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젤의 음모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항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리스 아쿠닌의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 첫 작품인 <아자젤의 음모>에 대해 셜록 홈즈처럼 발로 뛰는 류의 작품이라고 했다. 뭐, 19세기 영국에는 셜록 홈즈가 있었다면 19세기 러시아에는 판도린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동의한다. 그렇게 따지만 19세기 터키에는 야심이 있었다. 아, 모두 거의 동시대 탐정들이다. 이들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어렸을 적에는 부유했지만 아버지 대에 망하는 바람에 고아로 혼자 커서 14등관 서기로 경찰에 입문하게 되기까지 나름 혼자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머리만은 명석하고 행동이 재빠른 판도린은 수사 과장 그루신이 읽는 신문에 난 한 사건에 주목한다. 그 사건은 바로 한 청년이 공원에서 자살한 사건이다. 그는 단지 재미난 이야깃거리로 들려줄 요량으로 판도린을 그 자살한 청년의 유서를 베껴오라고 시키지만 판도린이 가 본 결과 그는 그 이면에 무언가가 숨어 있음을 감지하고 좀 더 조사하기로 한다. 

처음 이 자살 사건의 조사때까지만 해도 나는 셜록 홈즈류의 작품일거라고 생각했다. 19세기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젊은 탐정 판도린이 홈즈처럼 날카롭게 사건을 파헤쳐서 해결하는, 그러면서 약간의 모험이 가미된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그 뒤 판도린이 아흐트이르체프를 쫓다가 미모의 아말리야의 사교 모임에 나가고 그러다가 아흐트이르체프가 살해되고 자신 또한 바이런 경이 없었다면 살해됐을 지경에 몰리자 작품은 '아자젤'이라는 말을 외치는 과격한 니힐리스트를 쫓는 전형적인 경찰 소설의 성격을 띠게 된다. 도망간 아말리야를 쫓아 모스크바에서 런던까지 가게 되는 과정에서 상관이 브릴링으로 바뀌고 그는 판도린의 직급을 9등관으로 올려주며 판도린의 가설을 한번 믿어준다.  

19세기 러시아에 대한 묘사가 마치 뒤에 있을 혁명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암울하고, 여러 국제 정세는 국가간의 알력과 이해가 맞물리고 있고 그 사이에 판도린의 무모하기까지한 저돌적인 돌진이 있다. 스무살이라는 나이에 판도린은 이미 그 이전에 겪은 인생의 쓴 맛보다 더한 쓴 맛을 보게 된다. 배신과 음모, 국제적 조직에 혼자 맞서 싸우게 되는 이 젊은 청년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가슴 졸이며 보게 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판도린의 모습이 영국적인 홈즈의 탐정적 재능과 프랑스적인 뤼팽의 고뇌가 함께 어울어진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19세기를 배경으로 21세기의 경찰소설을 읽는 느낌도 준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바로 판도린 시리즈가 지닌 중독이 아닌가 싶다. 19세기 격동의 시대의 변화를 겪게 될 러시아에서 더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게 될 판도린은 그 시대 러시아 그 자체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러시아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책을 덮는 순간 다음 작품이 보고 싶어지는 시리즈다. 판도린이 그만큼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권 건너뛰고 3편이 나왔다. 가슴 아픈 일이다. 시리즈를 순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묘미는 사건의 해결뿐만 아니라 판도린 그 자체의 변화에 있는데 그 외양적인 변화와 심리적인 변화는 차츰 독자를 매료시킬텐데... 뭐, 아쉽지만 <리바이어던 살인>을 봐야겠다. 그래도 모처럼 좋아할만한 탐정을 만나 기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오기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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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9-01-1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뤼팽을 흠모하는 저로선 물만두님의 리뷰가 확...땡기는데요.
이 책 찜~이에요.^^

물만두 2009-01-15 12:50   좋아요 0 | URL
뤼피니앵이시라면 강추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1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솔깃한 리뷰네요 ^^

물만두 2009-01-15 12:50   좋아요 0 | URL
읽으시와요^^

Kitty 2009-01-1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개구리처럼 리바이어던 먼저 읽은 1인입니다 ^^;;;
만두님 리뷰 보니 아자젤도 빨리 읽어야겠네요 ㅋㅋㅋ

물만두 2009-01-15 14:5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님의 리뷰를 안 읽었다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