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식시종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중세 이탈리아의 한 영주의 시식시종이 된 우고 디폰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조선시대 내관들이 왕들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시식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우린 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지는 않는 것일까? 정조의 죽음을 다룬 작품이 있기는 했다.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내용의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하지만 그런 정조의 옆에는 시식시종과 같은 내관이 있었다. 뭐, <영원한 제국>을 읽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p14 예전에는 배가 고프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배만 고픈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고팠다. 아니, 마음이 더고팠다.

죽지 않기 위해 먹어야 하는 남자. 영주의 독이 든 음식을 가려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중세 이탈리아의 우고라는 남자가 쓴 작품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믿을 수 없다. 원본을 본다면 모르지만. 역자인 미국인이 원본 사진이라도 실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작가의 트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작농에서 얼떨결에 영주의 시식시종이 된 우고. 딸만 데리고 사는 이 남자는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죽지 않기 위해 음식의 맛도 모른 체 먹어야 한다.  

독이 들었을 까 봐 걱정하는 영주와 그 영주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시식시종.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그래서 감히 이 작품이 그 시대의 한 시식시종이 적은 자서전적 내용을 피력하고 있는 피터 엘블링의 말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역자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흥미롭다. 시식시종이라는 하인의 관점에서 쓰여진 중세 이탈리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실이냐 허구나를 떠나서 누군가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동시대도 다른 시각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중세 이탈리아의 주교가 여자를 시식시종으로 거느렸을까는 의문이 든다. 가장 여자를 천시하는 자들이 그 시대 종교인이었으니까. 또 한가지 갑자기 끼어 든 우고의 허구라 말한 꿈을 천연덕스럽게 진짜처럼 쓴 것.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거기다 미란다의 이상한 변화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지. 이 작품이 차라리 허구적으로 우고 디폰테는 지혜를 발휘하여 독을 알아차리고 잘 먹고 잘 살았다 였다면 좋았을 텐데 같은 끝맺음이라도 좀 씁쓸한, 약간의 모자람이 눈에 거슬리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자전적으로 보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하지만.  

시식시종이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왕의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를 미리 먹어보는 내시와 같다. 이탈리아 중세의 한 책을 발견했다는 식으로 프롤로그를 풀어가는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는 그것마저 진짜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독특한 소재이기는 하나 배경만 다를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아 약간의 흥미 외에는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을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치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요, 그들이 폭군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함을 알 수 있다.  

음모와 배신, 인간의 절망과 희망이 담겨있는 한 소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거창하지 않은 중세 역사를 허구적으로나마 재미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책이란 어떤 기대를 가지고 보느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작품을 한 남자의 인생역전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죽음의 나락에서 시식시종으로나마 살아남아 어린 딸을 먹여 살리려는 아버지의 가련한 몸부림이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이야기와 음식 이야기가 재미있는 작품이다. 시식시종으로 겪어 나가는 우고의 일상 생활 또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다지 기발하지는 않다. 관점을 달리 한 중세 유럽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당시 독일이 그렇게 좋게 대접을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작품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라 의아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지만 픽션이라면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책이 아니니까. 아무튼 중세로의 가벼운 여행을 작은 괴기스런 방법으로 하고 싶다면, 중세 이탈리아의 시식시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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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09-0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 전 재미없다고 할 수록 더 읽고 싶은 걸까요? 개구리심보.

물만두 2004-09-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자 취향이 다르니 읽고 싶으시면 리뷰에 상관없이 읽으세요. 저도 그래요...

waho 2004-09-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함 읽어 보려 했는데 나중으로 미뤄야 겠네요.

물만두 2004-09-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세요. 읽고 좋은 리뷰 써서 저를 각성, 반성하게 하셔야죠...

그린브라운 2005-05-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글 읽었으면 안샀을텐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기는 했지만. 뭐 지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뭔가 맘에 안드는 애기였습니다...-_-0 진짜 그냥 그랬어요...

물만두 2005-05-0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저두 그랬어요^^;;;

물만두 2007-04-0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슬비님 에구 잼있으셨어야 하는데요^^:;;

물만두 2007-04-0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