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테드 창의 단편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생각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리고 자연스럽게 테드 창만이 구현하는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첫 단편 <바빌론의 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의 차용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그의 몸 속에 흐르는 동양적 피에 그도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학력이 이런 결과를 끌어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바벨탑>과 비기독교인이 바라보는 <바벨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그래서 또 다른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와도 닿는 부분이 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 아무리 하늘을 뚫어도 인간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계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인간은 신에게 도전한 것도 버림받은 것도 아닌 하나의 성과물일 뿐이라는 것이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이리라.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선은 신을 향한 도전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도 그리 말하지 않으니 그 시대 바벨탑도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한다.

<이해>... 이 작품도 처음 봤을 때 다니엘 키스의 <생쥐에게 꽃다발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역자가 작가와 나눈 이야기에서도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것이니 비단 나만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 결말은 마치 사이버펑크적으로 윌리엄 깁슨이 쓸 만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물론 깁슨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또 다시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질적인 면에서 고착된다는 것에 있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아니 동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능... 그것이 이해를 방해하고 인간이 하나를 얻으면 둘을 잃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영으로 나누면>이라는 작품을 나는 수학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다. 수학을 알지 못하므로. 그러므로 난 자신이 믿던 세계가 무너져 버린 한 인간의 참담함을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그 참담함도 이해할 수는 없다. 영으로 나누면 모든 것은 무라는 자연스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말이다. 도를 닦으시지요 라고 말할 밖에... 인간에게 수학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수학만이 전부로 믿었다면 그것도 소용없으리라. 난 이 작품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인 단편이다. 이런 단편은 처음 읽는다. 이 작품에서 테드 창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말하고 싶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위해 외계 언어를 배우던 한 언어학자가 그 언어 속에 담긴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 인생의 전부를 미리 알게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인생을 알면서도 어찌 바꿔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흔 두 글자>는 유대인 전설의 차용과 대체 역사라는 두 가지를 접목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찰흙 인형에 글자를 넣어 움직이게 한다는 점만 빼면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재인 로봇과 같아진다. 물론 이 작품은 로봇에 대한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을 영국의 산업 혁명 시기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정자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전설로 인해 알게 된 인간 멸종에 대한 방책을 생각하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인간의 추함과 모순, 권력과 알력이 표현되어 시사하는 점이 가장 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멸종을 막는다는 얘기는 내 관심 밖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인류 과학의 진화>는 아주 순식간에 지나가는 초단편 작품이다.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옥은 신의 부재>는 마음에 든다고 하기 보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작품이다.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우리는 많은 지옥에 대한 똑같은 얘기들을 알고 있다. 불교에서의 연옥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곳... 그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통스런 지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고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럽냐고 묻는다면 육체적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육체적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마음의 고통이 더 크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육체적 고통만을 강조하는 지옥은 너무 진부하다. 이제는. 차라리 이 작품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신을 믿게 되었지만 신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이것은 <영으로 나누면>과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사후 세계에 관심도 없지만 이것이 가장 신의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신이 없는 곳에서 신을 믿는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어디가 지옥이란 말인가. 하지만 신이 진짜 인간을 시험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신을 자꾸 시험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런데 부모보다 더 큰 존재인 신이 인간을 시험한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은 인간 마음이 불러일으킨 지옥의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루키즘이란 신조어를 낳은 지구촌의 외모 지상 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기계 장치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외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 기계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성숙한 이성을 가짐으로써 외모보다는 더 나은 것을 찾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 영화배우가 연기는 못하면서 예쁘기만 하다면 모두 싫어한다. 아니 대부분... 또한 너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에게는 반감을 갖기도 한다. 그것은 교육과 자신의 인성의 발달로 충분히 커버될 문제다. 진짜 문제는 매스미디어의 장악력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이미 말했다시피 말이다. 또한 선동을 잘했다던 히틀러의 언변에 대한 경계다. 마지막에 외모보다 더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는 것도 작가는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어떤 것이 우리를 더 현혹하며 망치려 하는가... 각자 생각할 일이다.

단편 하나 하나가 정말 대단하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할 때 책의 두께에 놀라고 책 내용의 어려움에 놀라고 그 깊이와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정말 대단한 작가가 등장했다. 그가 어떤 장편을 쓸지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SF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않고 봐야할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SF 독자가 아니라고 해도 안 보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떤 단편 하나만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며 그 단편이 어떤 단편일지는 읽어봐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후회하며 산다. 늘 그렇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지 않고 무심코 지났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책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여기 있다. 지금 당장 이 책에 눈길을 주시길... 왜냐하면 이 책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리 길게 쓰고도 내 글은 한심하다. 왜냐하면 이 책을 내 글로 적기에 나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난 백문이 불여일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누군가 서평을 쓴 것을 읽는다 해도 본인이 직접 책을 읽고 느끼는 것보다는 언제나 못한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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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리뷰쓰고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너무 벅찬 책을 읽느라 죽을뻔했습니다... 그래도 님께 권하고 싶어요. 너무 좋은 책이거든요^^

물만두 2005-01-1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맘이 님 맘이지요^^ 저도 읽고 제 자신이 기특했다니까요^^

BRINY 2005-01-1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빌론의 탑]겨우겨우 읽고 테드 창은 포기했어요. 젤라즈니를 좋아하지 못하는 제 취향때문인지, 하여간 어려운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물만두 2005-01-1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하기 무지 힘들죠. 그래도 <네 인생의 이야기>는 개중 쉽고 뒤로 갈 수록 탄력을 받을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고 천천히 읽으세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1-23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하나도 안 한심합니다. 너무너무 좋은 책이라는 느낌 팍팍 받으시면서 책 읽으신 거 느껴집니다. 그리고 만두님 리뷰도 무척 훌륭합니다. ^^ 추천하고...

물만두 2005-01-23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반가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