미신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그렇게 비워진 부분을 이성으로 보강함으로써 유대교를 이성적인 기반위에 세웠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만든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구) 안에서 거주할 때에도,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지켜가며 합리주의적인 성향을 더욱 키워갈 수 있었다. 세계 역사의 주류에서 사라졌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지성의 탑을 쌓고 있었고, 19세기에 마침내 게토에서 해방되자 그 동안 쌓아왔던 정신적인 역량을 인류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최초의 사례가 스피노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피노자는 유대교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스피노자의 작품과 사상 속에는 유대적인 전통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그의 사상은 합리주의적인 유대 전통 한 가지를 탁월하게 발달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가령, 이성을 온전히 발전시키면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주장은 이미 이전에 유대인 랍비 마이모니데스의 사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도 유대사상의 변주이다

19세기 게토에서의 해방 이후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지성의 거인들을 쏟아냈다. 마르크스가 그러했고,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이 그러했다. 인간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을 전복시켰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들도 사실은 천재들의 독창적인 사유라기보다는 유대적 전통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폴 존슨은 말한다.
가령, 마르크스의 경우 진보에 관한 그의 개념은 헤겔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유대적인 것이었고, 그가 주장했던 공산주의의 천년왕국론은 유대인의 종말론과 메시아주의의 변주였다. 또 그가 말한 통치 개념 또한 유대사회의 교권통치체제와 다를 게 없었다.
또 프로이트 역시 유대교로부터 많은 요소들을 취했다. 꿈을 해석하는 테크닉은 유대교의 신비주의 계통의 책 <<조하르>>에서 사용된 방법과 유사했고,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이론을 제시하는 기술은 유대 랍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프로이트는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처럼 종교 지도자 같은 모습을 보이며 그의 연구 분위기는 마치 종교의 창설과 같아 그의 학설에 대한 반대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폴 존슨은 다소 비판적인 목소리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학문방법이 공히 17세기에 활동했던 유대인 나탄의 방식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나탄은 샤베타이 즈비라는 인물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추앙하고자 했다. 그러나 즈비는 터키에서 심한 고문 끝에 어이없이 이슬람교로 개종해버렸는데, 이때 나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배교는 어쩔 수 없는 역설이므로, 배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개종은 이슬람 세계를 해방시키려는 메시아의 새로운 사명이자 마지막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원수의 진영에 들어간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며 자신의 이론을 지켜냈다. 일종의 신념을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백년이 지난 19세기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이와 같은 나탄의 방식, 즉 신념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갔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과 유사한 이론을 유대 특유의 방식으로 합리화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유대교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합리주의자이면서도 신비적인 영역을 인정했는데, 이는 진리를 인식하는데 있어 이성과 계시라는 두 가지의 상호보충적인 방법이 있다는 유대인 랍비 마이모니데스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거칠게 설명해보면,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고 있고, 인간은 지성을 통해 그 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마이모니데스가 신앙에서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그 부분을 이성을 통해 채우고자 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은 혁신하는 민족이었다

