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맨 마지막인 246쪽에서 온다 리쿠의 작품 전체의 존재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이것이 온다 리쿠가 노스텔지어를 지향하는 이유고 그의 글 속에 학교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것들이 어떤 성격으로 포장되는지에 관계없이 이것은 계속되는 그만이 가진 공통된 것이다.

   
  그리움, 그것만이 우리의 짧은 인생을 증명해 주는 증거다. 수많은 기억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든다.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니까.  
   

 

이것을 생각하며 한 작품씩 살펴보면 <봄이여 오라>는 반복되는 인연과 시간이라는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벚꽃에 대한 시구가 참 마음에 드는데 벚꽃이야 언제나 피고 지고 피고 지지만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의 관계는 너무 짧고 찰나적이라 더욱 그리움만 쌓이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무상함이 느껴졌다. 작가의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을 보고 <구형의 계절>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갈색 병>은 미스터리적인 면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간호사가 되려고 간호대학을 나온 여자가 그냥 기업체에 들어온 이유가 뭘까?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를 주시하던 인물은 결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야 만다. 호기심도 그리움일까? 사람에 대한 맹목적 관심은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기억이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주변인에 대한 기억. 그것이 잘못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기억도 조심해서 꺼내 봐야 하고 호기심도 적당히 넘겨야 할 것이다. 그녀의 미소는 오싹했다.

<이사오 오설리번을 찾아서>는 사진을 달랑 세 장 남기고 전쟁터에서 사라진 남자를 찾는 남자의 이야기다. 왜 그를, 아니 그에 대한 기억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가끔 온다 리쿠가 전쟁을 묘사할 때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좀 난감하다. 작가에게는 전쟁도 노스탤지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주 위험한 그리움인데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수련>은 리세 시리즈의 한 장면으로 보면 된다. 리세의 가장 어린 시절이 등장하는 작품이니 리세가 등장하는 시리즈 중에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리세 시리즈는 워낙 뒤죽박죽이 장기니 어떻게 봐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움이나 추억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두운 기억, 어두운 추억도 있게 마련이니까.

<어느 영화의 기억>은 이 단편집에서 <작은 갈색 병>과 <국경의 남쪽>과 더불어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미스터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생각난 어린 시절 본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인해 자신의 봉인된 기억을 찾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묻어둔 채로 때론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은 기억도 있다. 그리움이라도 무조건 끄집어내는 것은 상처만을 남긴다. 그저 가라 앉혔다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어쩜 이 남자에게 그 시점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끔 기억 상실에라도 걸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때가 있음을 아는 까닭에 뒷맛이 쓰다.

<피크닉 준비>는 읽어보고 <밤의 피크닉>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안 읽기 잘 한 건지, 읽고 읽는 게 나았을지는 읽어보면 알겠지.

<국경의 남쪽>은 나이가 들어 대학 때 친구 자취방 근처 커피숍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새록새록 그리움만 늘어가서 별게 다 그립게 마련이지만 친구의 죽음이라는 것보다 더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자리를 찾아 그 자리에 생긴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회상에 잠긴 남자,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은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가끔 내 그리움에만 잠겨 망각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그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 안에 들어 있다.

<오디세이아>는 마치 한편의 SF를 보는 느낌이었다. 온다 리쿠가 SF 작품도 쓴다더니 단편도 썼구만. 그런데 여기에도 그리움은 있다. 잃어버린 모든 것에는 항상 그리움이 따르게 마련이니 어찌 예외가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SF라는 장르가 더 그리움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무 흔한 스토리였다.

<도서실의 바다>는 사요코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여섯 번째 사요코>를 이 작품 뒤에 읽으면 된다. 안 읽은 분들은. 표제작이고 제목은 참 멋있었는데 내용은 뭐, 학창 시절의 마지막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미련이랄까 그런 것뿐이다. 시작은 장대하였으니 그 끝은 미미하였다.

<노스탤지어>는 첫 번째 작품 <봄이여 오라>와 비슷하다. 제목 그대로 모여서 친구들이 돌아가며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그리움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러면서 자꾸만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기억을 재생하라고 요구한다. 추억을 잃어버리지 말고 간직하는 것만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거라고. 맞다. 나이가 들면 점점 과거에 대한 추억에 매달리는 자신을 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움,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건 어쩌면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만큼 아래에 쌓이는 그리움이 있어 견딜 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단편들이 나름대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연관이 있어 온다 리쿠가 어떤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알고 싶다면 간단하게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노스탤지어에 너무 치이게 하는 감이 있어 때론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다 리쿠의 작품을 보면 내 과거 한 귀퉁이의 그리움 한 조각을 생각할 수 있어 좋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작가에게 이리도 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를 흥얼거리는 나를 본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 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어떤 그리움이든 정말 그리움, 쌓인 그리움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도 두둥실 그리움이란 바다로 나는 항해를 했다. 노를 저어 스스로 간 그 바다에서 내 그리움이란 바다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걸 보면 역시 작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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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0-0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온라리쿠의 책은 한 줄도 안읽어 본 메피스토..^^

물만두 2007-10-04 18:35   좋아요 0 | URL
오오 경이로운 매피스토님^^

홍수맘 2007-10-0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피크닉> 이후 모자란 제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작가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즘 너무 일본소설에 치우쳐 있지 않나 싶어 자제할려고 했는데...
이번만 허락할래여. 다 님 때문이양~.^^;;;

물만두 2007-10-04 18:36   좋아요 0 | URL
쬐송함다^^;;;

paviana 2007-10-0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밤의 피크닉 읽었어요.ㅎㅎ

물만두 2007-10-05 10:39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저는 못 읽었어요 ㅜ.ㅜ

BRINY 2007-10-0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일본에서도 꽤 평가가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온다 리쿠도 가려서 읽어야할 거 같은데, 이건 읽을만한 가 보네요.

물만두 2007-10-05 14:28   좋아요 0 | URL
오, 전 뭐 온다 리쿠의 전반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뭐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