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한번 요상하다고 생각했다. 집오리면 집오리고 들오리면 들오리지 집오리와 들오리라니, 거기다가 뜬금없이 무슨 코인로커? 이 이질적인 집합과 일부러 낡게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한 노랑과 검정의 조화가 돋보이는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작품은 현재와 2년 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를 자꾸 돌아보게 만들고 과거는 미래를 자꾸 침범하고자 한다. 책속의 책이라는 액자구성인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재와 과거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같이 미래로 가고자 하니 어쩌면 액자구성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 우연한 만남은 마치 어떤 필연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삶에 미련이 많은 인간들이기 때문이고 그 어떤 것에서도 가치를 부여하고 발견하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나는 대학 입학을 위해 얻은 아파트에서 이상한 이웃 가와사키를 만나게 되고 엉뚱하게도, 아니 황당하게도 대사전을 털러 서점의 뒷문지킴이가 되고 만다. 그런 시나와 가와사키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시나와 레이코와의 우연한 만남은 2년 전의 고토미, 도르지, 가와사키의 이야기 속의 주변인이 될 기회를 마련해 준다.

하필이면 아무 상관없는 시나라는 스무 살짜리 대학 신입생이 가와사키들의 이야기 속에 끼어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모두가 자신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저 주변인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의 시나가 가와사키의 주변인이고 가와사키가 시나의 주변인이듯, 과거의 고토미는 도르지와 가와사키의 주변인이었고 도르지는 고토미와 가와사키의, 가와사키는 고토미와 도르지의 주변인이었을 뿐이라는. 기실 관계가 명확한 듯 보여 지지만 따지고 보면 그 관계가 애매한 것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그것이 현재의 시나와 연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 대단한 인연이었고 관계였다고 여길지 몰라도 말이다. 어차피 그들 모두는 시나처럼 서점의 뒷문지기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장을 덮는 뒷문지기이고.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담담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마치 슬픈 고백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에 사랑받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뭔가 시적인 것 같고, 뭔가 주문을 외우는 것 같고, 뭔가 심각하게 호소하는 것 같고, 공유하려 하는 것이 아닌 그냥 나는 노래를 할 테니 들을 테면 듣고 말테면 마라는 식으로 늘 한 곳에 서서 노래할 것 같은 밥 딜런과 그를 닮고자 한 책. 작가는 밥 딜런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다. 읽는 내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따지지 않는 자들만이 세상의 슬픔을 만끽하게 만들고 있다. 신은 아직도 동면중이시고 그러니 인간은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게 된 거라고나 할까. 네가 그러니 나또한 그렇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으니. 그러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도로를 점거한 자전거들을 발로 차 밀어버리고 버스에서 치한에게 당하는 여자를 위해 나서기도 한다. 어둠도 닮아가듯이 밝음도 닮아가는 법이라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치고는 조금 어두웠다. 생경해서 오히려 신선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카사 코타로의 모든 번역 작품을 읽고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숨겨두었던 평이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역시 작품은 스스로 읽고 결정할 일이다. 내게 이사카 코타로의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언제 오르려는지 걱정된다.

좋았다고 말하기에도 나빴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뭔가 조금은 심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꼭 단점으로 보이지는 않는 그런 작품이라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긴장감과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능력은 좋았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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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2007-11-1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의 현재와 과거가 교묘하게 닮아있죠. 같은 번호로 구성된 현재와 과거 파트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은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어요. 분위기나 결말은 어두웠지만,
문단구성 스타일만큼은 괜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역시 조금 심심한 느낌.

물만두 2007-11-12 14:01   좋아요 1 | URL
이사카 코타로의 이 작품을 처음에 읽었다면 평가는 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모두 다 읽으니 이젠 별 감동이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달콤한책 2007-11-13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물만두님 리뷰 중 이사카 고타로의 별 다섯 개짜리 읽으면 되는거죠 ㅋㅋ
사신치바를 잼있게 읽었는지라 글찮아도 고르는 중이었슴다.

물만두 2007-11-13 14:07   좋아요 1 | URL
그렇게 보시면 안되요. 보신 분에 따라 평가가 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