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리처드 매드슨의 1950년대의 시대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SF적 공포소설이자 서스펜스를 안겨주는 <줄어드는 남자>를 비롯해서 단편 9편이 수록되어 있는 멋진 책이 우리를 찾아 왔다.

우선 타이틀 작품인 <줄어드는 남자>를 보면 1950년대 한 남자가 안개와 같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원인도 모르게 계속 줄어드는 상황을 남자의 줄어드는 키에 따라 변화되는 심리 상황과 이제 소멸의 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집 지하실에 갇혀서 독거미를 피하고 생존을 위해 크래커 부스러기와 물을 구하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자로써 큰 키와 군인이었던 건장한 모습으로 아내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싶었던 스콧은 키가 줄어들 때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 경제력의 상실로 돈 때문에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를 팔고 그러다 생계를 위해 아내가 돈을 벌게 한다. 당시의 전형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내에게 자신은 어린아이처럼 동정 받는 처지라고 자학하고 아버지라는 어른의 권위는 키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의 어쩔 수 없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지금이라면 달랐을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그가 자신의 모습에서 우월함을 찾는 남성이 아니었다면 좀 더 절망에서 희망을 찾기가, 그리고 가족과 남은 날들은 좀 더 평화롭게 어쩌면 소멸의 날까지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무 오래 자신만의 문제로 가족을 돌아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키가 아니더라도 그 시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는 위기감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남성상의 변화를 작가가 감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줄어드는 원인의 하나가 방사능이라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남아 표출된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개인이 짊어지게 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스콧은 끝내 제대군인 대출을 거절받기 때문이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희망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 자살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지금 절망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원더랜드가 있을지 모르니까. 인생에서 좌절과 절망과 공포와 슬픔과 고립 같은 것들을 한번이라도 겪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진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단편 중에서는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작품일 것이다. <시험>은 이런 작품의 소재는 SF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쓰는 것 같다. 인구 과잉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에게 좀 더 와 닿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홀리데이 맨>은 짧지만 기발한 작품이었다. <몽타주>는 인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찰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배달>은 한 마을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벌이는 음모에 대한 이야기다. <예약손님>은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짧고 강렬하다. <결투>는 영화로 본 것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거대한 트럭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이 많이 차용하지 않았나 싶다. <파리지옥>은 한 남자의 스트레스로 인한 광기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버튼, 버튼>을 들고 싶다. 어느 날 하나의 상자가 배달된다. 그리고 한 남자가 찾아온다. 버튼만 누르면 오천달러를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버튼을 누르면 그들이 모르는 누군가가 죽게 된다고, 말하자면 그것은 죽음의 버튼인 것이다.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릴까? 쉽게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지금도 죽고 있다. 이 땅에서도, 지구상 어디에서도. 하지만 그 버튼이 과연 하나뿐일까? 누군가도 그런 상자를 받아 누르고 돈을 받으려 하는데 그가 모르는 상대가 나라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정말 버튼 하나가 인간을 고민하게 만드는데 어쩌면 이 작품은 2차 대전에서 미국이 버튼 하나 눌러서 원자폭탄을 터트린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후 5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은 여전히 너무 쉽게 버튼을 누르고 있고 우리도 따라하려 하고 있다.

작품 모두가 읽어보면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나는 전설이다>도 읽어야겠다. 이런 좋은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왠지 손해 보는 일 같다. 지금 이 책을 볼까 망설이는 당신도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말이 아니더라도 장편은 장편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놓치면 아까운 작품들의 퍼레이드다. ‘줄어드는 남자’를 읽으면 매드슨의 존재는 점점 더 커지니 그는 계속 커지는 남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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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2007-12-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입고가 가뭄에 콩나듯 하는 도서관에서 홧김에 빌려본 '나는 전설이다'를 단순한 좀비소설로 치부하고 영화화 된다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만두님처럼 '나는 전설이다'부터 다시 차근차근 신간까지 읽어봐야 겠군요....단편에는 너무 약해요...ㅠㅠ 즐길수 있는 비법이 혹시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물만두 2007-12-08 12:13   좋아요 0 | URL
어, 비법은 그냥 좋아하는 건데요^^;;;
단편집만 따로 나온 걸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stella.K 2007-12-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대 SF라니 땡기네.^^

물만두 2007-12-10 10:08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