유대인들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난함을 부유함으로, 그들에게 닥친 불운을 축복으로 바꾸어내는 민족이었다. 유대인들은 괴로움과 박해를 피해 여러 차례 이주를 해야 했다. 늘 그들의 공동체는 깨어졌고 사람들은 사방팔방 흩어져야 했지만,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마지막 정착지에서 번영을 일궈냈다.
그 같은 번영이 가능했던 것을 폴 존슨은 ‘장소의 이동’이 주는 혜택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이주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었는데, 그 와중에서 그들은 특히 부에 집중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어떠한 불행에 처하더라도 항상 새로운 유동자산을 얻을 수 있었고 어디서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불리한 상황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꾸어 놓은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된다. 중세와 근대 초기 유대인 소유의 자산들은 항상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언제 공동체로부터 추방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런 상황에서 유가증권, 무기명 채권 등의 새로운 방식의 제도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현대 자본주의에 가장 쉽게 적응해갈 수 있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유럽 기독교 사회의 반유대주의로 인해 중세 유럽의 상업에 있어서 핵심적이었던 ‘길드’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중세 상업의 기반인 고정된 봉급과 가격이라는 체제를 뒤흔들어 놓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즉, 관습적으로 이어지던 상품가격과 판매 이익을 근본적으로 해체시켜 버렸던 것이다. 상품을 보다 잘 진열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했고, 상품광고를 고안해내어 물건을 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또 경제규모가 지닌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낮은 가격으로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대처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늘 혁신을 지지했다. 대표적인 예로 주식시장의 창출을 들 수 있다. 주식시장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현장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18세기까지 이 주식시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경제적인 혁신은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19세기부터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은 상업정보를 수집하고 사용하는데 능통했다. 시장이 모든 유형의 상거래에서 주도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동시에 일련의 세계적인 체제로 확장되어 감에 따라 정보는 최고의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유럽 각처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네트워크가 무역과 경제적인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경제체제보다 낫고, 보다 용이하며, 보다 저렴하고, 보다 신속한 방식들을 만들어내는 합리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유대인 출신의 경제인들이 놀라운 부를 축적한 배경에는 이처럼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던 역사적인 배경이 바탕이 되어 있다.

반유대주의의 전통

한편으로 이 유대교는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반유대주의를 낳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세상을 떠도는 이주자들이 아니라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이방인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거꾸로 이방인들로부터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선택한 신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이미 버렸던 고대의 관습과 사회적인 금기를 여전히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시켰다. 할례나 식사법과 정렬법 등 독특한 유대교의 율법은 점차 이민족들에게 이상함이라는 느낌을 넘어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세계 각지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의 시작도 이 유대교에서 비롯하게 된다. 2세기 경 로마제국에 복속된 민족 중 유대인만이 유일하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참하게 패배한 후 유대인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그 밑바탕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복합적인 인종과 민족들로 구성된 사회를 중시했던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을 이방인과 구별하는 유대인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민족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최초의 반유대주의가 시작되었고, 당나귀를 숭배하여 성전에 당나귀 머리를 두었다는 전설이나 성전에서 몰래 인신 희생제사를 드린다는 전설 등이 나돌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의 지성인들은 소문만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직접적으로 반유대주의를 부추기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 기독교인들의 반유대주의가 나타난다. 중세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민족으로서, 기독교의 진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악의를 갖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에다가 음식과 도살, 요리와 할례 등에 관한 율법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꼬리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든지, 하혈로 고생을 한다던지, 악마를 섬긴다든지 하는 루머가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 중세 내내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것은 유대인들이 부활절마다 그리스도의 대역으로 기독교인을 살해하고 있다는 ‘의식용 살인’이라는 루머였다. 반유대주의의 전설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외친 이후 그들에게 치질이 생겨났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이 병의 치료에 효험이 있는 유월절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년 한 명의 그리스도 대역을 죽여 그 피를 섞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흑사병은 유대인들이 마실 물에다 독을 풀어서 생겨난 병이라는 루머도 떠돌았다. 뒷날, 셰익스피어 작품에서의 반유대주의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수용한 것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시온 의정서’ 음모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반유대주의가 절정에 이른 것이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나치는 6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무고한 유대인들을 학살했는데, 이때 히틀러는 사이비 과학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을 인간 이하의 종족으로 몰아가는 반유대주의를 유포했던 것이다.
20세기에 있었던 유대인들을 향한 최고의 음모는 <<시온 의정서>>로 대표되는 시온주의와 관련된 것일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계정복을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온 의정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반유대주의를 유발시켰는데, 가령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가난한 유대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유대인들과 나치들이 함께 꾸민 음모였으며 시온주의자들이야말로 나치 민족차별주의의 후계자라는 흑색선전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정복을 꿈꾸었던 나폴레옹 3세의 작품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러시아 비밀경찰들에 의해 위조된 문서에 불과했을 뿐이다.

