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도망간다 사자 잡아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135
장경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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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자(利子)... 작가는 끊임없이 이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자는 작가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거저 얻은 수익? 불공정하게 갖게 된 어떤 것? 갖고 싶지 않고 원하지 않았지만 갖게 된 그 무엇? 그 어떤 것이든 작가는 이자라고 부른다. 이자... 이자...

그녀의 굵직한 넓적다리는

이 땅에 저당잡힌 내 육신의 利子가 아닐까.

또 이자는 이 자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언젠가 손석희가 방송에서 차마 욕을 못하고 이 자의 자자는 놈자입니다라고 말해 우리를 즐겁게 했지만 그것이 사실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듯 나는 이 자를 이자라고 표현한 작가의 심정과 시가 맘에 들지 않는다. 은유가 아닌 회피같기 때문이고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이 속상하기 때문이다.

말 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고, 말 할 수 있으나 들어주는 이 없고, 들어주는 이 있어 말 하려하지만 그때는 이미 그 말이 퇴색되어 쓸모없어지고... 나는 작가의 시에서 이런 것을 느꼈다. 서글픈 현대, 한 시대를 살아낸 작가라는 사람들의 그 허무하고 비참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가야만 하는 비애... 그렇다. 이제 현대인은 현대의 시를 읽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시는 이미 멸종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까. 그래도 시인은 시를 쓰고 독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시를 읽는다.

이자는 그것으로 잊자. 잊을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이자만이라도 잊자. 그저 원금만 생각하자. 씁쓸한 물이 치밀어 올라도 어쩌겠는가.

 

11쪽 - 그게 언제였더라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단골 약국의 친근한 약병들

검은 열차들

작은 집과 다리와 먼 山

나를 스쳐 지나가는 젊은 풍속과 늙은 불안감들

욕망들 詩와 담배 연기로 지워버린

가랑비 웅덩이에 고인 빗물


그게 언제였더라

갈매기들이 해안 초소에서 튀어나오던 저녁

해물탕 꽃게 다리를 빨아먹던 저녁

작은 하늘에서 큰눈이 쏟아지던 날

자신의 일기에 밑줄을 그으며

낯설고 기뻐서 술병을 따던 저녁

 

이 시가 제일 맘에 든다... 어쩜 난 이 작가의 시를 잘못 이해했는 지 모르겠다.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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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head 2005-05-3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길이 있어 빗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자정하여 스스로 푸르름을 더하는 것을 볼 때에

'詩와 담배연기'란 도구를
사용하여 스쳐 지나가는 젊은 풍속과 늙은 불안감,욕망들을 흘려 보낼
心路를 낼 수가 있으리라 생각하였건만...
마음의 웅덩이에는 여전히 원초적 불안과 욕망의 잔재만 가득하니
이 아니 한심한가? 쥐포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이...
하지만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속됨과 나약함의 진솔한 모습이라고 위로할란다.

물길이 없어 썩을 고인물을 강렬한 태양이 마르게 하듯,
진리의 태양이 높이 떠 그 강렬한 빛으로 원초적 불안과 욕망들을 깡그리 태우고,
자유의 바람이 몰아쳐 그 잔재들을 대지위에 흩 뿌리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물만두 2005-05-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스톤해드님...

릴케 현상 2005-05-3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설고 기뻐서 술병을 따던 저녁
^^예전에 이 구절을 즐겨 이야기했었죠

물만두 2005-05-3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 구절이 맘에 와닿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