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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쓴 시대 미스터리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제목 그대로 괴이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괴담이라고 이름붙여도 될 법한 미스터리하지만 추리소설적이지 않은 환상소설들이다.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는 재미있다. 마치 우리네 <전설의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릴적 할머니께서 잠자리에서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져서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있다.
모두 9편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들 작품은 배경이 에도시대일뿐 아니라 그 시대 하층민인 고용살이 일꾼들이 겪는 괴이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대부분 주인공이 고용살이 일꾼들이고 이들 고용살이 일꾼들을 가게에 소개하는 중개업소의 소개꾼, 그들이 모여 사는 공동 주택의 관리인, 가게 주인도 등장하여 고용살이 일꾼의 고된 노동과 열살 남짓한 나이부터 남의 집살이를 해야 하면서도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분수를 일깨우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부지런함과 정직한 노동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읽을수록 현대의 노동자와 다르지않음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런 처지가 괴이한 것들을 좀 더 많이 접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꿈 속의 자살>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입을 줄이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고용살이 일꾼으로 들어가 그 집 도련님과 또 다른 고용살이 하녀 사이에 일어난 일을 그 시대 유행한 수건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고 동반 자살한 사건과 연결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림자 감옥>은 한 늙은 대행수가 자신이 겪은 가게에서 일어난 참극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이불방>은 고용살이 하녀로 일을 하다 비명횡사한 언니 대신 그 집에 다시 고용살이 하녀로 들어가게 된 어린 소녀가 겪게 되는 일을 <전설의 고향>의 느낌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매화 비가 내리다>는 고용살이 일꾼이 되지 못한 누나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이제는 결혼을 한 남동생의 서글픈 추억담이다.
<아다치 가의 도깨비>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으로 도깨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여자의 머리>는 한 소년이 엄마를 여의고 공동주택 관리인의 소개로 한 가게에 고용살이 일꾼으로 들어가서 겪게 되는, 그러면서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까지 알게 되는 역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 작품이다. 여기에 호러적 분위기가 좀 더 있고 재치도 있는 작품이다. <가을비 도깨비>는 중개업소를 찾아가서 이상한 이야기만 듣고 온 하녀의 이야기가, <재티>는 갑자기 난폭해진 하녀와 낡은 화로에 관련된 이야기로 마치 만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바지락 무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개업소를 이어 받아 일을 하던 한 남자가 아버지 친구에게 듣게 되는 오싹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세상에는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고용살이 일꾼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의 자식들이다. 아니면 혼자 남겨진 쓸쓸한 이들이다. 그 모습이 마치 내 할아버지, 아버지 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사람들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를 연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도시 괴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에도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과거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는 그 시대 괴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괴이한 것은 도깨비나 마물, 원혼을 품은 유령 따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어린 나이에 고용살이를 해야 하는 두려움, 나아지지 않는 미래에 대한 비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시기, 질투, 의리 등 그들이 겪어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괴이한 이야기로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를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보이지 않는 도깨비같은 <아다치가의 도깨비>처럼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그런 점을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리라. 그런 이유로 괴담이지만 무섭거나 오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 무서운 존재인 인간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