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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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바이러스가 퍼져 전 인류가 순식간에 멸망한다. 단 한명만 남겨둔 채. 코카콜라사의 남극의 얼음을 이용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사전 답사 내지는 홍보전략으로 보내진 로라만이 유일한 생존자다. 이제 시티에는 로라가 기억하는 이들만이 남아 있고 세상에는 로라 혼자 남아 있다. 산 자의 기억에 의지해서 살아하가는 시티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을 가지고 남극을 벗어나 자신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아님을 알려고 애를 쓰는 로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이 세상의 축소판같은 시티라는 죽은 자들이 산 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머무르는 곳이 있다면 그곳 참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티에 가서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도 해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승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승에서 못다한 무언가를 시티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얼마나 좋을까 이런 단순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맹인의 생각처럼 나쁜 기억만을 가지고 그곳에 남아 살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퍼켓의 형처럼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은 그 나이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자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좋은 사람만 생각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시티는 좀 더 가혹한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은 지금 그들의 그 뒤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퍼켓은 인간이 몇 만명은 기억을 한다고 수를 세었지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억하는 지 모르겠다. 가끔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떠오를때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는 이도 있다. 자꾸 기억은 소멸되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이승과 저승 중간에 시티가 있어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가고 싶다. 상처는 이승에 두고 미움과 원망도 두고 고마움과 따뜻함만 갖고 가고 싶다. 남은 날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기억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표지의 저 빈 외투와 그 외투를 잡은 손이 인상적이다. 시티는, 인간의 기억은 저 빈 외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빈 외투만 남기고 떠난 인간을 말하는 것일까? 저 손이 움켜 잡은 것은 빈 외투일까? 아니면 외투에 남은 기억 한 자락일까? 자꾸만 표지를 보면서 생각하게 만든다. 저 표지가 말하고자 하는 기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떠난 뒤 남은 인간인 생존자 로라를 상징하는 것일까? 로라만 남기고 떠난 시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저 빈 외투를 잡은 손이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었다. 바이러스에 의한 멸망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바이러스가 퍼지는 과정은 작가의 대담함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그리지 않아도 무관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멸망하는 지구인들이라는 설정은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더욱 독특한 시티는 오히려 너무도 죽은 자들이 살던 세상과 같아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기억은, 인간의 상상력은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로라가 세상에는 무엇이든 버리는 사람과 어떤 것이든 간직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후자라고 한 말에서 시티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 로라의 남극 탈출기는 나라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전사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이런 요소들이 무리없이 하나의 SF 환타지 작품을 만들어 냈지만 내 마음에 가장 든 것은 시티도, 로라도 아닌 마지막 맹인의 이야기였다. 그런 잔잔하면서 무심한 작가의 글쓰기가 오히려 자극적인 글들의 홍수 속에서 마음에 남지 않을까 싶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이 작품은 가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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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09-0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읽다 내가 아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생각했답니다 ^^

물만두 2008-09-03 09:56   좋아요 0 | URL
그죠. 저는 몇명 안되는 것 같더라구요^^;;;

까칠마녀 2008-09-0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곱하기100'을 날리며 댓글을 달아봅니다.
'네**'에서부터 많은 책들이 저랑 중복되어,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또는 이 부분에서는 공감을 하는구나...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이렇게,또 같은 책의 리뷰를 갖고 님을 뵙게 되니 반가워...호들갑을 떨어봅니다.

물만두 2008-09-09 14:08   좋아요 0 | URL
같은 사람인줄 잘 아셨네요^^
서평 읽다보면 종종 느끼게 되죠.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