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비트
쇼지 유키야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심장 소리라... 나는 내 심장 소리조차도 듣는 게 괴로웠던 때가 있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단지 안 어울리게 너무 예민한 탓에 잠을 잘 때 심장 소리조차 들리면 잠을 잘 수가 없었을 뿐이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잠깐 잠을 잘라치면 꼭 엎드릴 때 심장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책상에 닿으니 들리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너무 싫었다. 심장 소리 좀  안 들으면 안 되나 그런 생각까지 했더랬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심장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버린 까닭에 이제는 멈추면 어쩌나 걱정을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심장 소리 들리지 않으면 걱정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 의미일 거다. 존재함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있어달라는, 내가 여기 존재하니 알아달라는, 너를 위해 뛰는 그런 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속삭이는 것이다. 가슴으로.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게 신호를 보내달라고. 콩닥콩닥 모스 신호처럼...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 그런 이야기가 펼쳐진다.

맨 앞장에 이런 말이 두 줄 적혀있다.
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니? can't you hear my heartbeat?
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니? can't you hear my heartbeat?


그 앞에 이런 말을 나는 덧붙이고 싶다. ‘그때 청춘의 심장 소리를 다시 듣고 싶지 않니?’ 이 작품은 바로 그때 십년 전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미국에서 돌아온 ‘반장’이라고 불렸던 모범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십년 뒤 만나서 사랑하던 야오에게 1억엔을 준다고 약속했던 날. 하지만 야오는 나타나지 않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야오의 실종만을 알린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반장’은 생각이 난 단 한명의 친구인 메구리야를 찾게 되고 그 집에 있으면서 같이 야오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심장이 쿵쾅거릴 때까지 마음껏 달려보겠니?’ 초등학생 부잣집 도련님 유리가 유령 소동에 휘말리면서 같은 반 친구인 혼마와 에미가 함께 유리의 어머니 유령의 정체를 밝히려고 나서는 이야기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해서 두 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줄 알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읽었다. 번갈아 나오는 ‘반장’네 세 친구의 이야기와 유리네 세 친구 이야기가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처음에 등장하지 않아서 순간 ‘반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착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두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서로 닮은 세 친구, 한쪽은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의 젊은이들이고 다른 한쪽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초등학생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삼각관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애증의 관계가 아니라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까지 이른 소중한 인연들이고 한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두 친구가 노력하며 우정을 쌓기도 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또 하나 공통점은 ‘반장’이 미국의 암흑가에서 터득하게 된 어둠 속에서도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 하트비트라는 컴퓨터 용어를 알고 있는 CG 전문가인 메구리야, 어려서 심장병에 걸려 심장 수술을 한 뒤 보통 아이들처럼 건강한 심장을 갖게 된 유리, 이 세 명이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하트비트다.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하트비트, 바로 이 작품 제목이 하트비트인 점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울려서 존재함을 알리고 알려야만 한다는 의미니까.

실종과 유령을 통해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고 싶고 옆에 있고 싶고 바라보고 싶다는 것,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간절히 찾는 마음은 마음속으로라도 듣고 싶고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법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반장’은 야오를 찾았고 그런 마음으로 유리는 엄마가 유령으로라도 자신에게 나타나주기를 바란 것이다.

미스터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마지막에 기막힌 반전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작품은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어떤 말을 붙여도 좋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믿음과 신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한번쯤 하고 싶었던 약속과 지키고 싶을법한 드라마틱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마지막에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마도 속편 <하트블루>와 이어지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대가 된다. 거기에서는 작가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내용 안에 결코 가볍지 않게 담아내는 능력이 있는 작가다. 이미 <도쿄밴드왜건>에서 알아봤지만 일상의 미스터리 안에 사람의 냄새를, 독자가 맡고 싶어 할 법한 것을 신통하게도 잘 쓰고 있다.

약속은 없었을지라도 추억은 있으니 우리 학교 교문 앞이나 한번 회상해볼까 한다. 친구들도 생각해보고. 우리 동네도 한번 떠올려봐야겠다. 내게도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 마시던 기억은 남아 있으니까. 그 카페는 있을까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한 추억은 살아 숨 쉰다.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1-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미스터리안에 사람의 냄새라.... 확 땡기는 표현이네요.

물만두 2008-01-29 10:53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괜찮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