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5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눈길이라는 작품에서 해변 아리랑까지 연대기순으로 작가는 늘 한 가지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 고향과 어머니와 가난... 그것은 내가 모르는 내 어머니의 기억이지 내 기억은 아니다. 공유할 수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읽는 것은 읽는 내내 외할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작가와 같은 위치고 내 외할머니는 작가의 노모 같은 위치다. 내 외할머니는 슬하에 위로 아들 셋, 아래로 딸 넷을 두셨다. 하지만 6.25전쟁 때 막내아들을 북으로 보내셨고, 얼마 뒤 큰아들을 병으로 잃으셨다. 큰아들 죽은 지 한 달 만에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마지막 남은 가운데 아들마저 내가 아홉 살 나던 해 어이없게도 비새는 지붕 고치러 올라갔다 떨어지는 바람에 가슴에 묻으셨다. 가산은 기울고 종내는 돌보지 않는 장손 집에서 혼자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죽는 모습 못 본 막내가 올 새라 보다 나간 책까지 소중히 간직 하셨다 하던 외할머니... 그때 돌아가신다고 끝내 외삼촌 마지막 모습을 못 보게 말리셨던 큰 이모는 일흔 다섯이 된 지금에서야 그때 아들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여 드릴 것을 하며 후회하신다.

 

별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눈길을 눈밭을 자식 발자국을 따라 걷던 눈길로도 읽었고 또한 부모가 자식을 해바라기 하듯 바라보는 눈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의 눈길이 남아 고향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다. 고향이라는 곳이 어머니 눈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이라면 고향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가난하고 거친 손길이 닿고, 단내 나는 숨길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고향의 의미란 무엇일까. 고향에서 그리 끌려간 외삼촌이 살아 계시다면 이런 이유로 고향이 그리울 것이다. 어머니 계신 곳이라...

 

어머니와 가난은 왜 함께 하는 모진 숙명 같은 것이었을까. 경험하지 못해도 슬퍼서 우는 나는 무엇을 안단 말인가. 모진 것이 목숨이라 가난해도 이어가는 삶 속에서 인간은 성숙된다. 그 가난을 이기고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있기에 앞이 트여 뒤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청준의 한없는 고향 넋두리는 조금 지겹다. 인생사가 지겨운 것처럼 단조롭다. 그의 고향에 대한 생각은 눈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만이 그의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래서 때로는 고향을 등지고 멀리하고 아주 가끔만 누가 볼 새라 몰래 꺼내 보고 금새 집어넣게 되는 것 아닐까.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 내고 나니 진이 빠진다. 진 빠지게 하는 것이 고향이고 어머니인 모양이다. 그러니 떨쳐 버리려 한다면 생각 고쳐먹고 끌어안는 것이 좋으리라.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을 향해 머리를 누인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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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2-2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에 어느 정도 여성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죠.
여성은 없고, 어머니만 남았는데 그러면서도 여성을 갈구하는
남성으로서의 어떤 면을 ...이청준씨 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남성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의 함정 같은 것이요.

물만두 2005-02-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작가뿐 아니라 우리 나라 모든 남성들의 모습이죠. 그래서 중간의 중편 하나는 설렁 설렁 읽었네요. 아마 올 해 읽는 마지막 문학 작품이 될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