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이다. 역시 작가는 데뷔작에서부터 과햑으로 증명하기 힘든 소재, 그런 것들이 주는 공포가 일상 생활에서 또는 비일상적 사건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다중 인격을 다룬 작품이다. 다중 인격을 가진, 즉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 치히로와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으로 인해 가출하게 된 유카리가 한신 대지진때 만나면서 시작된다. 다중인격을 알게 된 유카리는 치히로를 걱정하며 그녀의 상담 교사를 찾아가기에 이르고 그러면서 치히로 안에 있는 인격 중 지진으로 인해 13번째 인격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 인격의 이름은 이소라, 비밀에 쌓여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인격인데 유카리는 그 인격에서 살기를 감지하며 그 인격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치히로가 어떤 이유로 다중인격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 이해하기 힘든 치히로 주변에서 치히로를 괴롭히던 이들이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하자 유카리는 치히로의 13번째 인격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감시하게 된다. 다중인격은 진짜라고도 하고 가짜라고도 하는 말이 많은 증상이다.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불러야 맞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보편적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콘트롤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분출되는 현상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얌전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화가 나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보통 '안 그러던 사람이 변했다.',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런 것으로 이해하면 좀 쉽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다중인격에 대한 미스터리는 계속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초능력과 비슷한 인간의 마음을 읽는 엠파스라는 능력에 대해 나오는데 다중인격과 이 초능력이 합쳐져서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게 되는 공포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좀 더 사실적으로 배경에 묘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유카리를 통해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심어주는 공포는 만만치 않다. 역시 기시 유스케는 데뷔작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기이한 일로 시작해서 기이한 공포를 남기고 끝나는 책을 덮은 뒤 으스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공포와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기이한 공포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다양한 공포의 체험장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숙부내외와 살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받은 치히로의 삶과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어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고 급기야는 가족의 냉대와 따돌림속에 집을 나와 험한 일을 하며 살게 된 유카리의 삶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포다. 여기에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더해지고 인간의 탐욕이라는 공포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공포스런 괴물이 탄생하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공포는 우리의 무심함이라는 공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다운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세계를 알려면 필히 봐야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가 <검은집>이라는 호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을 보여준 뒤 청춘 소설같은 느낌의 <푸른 불꽃>으로 혼란에 빠지게 했다가 <천사의 속삭임>이라는 호러 작품으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의 베이스에는 어두운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각기 다른 소재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을 만나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뿐 근본적인 작가의 호러에 대한 탐구는 변함이 없음을 나는 오히려 그의 데뷔작을 읽고 깨닫는다. 약간은 허술한 듯하기도 하지만 공포만은 살아있는 데뷔작다운 신인 기시 유스케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