유대인의 역사 또는 인류의 전형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아이러니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국가를 통치할 때는 오히려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반면, 그들이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 그들은 단호하게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며 그들 특유의 종교적 경건성 아래에서 자신들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국가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 급속히 부패하기 시작했고, 위대한 솔로몬왕 시대에 또다시 부패했다. 부유하고 강력한 왕이 통치하게 되거나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여지없이 이교숭배와 부패가 반복되어 나타났다. 독립적인 통치기구를 갖고 번영을 누릴 때마다 기묘하게도 유대인들은 주변민족의 종교에 이끌려 종교적으로 타락해갔던 것이다. 반면, 신비스럽게도 그들이 국가를 잃거나 외세의 지배를 받았을 때마다 그들은 보다 더 율법에 순종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종교적 경건성 아래에서 자신들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어느 사회든 현세적인 힘과 권력은 그 자체로 악한 성향을 가지게 되고 부패하며 그래서 쇠퇴하는 반면 힘이 없거나 그 힘을 포기했을 때 선함을 획득하고 놀라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개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힘-악함-육체성’과 ‘선-허약함-정신성’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패배한 민족이 그 패배한 경험을 인류보편을 위한 경험으로 바꾸어놓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유대인만이 유랑과 핍박으로 점철된 그들의 특정한 운명을 기록하고 각색함으로써 인류에게 하나의 보편적인 도덕과 삶의 가치, 그리고 그 깊이를 선사할 수 있었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오다보면,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 폴 존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역사는 어쩌면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 삶의 모범이자 전형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들 유대인들은 집 없고 약한 인간으로 세상을 늘 떠돌아다녀야 하는 방랑자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에게 세계는 일시적인 숙소에 불과하고 우리 또한 일정한 수명을 받고 사는 단순한 임차인과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그리고 또 우리는 모두 예루살렘을 세우길 원하는 한편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표류하고 있지 않은가.

 한 '회색인'의 성찰적 세상 읽기
'에세이스트' 그리고 '자유주의·개인주의의 옹호자'. 저자 고종석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그리하여 늘상 그에게 따라붙는 말들이다.
전자는 뛰어난 문장가로서의 고종석을 지칭하는 것인데, "외솔의 {우리말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새롭다. … 내 마음의 행로에서 국어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철거된 적은 없다"(서얼단상, 173쪽)는 언급에서도 보이듯 그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이는 가히 '고종석식 문장'이라 이름할 만한 그만의 독특하고 단아한 문장을 낳게 했고, {감염된 언어}나 [살균된 사회, 위생처리된 언어]와 같은 작업으로 표출되었다.
후자는 자칭 '서얼'이자 '회색인'이요 '오열분자'인 고종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해 보인 말인데, 좌우 이념의 스펙트럼에서는 "희미한 우(右)"이며 세속도시와 유토피아를 오가는 "스파이"인 그의 정체성을 일구어낸 두 기둥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애매한 중립적 관찰자로 자리매김한 채 끊임없는 회의의 잣대를 들이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두 권의 책 {서얼단상}과 {자유의 무늬}는 이 어정쩡한 중간자의 눈으로 본 세상 관찰기이자 그 세상에 투사한 자기성찰의 기록인 셈이다.

'서얼'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
이념 지형에서의 양극단을 지양하는, 극우에 대한 혐오와 좌익에 대한 불편함이 배어 있는 저자의 입지점은 그 밑바닥에 '순결주의에 대한 거부'를 깔아두고 있다. 얼핏 모호하고 어정쩡해 보이는 '자유주의자'란 자기 규정은 획일주의·집단주의·다수결주의를 배격하고 불순함을, 소수자를, 약자를, 서얼을 옹호하는 데서 구체성을 얻는다. 이때의 '서얼'이란 바로 비장애인이 다수인 사회의 장애인이요,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이요, 지역차별이 엄존하는 이 사회의 전라도 사람이기도 하다.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란 어쩌면 일종의 피해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 피해의식이 내 눈길을 소수파에게 돌려놓았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소수파의 중심부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충분히 전라도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전라도 언저리에 있듯이, 나는 빈민층의 언저리에 있고, 외국인 노동자의 언저리에 있고, 범죄자의 언저리에 있을 뿐이다.(서얼단상, 274쪽)
정치·사회적 과정에서의 다수결주의도 끔찍하다. … 그런 견해는 대중이 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런 가정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나는 '반민주주의자'이지만,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보다 상위에 있는 근본적 규범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 규범들 가운데 하나가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민주주의자다.(서얼단상, 124쪽)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씨가 후보로 뽑히기를 바란다. … 그 이유는 많다. 그것을 한 문장에 구겨 담자면 노무현 씨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소수파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무늬, 35쪽)

