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그의 침울한, 소중한 이는 나다. 그가 나를 부른다. 아니다. 그는 자신을 불렀다. 또한 우리를 불렀다. 그의 시는 하나의 고해성사와 같고 나를 고해성사를 하게 만든다. 나는 병들어 침울하고 그런 나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나뿐이겠는가. 시인도 그러한 존재며 시인의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를 읽는 독자도 같다. 침울함이라는 단어와 소중함이라는 단어가 이루는 조화는 자기 연민과 자기 보호를 뜻한다. 자학적이기도 하지만 그런 자학을 감싸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다. 고독하고 힘들고 슬프다. 그런 침울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소중하다. 그런 인간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이 시들은 나를 감싼다. 포근하지는 않지만 칼바람을 막아 주는 바람막이는 된다. 그럼 된 것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한 것... 그 고단한 삶을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 쓴 약을 삼키듯 소태같은 혀를 내밀어 내리는 눈은 달콤하리라 상상하는 것.... 그 눈이 쓸개즙처럼 느껴졌을 때의 절망... 그러면서 다시 혀를 내밀어,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을 받아 혀 끗에 대보는 것... 인생을 천천히 가고 있는 우리 침울하고도 소중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버리지 못하는 껍데기를 부여잡고 이승을 좀비처럼 떠도는 우리... 침울한, 소중한 이들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