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현직 경감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를 한다. 하지만 그가 아내를 살해한 것은 이틀 전. 그는 이틀 동안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이것을 가지고 경찰은 경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은폐를 하려 하고 검찰은 경찰의 은폐를 묵과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역시 검찰의 비리가 드러나는 바람에 교환 조건이 되고 만다. 그리고 신문 기자들도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된 채 그의 형이 집행된다.

그 사라진 이틀이 무척 궁금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것은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실망과 더불어 그것을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끌어올 수 있었던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장르를 생각하지 말고 읽어야 한다. 장르로 보면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다.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틱하다. 추리 소설 독자가 일천한 우리 나라에서 이 작품은 <비밀>처럼 멜로 드라마 형식으로 봐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사라진 이들. 한 경감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한 뒤 이틀이 지나서야 자수를 한다. 보통 일본 경찰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살을 하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조직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런데 가장 조직적인 경찰의 간부인 경감이 그런 조직의 생리를 무시하고 자살도 하지 않고 이틀 동안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자수를 한 것이다. 이것은 경찰, 검찰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된다. 그리고 또한 그 경감의 인품이 어떤 사정을 호소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1년만 더 살기를 원한다. 왜 일년인가, 그는 왜 이틀이 지난 뒤 자수한 것인가.  

이것이 이 작품이 따라가는 발자취다. 경찰, 검찰 모두 이 족적을 따라 움직이며 독자도 이들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다 마지막에 쾅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추리 소설의 반전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모두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작가가 추리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추리적 요소, 경찰 조직과 검찰 조직간의 알력이나 기자들간의 질투와 특종을 위한 사투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실질적인 인간애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서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트랜디 드라마같은.

마지막 장을 덥은 지금 나는 아직까지 생각한다. 과연 가지 경감은 살 것인가, 자살할 것인가. 사는 게 나을까, 죽는 것이 나을까. 그런 점이 사라진 이틀에 이은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사라진 미완의 그림같이 느껴졌다. 역시 독자의 한계는 마지막 상상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우린 지금 세상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 작품은 독자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옳고 그름과 진실과 거짓을 떠나 한 인간으로 한 세상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작품의 화두는 살인자가 되어 버린 한 남자가 쓴 ‘인생 오십’이라는 글귀다. 인생의 오십에 남자는 생을 마감하려는 것인지, 아님 어떤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이 작품은 결말 부분에 드라마틱한 감동을 준다. 인생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그리 녹녹치 않은 것임을 알기에 그 부분이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사라질 이틀의 사연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니까. 

좋은 작품이었다. 추리가 빗나가지 않은 점이 좀 아쉬웠지만. 신선하고 색다른 작품이었다. 추리 소설을 싫어하는 독자라도 한 편의 문학 작품으로 생각하고 읽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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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9-0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를 떨구어내고 리뷰에서 만나니 너무 좋아요!!

물만두 2004-09-0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감기 다 나셨죠. 에구 개운하다 싶었더니 달거리중이네요. 이런... 생리통은 없는 체질이지만요...

sunnyside 2004-09-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만두님 리뷰 보고 저 책 읽었어요. 다 읽고 나니 추리소설이 아니더군요. ^^;
그래두 말씀처럼 여운이 있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주체들을 하나 하나 묘사한게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