'느슨한 연대'를 말하는 개인주의자
대개의 칼럼들은 기사문처럼 글쓴이가 '비칭'이나 '범칭' 속에 숨은 채 객관화되어 있다. 그러나 고종석의 칼럼은 글쓴이 '나'가 직접 얼굴를 내미는 사적(私的) 언술이 대부분이다. 이는 저자의 개인주의자적 기질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자는 어느 패거리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궁극적 소수자로서의 개인'으로 파편화된 채 존재하지만, '개인(자신)을 위한 타인의 존중'이란 신념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연대의 고리로 작용하게 된다. 즉, 보이지 않는 그 존중의 끈이 그 개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느슨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김진석이 내게 '어정쩡한 우파''희미한 우파'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우(右)는 우(右)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파(派)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아무 파에도 속해 있지 않고, 아무 파도 대표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에게만 속해 있고, 나만을 대표한다.(서얼단상, 270쪽)
그들의 연대는 집단주의 정신이 강요하는 기계적·수직적 연대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신 사이의 자발적 연대이고, 느슨하지만 깊은 연대이다. … 개인주의자들의 연대는 궁극적 소수의 연대이고, 반-획일주의의 연대다.(서얼단상, 184쪽)
여기서 저자는 어떠한 신념이든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되지 않고서는, 그 열정이 다수의 폭력에 다름 아닌 '희생제의'를 야기하는 '광신'으로 돌변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집단주의자가 집단을 사랑하듯 개인주의자가 개인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 개인주의자는 개인을, 그러니까 타인을 '존중'한다. 집단의 자리에 개인을 들어앉히고 사랑의 자리에 존중을 들어앉히는 것, 그것은 20세기의 파멸적 유토피아니즘들로부터 해방되는 길이자, 만인(다수)에 의한 일인(소수)의 박해라는 형식으로 인류사를 관통해온 희생제의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자유의 무늬, 254쪽)
문화로서의 전체주의를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진리의 전유권(專有權)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진리를 전유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열정을 줄이는 것,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이다. 자유나 평등이나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환경처럼 보편적이라고 알려진 가치들에 대해서까지도 이성의 계산기를 다시 들이대며 그것들을 섬세하고 구체적인 윤리의 체로 밭아보는 것이다.(자유의 무늬, 143쪽)

두 권의 책
비록 글의 길이에 따른 편의적 분책(分冊)이긴 하지만, {서얼단상}에는 관찰과 사유의 깊이를 보다 심층으로 몰고간 편편들이 모여 있고, {자유의 무늬}에서는 그 농축된 에스프리가 섬광처럼 빛을 발하는 단상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단상들의 섬세한 무늬결 속에는, 인간의 이성·합리성이 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의지해야 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 믿는 이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성찰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림으로써 그 편린을 엿보게 한 '함께 이루어갈 우리의 세상'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비루한 일상을 솔직히 응시하는 반성적 태도야말로 읽는이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결국 나는 교육 자본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깨닫고 있는, 그것이 사회관계 자본과 직결된다는 것을 바로 내 몸뚱어리로 실감해온, 그래서 이 빌어먹을 교육제도 속에서 다른 아이는 어찌 되는 그저 내 아이만은 그럴 듯한 대학에 가주기를 내심 열망해온, 지독한 가족이기주의자였던 것이다.(서얼단상, 263쪽)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 조지 오웰

