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쉰아홉이라는 나이는 내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나이다. 그 나이의 평범함, 그 나이의 고민, 그 나이의 생활이라는 모든 것은 내게 십칠년이라는 시간 뒤에 겪게 될 일들이다. 내가 십칠년 전 나의 마흔 둘을 알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작가가 기리노 나쓰오라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 소개를 봤으면서도 나는 내심 '에이, 설마. 그래도 기리노 나쓰오 작품인데 미스터리가 없겠어?’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진짜 없었다. 끝까지.

쉰 아홉에 갑자기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된 조용히 살림만 하던 평범한 가정 주부 도시코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남편은 갑자기 죽고 오랫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재산 상속을 이야기하고 딸은 딸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바쁘다. 위로해 주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을 때만 위로가 될 뿐이고 혼자 있으면 막막하게 혼자 늙게 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때 어이없게도 남편이 자신 몰래 십년이나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코의 혼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도시코는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책을 읽는 틈틈히 엄마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미 지나버린 나이, 도시코보다 열살은 더 많지만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엄마가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보다는 이 책에 더 공감하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엄마라면 남편이 갑자기 죽었는데 자식이 재산 상속이니 같이 살겠다거나 하면 어떨 것 같아?"
"자식이 어렵다면 아무래도 도와줘야겠지만 대놓고 그러면 싫지."
"엄마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아버지가 바람 피운 걸 알았다면 어떨 것 같아?"
"배신감 느끼겠지. 하지만 죽었는데 어쩌겠냐? 그래도 상대방 머리는 쥐어 뜯어 놓을 것 같아." 

그런데 엄마한테 질문을 하다가 느꼈다. 엄마가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 입장이 아니라면 도시코의 기분을 정확하게 이해한다거나 공감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작가는 도시코의 친구들을 통해 그런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에이코, 미나코, 가즈요는 도시코의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에이코는 사십대라는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도시코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이 다르고 미나코와 가즈요는 아직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같은 나이, 같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나는 인생살이에 대한 미묘함을 평범한 인물들과의 비교속에서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도시코 남편의 메밀국수 모임에서 만난 남자들, 나이가 든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서글픔, 동지애, 나이에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를 잃고 결혼 사기를 당한 남자, 도시코의 순진함을 유혹하는 플레이보이, 캡슐 호텔에서 만난 목욕탕 할멈의 이야기와 작은 인연, 그리고 커피숍에서 만난 낯선 여성과의 대화 등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도시코라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조용한 아줌마의 심리와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은 에이코의 호세님을 향한 열정이다. 일본 아줌마들이 욘사마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는데 아마도 나이가 든 뒤 찾아오는 고독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도시코가 남편의 애인에게 연민을 품게 되는 점이다. 죄 지은 죽은 이가 없는데 산 사람에게 독을 품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돌아온다.  

마치 인생이 양파같아서 까도 까도 그 껍질이 그 껍질인 채 크기만 작아지고 눈물, 콧물 다 빼놓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냥 작아지면 작아진 채로, 눈물이 나면 나는 채로 그 사이 사이를 자기 나름대로 맘껏 보내보자고. 어차피 인생이란 별거 아니니까.  

책을 덮고 엄마는 얼마나 두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걱정하지마. 도시코처럼 혼자 쓸쓸하게 늙지 않게 할게." 이 말이 엄마에게 얼마만큼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엄마에게 이런 말 한마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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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01-1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가 이런 책도 썼군요. 상상이 좀 안가는... ^^

물만두 2009-01-14 09:54   좋아요 0 | URL
저는 설마했는데 진짜 이런 책을 썼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