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전쟁 직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근 60여년의 경관으로 이어져 오는 안조 가족 3대를 통해 그 시대와 그 시대 경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보통 3대면 백여년의 시간인데 60년이라는 시간이 단적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을 말해주고 있다. 작품은 일본 경찰이 그동안 변화된 모습과 함께 변화된 일본 사회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3대에 걸친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고 그 미스터리를 적절히 완급을 조율하며 이어 나가는 점은 3대의 이야기에 스릴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작가의 글솜씨가 참 매력적이다. 정말 전혀 새로운 경찰 미스터리다. 아니 경찰 역사서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1대 안조 세이지는 전쟁 후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이 임신한 아내를 위해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이 된다. 당시 경찰의 이미지는 안좋았지만 같이 교육받은 동기들과 함께 민주 경찰의 길을 걷기로 한다. 동료들은 저마다 경찰로서의 목표가 컸지만 안조 세이지는 주재소 순사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덴노지 주재소에 근무한 지 얼마 안되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가난했지만 정이 많았고 어떤 이의 죽음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기에 두 건의 미해결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왜 그는 죽게 된 걸일까는 이후 3대에 걸쳐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된다.  

안조 세이지의 세대는 전쟁과 가난을 겪었지만 희망이 있던 세대다. 물론 안좋은 면도 있지만 그래도 나아지리라는 하나의 생각만으로 나아갈 수 있던 세대다. 말하자면 등 따시고 배부르면 좋았던 세대라는 뜻이다. 그 중에서 민주라는 이름으로 살고자 했던 안조 세이지는 어쩌면 평범하지만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 보면 그는 참 대단한 아버지다. 아들과 손자까지 경찰로 자신의 모습을 닮으려 애를 쓰게 만들고 또 이웃의 아이들조차도 경찰의 꿈을 이루게 만들었으니까. 쉽지 않은 길, 험하고 박봉인 길을 기꺼이 따르게 만든 안조 세이지, 그런 경관의 피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해야 하는 것은 경관이 아닌 그들이 필요한 우리 시민이 아닐까 싶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모자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란 2대 안조 다미오는 아버지 친구들인 남은 세명의 동기들 삼촌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안 경찰이 되어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된 학생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스파이로 대학에 잠입해서 적군파 학생들을 잡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로 모두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마침내 아내를 구타하는 폭력남편이 된다. 그러다가 아버지처럼 다시 덴노지 주재소 순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도 잠깐 아버지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 사건들을 파헤치다가 아버지와는 달리 인질이 된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고 마약중독자의 총에 맞아 숨진다. 
 
좋은 아버지의 본보기를 보고 자랐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고 아버지 세대는 전쟁이라는 참상을 겪고 가난을 겪은 세대라면 다미오의 세대는 사상과 이념이라는 문제로 고민하던 6,70년대 학생운동의 시대다. 평범하고자했던 다미오는 시대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 않던 다른 경찰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시대와 다미오의 고뇌, 그리고 좋은 아버지로 남고 싶어하는 다미오의 모습이 마지막에 있었기에 경관의 피가 3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눈에는 다미오가 참 안쓰럽다. 누가 스파이가 되고 싶겠는가. 

3대 안조 가즈야는 대학 졸업 후 경찰이 된다. 그에게는 늘 3대째 경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처럼은 아니지만 상관의 비리를 캐내는 경찰 내부의 스파이가 되고 만다. 왜 안조 집안은 편하게 경찰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인지. 하지만 가즈야는 3대 경관의 피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가즈야는 오랜 세월 할아버지가 수사했던 사건의 내막과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 

3대 안조 가즈야까지 단숨에 60년을 지나온 기분이다. 3대 경관의 피는 그렇게 이어졌다. 한과 피와 긍지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손자까지. 그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모습이기도 했고 나쁜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아버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였다. 흠이 있다면 묻어두고 본을 삼고 싶은 것만 가슴에 새겨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3대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변화하는 모습은 마치 변하는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3대 안조 가즈야에게서 1대 안조 세이지의 평범한 동네 아저씨같은 순사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제 그런 경찰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즈야의 가슴 속에 경찰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만은 변하지 않았다. 경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이 안조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전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멋진 작품이다. 최고의 경찰 미스터리다. 마지막 가즈야가 할아버지가 쓰던 양철 호루라기를 부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살아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선과 약의 경계선에 선 자가 경찰이라고 가즈야는 말한다. 그 경계선에서 악을 몰아내는, 등을 선에 돌리고 경계선을 잡고 악과 대치하는 그런 경찰이기를, 그런 경찰로 남기를 모든 경찰에게 바란다. 다 읽은 뒤에도 당장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그런 작품이었다. 책을 덮은 지금 내 가슴은 잔잔한 감동으로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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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02-1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꼭 보고 싶슴다! 지금 제 책장에 살포시 놓여져 절 유혹하고 있죠..ㅋ

물만두 2009-02-17 14:02   좋아요 0 | URL
꼭 보세요. 정말 대단합니다~^^

Kir 2009-02-1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물만두님. 아무래도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일본에서) 특별 드라마 제작얘기를 듣고 알게된 작품인데 책은 아직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은 건지 읽은 사람이 드물더라구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물만두 2009-02-18 18:5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책도 조만간 많은 사랑받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읽어보세요^^

BRINY 2009-02-2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만두님, 벌써 완독하셨군요!

물만두 2009-02-28 10:36   좋아요 0 | URL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