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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ㅣ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작품의 시작은 1930년대 기아에 허덕이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조명한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 쥐도 몽땅 잡아 먹고 나뭇가지를 씹어 먹고 그러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는 인간뿐인 마을엣서 고양이 한마리를 어린 파벨은 발견을 하고 동생 안드레이와 함께 잡으러 갔다가 사라지고 안드레이는 우상인 형이 아둔한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형을 찾아 헤매다 돌아오지만 엄마는 이미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제 시간은 흘러 1950년대가 작품의 현재가 된다. 주인공은 국가안보부 요원 레오다. 그는 대애국전쟁이라고 구소련이 이야기하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신문에 실려 MGB에 뽑혔고 출세 가도를 달리는 전도 유망한 청년이다. 그에게는 아내도 있고 고생하던 부모를 좋은 아파트에 살게 할 힘이 있다. 그는 국가를 맹신하는 인물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국가가 좋아야 국민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부하 직원의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주장을 이성을 잃은 판단이라 여겨 사고로 처리하고 감시하던 스파이가 도망을 가서 쫓아가서 잡아오는데 그 와중에 부하인 바실리가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알게 된 사실은 그 스파이로 지목된 수의사가 단순한 수의사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문에 의해 자백을 하고 다른 스파이들의 이름을 말하는데 그 이름 중에 레오의 아내 라이사의 이름이 올라있다.
작가는 이제 도입부만을 보여줬을 뿐인데도 독재자가 지배하는 공포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어느 한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국가가 관심을 갖지 않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라는 말이 없더라도 정치는 존재하니까. 세상에는 늑대, 양,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만든 사상, 이념, 종교, 믿음 등 모든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은 절대 완벽할 수 없다. 그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거나 믿는 것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잘 나타내는 곳이 독재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레오는 라이사를 조사하는 일을 하면서 라이사가 스파이이건 아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레오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라이사, 자신의 아내를 고발하면 그는 국가의 신뢰를 얻게 되지만 자신의 양심을 버려야 한다. 그에게 양심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그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소속된 MGB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라이사를 무죄라고 주장하면 레오와 라이사, 그리고 그의 부모님까지 모두 죽게 된다. 이것이 그가 믿고 따른 체제가 돌아가고 유지되는 원리였다.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를 고발하게 하는 것. 그는 아내를 선택한다. 그때 스탈린이 죽음을 맞이해서 그는 요행히 목숨을 건져 시골 민병대로 좌천된다. 그 길에서 그는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된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아내가 그가 무서워서 죽지 않으려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것이 일반인에게 각인된 국가를 대표한다고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MGB의 실상이었다.
국민이 믿지 않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 국가가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아내가 남편의 고발을 두려워하고 이웃이 서로를 두려워 하고 친구가 친구를,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게 부추기는 국가면서 범죄는 없는 국가가 되고자 한다. 살인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엉뚱한 사람들을 범인으로 잡아 해결됐다고 한다. 이것이 국가가 국민의 미래를 지켜주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다. 레오는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이들만 살해하는 살인자를 잡기로 한다.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연쇄살인범이다. 도대체 그는 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에 해가 되는 인물을 죽이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또한 그것이 국가를 맹신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지난 날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갚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누군가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작품은 구소련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 영웅에서 한순간에 몰락하는 레오의 모습과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아 레오와 다른 시각으로 국가를 보는 라이사의 모습, 그리고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살인이 아닌 그 이면에 드리워진 인간 세상의 그늘을 발견하게 하고 있다. 스탈린의 공포 정치만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만 강요하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와 국가는 모두 어느 정도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공포란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사회에만 있는, 또는 있었던 일이 아니다. 독재라는 이름으로, 또는 독재라 느끼게 만드는 모든 정치가 있는 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과거에도 일어났던 일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가치있게 읽혀지는 것이다.
작가는 실제 구소련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 스탈린에서 후르시초프로 이어지는 시기를 꼼꼼하게 조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생생하게 느껴지고 장면 묘사가 세밀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잘 쓰고 있다. 그것도 레오의 입장에서 말이다. 어떤 감상도, 이데올로기의 편향도 느낄 수 없어 더욱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어 그 점이 가장 좋았다. 걸출한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