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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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난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내가 있어 존재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그런데 왜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의 주인공인 나는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러다 나이를 먹고 변함없이 나는 주인공이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주인공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서 보자면 무명씨 1일뿐임을. 

이 작품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부딪침 속에서 깨닫게 되는 소소하고 작은 일상의 미스터리와 비일상의 흥분과 두려움을 담아내고 있다. 시즈카는 이복 오빠 겐고의 여자 친구인 유카리로부터 오빠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함께 오빠를 찾으러 나라로 떠난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던 시즈카는 유카리는 이미 죽었고 자신과 함께 오빠를 찾으러 나선 사람이 겐고와 유카리의 친구 다에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대체 다에코가 겐고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될지 시즈카는 내내 불안해 한다. 그러면서 점차 시즈카는 다에코에게 동화되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온다 리쿠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자신의 기억 속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끄집어내 회상하게 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고등학교2학년때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가 생각났다. 처음 기차를 타고 가던 기분, 창 밖으로 보이던 낯선 풍경들, 집에 돌아오던 길의 왠지 모를 서먹함까지 이십년도 더 된 일들이 눈 앞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감을 느꼈다. 이 작품은 여행을 통해 주인공과 독자 모두에게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잊고 산 것에 대해 마주보게 한다. 그것을 찾는 과정,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 미스터리이자 일상 속 비일상, 현실 속 비현실이 공존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사람이다. 시즈카, 다에코, 겐고. 하지만 그 밖에 더 많은 인물들이 늘 그렇듯이 삶 속에서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과 같이 등장을 해서 주인공도 되고 조연도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여행과 비일상을 두려워하는 시즈카, 늘 당당하고 쿨함을 보여주지만 겐고에게는 여리게 느껴진 다에코, 겐고의 연인이자 다에코의 친구였던 그들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유카리,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어딘가 과장되게 자신의 미소를 포장하는 겐고. 이들의 모습은 불안전하고 아슬아슬하다. 그들은 저마다 비밀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 비밀이 시즈카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시즈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알고 있을까? 또한 얼마나 자신과 친한 사람들, 가족, 친구에 대해 알고 있을까?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안다고 생각하고, 모른 채 무심하게 넘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온다 리쿠는 늘 이렇게 사람들의 소소한 삶에 미스터리를 부여하고 모든 진실을 토해내게 만든다. 몰라도 좋을 것들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 작가의 모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알아도 뽀족한 수도 없고 아는 순간 그래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작가도 주인공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좋든 싫든 감수하는 것이 주인공된 자의 몫이라고 말이다.  

여행과 미스터리,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작품이다. 인생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떠난 앨리스의 이야기와 같다. 우리 모두는 토끼를 따라 간 앨리스다. 호기심에, 또는 그것이 최선이라 따라 가지만 어디선가 토끼는 사라지고 자기 혼자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설레기도 하지만 약간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낯선 곳을 간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고 모험이니까. 하지만 여행을 할 때는 매료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여러가지 느낌을 갖게 된다. 작품은 그런 사람들이 가질 느낌을 잘 묘사하고 있고 특히 나라라는 도시를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사이 사이 수록된 작품과 연결되는 듯,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동화같고 잠언같은 짧은 이야기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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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찌뽕 저랑 별점이 같네요.. 작가의 작품치고도 범작인듯 해요.

물만두 2009-06-10 11:20   좋아요 0 | URL
여러 작품이 생각나는 수수한 작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