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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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의 단편 작가하면 보통 안톤 체홉이나 톨스토이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마르셀 에메라는 작가는 듣는 이 처음이었다. 읽고 나니 이 작가의 작품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고 학창 시절 안톤 체홉과 같은 정도의 중요도를 가지고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르셀 에메의 작품은 다분히 동화적이면서 미스터리적이고 SF적이다. 작가도 자신의 능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프랑스에서는 체홉보다도 높게 평가되는 단편의 귀재라는데 처음 접하게 되니 민망할 따름이다. 제목이 미스터리적이라 산 책이다. 이렇게 좋은 책인 줄은 몰랐다. 역자가 구구절절 성의 있게 후기를 썼는데 그게 단편 하나 분량이다. 작품성을 떠나 역자와 출판사의 성의가 보여 좋았던 작품이다. 처음 만난 작가고 처음 읽는 작품이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독특한 독서 체험이었고 보석 같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가루가루를 좀 더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뤼팽에 필적할 인물의 시리즈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한 편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캐릭터다. 하긴 그래서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가 시리즈인 건 아니니까.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자신이 언제가 벽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평범한 소시민.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폭발해서 자신의 능력을 범죄에 사용하다 마지막에 사랑에 사용하다 힘이 빠져 벽안에 갇히는 최후를 맞게 된다. 지금도 이 책 속의 동네에 가면 그가 벽 사이에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고 한다.

5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아쉽게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아니라 <생존 시간 카드>와 <천국에 간 집달리>다. 이 두 작품은 그 다지 동화적이지 않으면서 SF적 느낌과 그래도 내게 익숙한 보르헤스의 현실적 환상 문학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 간 집달리>와 같은 작품은 미스터리 작가나 SF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재의 환타지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가장 작가의 유머러스한 점을 강조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익숙한 작품이 눈에 더 들게 마련인 모양이다.  

가장 동화적인 작품은 역시 <칠 십리 장화>였다. 제목이 사를 페로의 <엄지 동자>에 등장한 칠 십리 장화를 그대로 따와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지 마지막의 장면이 동화적이라 그런지 가장 동화다우면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속담>은 가족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며 군림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가족이란 상호 이해, 서로간의 존중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위고 자식은 아래라는 식의 상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인 수평 관계여야 함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다른 단편들. 모두 동화 같으며 상징적이고 대단하다. 아름답고 간결하며 재미있고 따뜻하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느끼던 환상적 아름다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어떤 평론도 하지 말고 그냥 독자의 느낌에 맡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평론을 하기에도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또한 이 작품 말고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어 있으니 그 작품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작가를 만나 기쁘다. 다섯 단편이 모두 나름대로 특색 있고 재미있고 우아하다. 일상에서 한 박자 쉬어 가는 여유를 주는 편안한 진짜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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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3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특이하고 재밌죠...님도 즐독하셨군요..ㅎㅎ

물만두 2004-04-3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 작가 책을 모두 읽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님 읽으셨으면 가르쳐 주세요. 재미있는지...

방긋 2004-07-10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읽어본 거 있어요!
'착한 고양이 알퐁소'
이건 정말 우화랍니다. 이솝우화나 라퐁텐우화같은...
그러나 천연덕스런 말솜씨에 홀딱 넘어갑니다. ^^
마르셀 에메만의 독특함을 느끼실 거에요.

물만두 2004-07-1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 작가 책을 모두 읽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