우리는 역사가와 역사의 기능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날의 역사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성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역사 학문 자체의 존립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고 그것은 역사학이 다른 사회과학 안에서 희석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혹은 19세기 낡은 실증주의 사학으로 후퇴할 때 일어나는 이중적인 자살행위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바로 경험주의를 극복하고 과학적으로 재무장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회의 이미지에 따라 구성되는 학문으로 존재하므로 역사를 위한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한다.
역사물이 연일 방송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프랑스 남녀의 50%이상이 역사책을 소지하고 또 그 중 9%가 역서서를 독서 순위 1순위로 뽑는 등 프랑스 사학을 명실공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제왕으로 올려놓고 대외적으로 프랑스 국위선양의 선봉장이 된 아날학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
마치 군주처럼 군림했던 페르낭 브로델, '인간 없는' 무인적(無人的)인 역사를 주조해낸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프랑스 혁명의 정통성을 부인했던 보수주의 역사가 프랑수아 퓌레, 현실과 단절된 복고풍의 심성사의 문을 연 필리프 아리에스 등을 주요 공격대상으로, 사회적 기류에 편승하고, 사회적 지위 등을 이용해 자라온 역사가의 제국, 아날학파의 신화를 벗긴다.
돌아온 클리오, 브로델의 해, 조각난 역사 등 크게 3장으로 나누어 아날 학파의 전사(前史)에서부터 그 자체로 역사가 되어버린 아날학파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1. 박물관, 살아있는 소통의 마당으로 불러낸다 - 취지
박물관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막연히 ‘가야 하는’ ‘좋은’ 곳이지만 여전히 껄끄럽고 만만치 않은 공간이다.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나 조상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말하여도 결국 그것은 ‘교과서’ 안의, 박물관 진열장 안에 갇혀 있는 죽은 유물일 뿐 정작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즉 우리에게 박물관은 머리 속에서 추상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고급문화의 공간이었다. 이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려면 박물관의 성격이나 내용 자체가 바뀌어야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박물관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요청하며 키워드로 ‘박물관에 말걸기’를 제기한다.
박물관이란 지난 삶의 모든 흔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숲이다. 그것들은 비록 시공간은 다르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박물관에 말을 걸고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의 삶을 둘러보고 관심을 가지면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사소한 일상을 박물관과 연결시켜 보자는 것이다. 이럴 테면 어떤 문제나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연히 그와 관련된 특정한 유물이나 그것을 담고 있는 박물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로 어떤 유물을 보면서 내 삶의 어떤 장면이나 생각들과 만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박물관에 말을 걸고 소통하는 것이다. 박제된 유물들의 무덤에 불과했던 지난 시대의 박물관을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는 소통의 마당으로 불러내기 위한 노력의 첫 걸음으로 저자는 박물관과 나눈 그의 대화록을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공개하고 있다.

2. ‘박물관의 벽’을 허물다 - 내용
1)박물관은 진화 중-제국에서 집 앞까지
이 책의 1부에서는 진화를 거듭해온 박물관의 역사를 개관한다. 무제이온 언덕과 폼페이 유적을 통해 박물관의 기원을 더듬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 제국의 힘의 표상이 된 대영박물관과 함께 국가 만들기의 일환으로 탄생된 유럽 각국의 국립 박물관을 살펴본다. 박물관이 보물창고에서 국민 계몽과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게 된 것이다. 한편 20세기 중후반을 경과하며 박물관의 개념은 결정적으로 바뀐다. 제국이나 국가 등의 거대 권력을(에) 위해 존재해왔던 박물관이 인간을(에) 위한(대한) 이야기로 그 중심을 이동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에코뮤지엄, 영국의 아이언브리지 박물관과 크로이든 클락 타워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 동네가 박물관이 되는 과정,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있는 집 앞의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진화 중인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에코뮤지엄(Ecomuseum) 운동이나 지방 자치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유럽 각 지역의 마을 박물관들은, 사람들의 실제 삶을 박물관과 연계시키고자 한 의미 있는 운동이었다. 사회사 박물관 등을 통해 일상생활이 박물관의 주제로 떠오른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비로소 장구한 세월, 삶의 굽이굽이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진솔한 에피소드들을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의 증거들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또 그것이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진솔한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박물관은 그제야 진정한 소통(Communication)의 마당이 되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2)박물관, 그 숲에서 길을 찾다
이 책에서는 세계 12개국, 44개의 박물관 기행을 한다. 여기 소개한 박물관들이 반드시 훌륭하다거나 이 방면을 대표하는 박물관은 아닐 수 있다. 다만 우리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제들과 ‘나’와 ‘이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주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선정하였다. 가령 2002년 뉴욕에서의 9. 11 테러와 관련하여 ‘아우슈비츠 박물관’이나 ‘영연방 박물관’을 떠올렸고 우리 사회 이민 열풍과 관련하여 산타바바라 성과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사 박물관‘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캐틀즈 야드‘나 ’크롤러 뮐러 미술관‘처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특별한 미술관을 소개하며 아울러 미켈랄젤로나 반 고흐 등 작가 기행도 포함하였다. 그 밖에 문화유적의 보존 사례로 이집트의 아부심벨과 만리케의 란자로테를 통해 한 지역 예술가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3)박물관 안의 유물, 박물관 밖의 삶
박물관은 유물들의 무덤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집이다. 유물에도 인생이 있다. 평소에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유물, 또는 저자가 박물관 여행을 하면서 눈에 띈 유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돌아본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전쟁과 유물’ 이야기를 하였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문화재 반환 논쟁 속에 있는 ‘엘긴 마블’과 ‘오벨리스크’ 등의 이산의 역사를 짚고 있다. 아울러 ‘블레더의 가짜 박물관’에서는 가짜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였고, 이집트의 ‘진저 맨’과 영국의 ‘린도우 맨’ 그리고 다이슨 진공 청소기 등은 개인적인 사건이나 경험에 비추어 유물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를 소개한 것이다. 어떤 문제,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연히 그와 관련된 특정한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로 어떤 유물을 보면 자기 삶의 어느 장면이나 생각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이 때의 유물은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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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0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다 읽으신것인가요? 글읽는 것도 장난이 아니네요. 와..

물만두 2006-02-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제가 읽은 책이 아니라 지금 읽는 책에 푸자디스트란 말이 나와서 그 말이 나온 책을 좀 찾아본 겁니다~

Mephistopheles 2006-02-0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자드운동
요약:1953년 프랑스의 서적문구상 P.푸자드가 중소 상공업자의 정치적 불만을 배경으로 일으켰던 반의회주의적 극우운동
내용: 그는 중소상공업자의 세부담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여 세금불납을 호소, 반세(反稅)투쟁을 전개하였다.
1954년 전국적인 규모로 상공업자방어동맹(UDCA)이 결성되고 1956년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52석을 차지하고 유효투표수의 12%를 얻어 국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중소상공업자 ·농민, 기타 근대화에 소외되었던 계층과 후진지역의 불만을 포괄적으로 흡수한 결과였으나, 그 성격은 현대산업사회나 유대인을 공격하는 등 권위주의적 급진주의라는 점에서 파시즘과 유사하였다.
하층 중산계급과 소(小)부르주아지의 근대화에 대한 절망적 반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운동도 UDCA 의원들의 내부분열, 1958년 국민의회 선거에서의 패배 등으로 쇠퇴하였다.
라는 군요...^^

Mephistopheles 2006-02-0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중동과 이스라엘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아랍인 학생 한명과 이스라엘 학생 한명이 짐을 나란히 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인 친구가 이 둘에게 물어보니...아랍인 친구는 징집이 겁이나서 도망가는 것이라고 하고 이스라엘 친구는 조국을 위해 싸우러 간다고 했다더군요..^^
지어낸 이야기 일진 모르겠지만 유태인들은 대단하다 못해 무서운 건 사실입니다.

물만두 2006-02-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피스토님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랍인도 유대인도 다 나름인것같아요. 근데 그 유대인보다 더 지독한 민족인 네덜란드인들이라고 하더군요^^;;;

Mephistopheles 2006-02-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더치패이...하하하하...맞아요...보통이 아니죠 그나라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