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가 사회를 향해 뱉어 내는 독기어린 시선과 썩은 미소처럼 씁쓸함을 전하는 단편들의 모음이다. 첫 단편부터 유쾌하지만 씁쓸하고 날카롭게 사회를 향해 독소 한방 날려주더니만 계속 그다운 작품들을 보여준다. 읽다가 웃으면서도 기분은 가라앉았다.

<유괴천국>은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엔젤>은 SF적인 느낌의 작품이다. 우리가 지금 지구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하긴 우리 죽은 다음 무슨 일이 생기든 그건 우리 일이 아니겠지. 요즘 말로 썩소가 느껴진다. <도미오카 부인의 티파티>는 남편의 지위가 곧 내 지위니라는 고전적인 말이 아직까지 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이 흐르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메뉴얼 경찰>에서 일본 경찰의 아둔함을 꼬집고 있는 것 같으면서 일본인 특유의 공장형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 같은 것인지... <나 홀로 집에 - 할아버지>는 고령 사회와 권위적이고 싶은 나이 든 세대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형 신랑>은 한심한 지고. <유괴천국>의 아이들이 자라면 이렇게 되겠지 생각되는 작품이다. 부모들이 읽어보면, 그리고 자신들이 없는 세상에서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무지 끔찍할 것 같다. 웃기는 일이지만. <여류작가>는 개인적으로 무척 의심스러웠는데 중요한 것은 여류작가가 글만 쓰면 되는 일이라는 편집자의 생각이 진실이야 무엇이든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얼마 전 출판계에 불어 닥쳤고 지금 불고 있는 학력 위조 논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런 생각이 결국 중요한 건 돈이 되느냐 라는 풍조를 만들고 거기에 동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그나마 작은 것일지 모르지만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으니 우리가 지금 소도둑을 키운 것이라는 생각에 그 소는 얼마나 많은 독을 먹고 자랐을까 끔찍하다. <살의취급설명서>는 살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속죄>는 작가가 뇌에 대한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음을 알려주는 가슴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이 단편들 가운데 아주 맘에 드는 작품이다. <영광의 증언>은 주목받지 못하는 자의 주목받고 싶은 강렬한 심정이 한 편의 콩트처럼 담겨있다. <미스터리 진품명품 감정쇼>는 역시 추리소설가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런 것도 돈이 되나 궁금하다. <유괴전화망>은 유괴는 했지만 협박은 하고 싶지 않은 범인이 타인에게 협박을 전가하는 내용이다. 극명하게 갈리는 ‘나’와 ‘남’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 읽고 나서 누구를 탓하는 내가 바로 독의 근원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유괴전화망의 전화가 걸려온다면 내가 선뜻 돈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내 아이가 유괴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좀 그렇게 해줬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원망도 할 것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인간의 행동은 달라진다. 그래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런 글을 쓴 작가에게 다시 한 번 놀랄 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파피필름 2007-08-31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가 확 휩쓸고 가더니 이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_-
근데 별점도 좋으니 읽고 싶어서 근질근질 거려요..

물만두 2007-08-31 18:49   좋아요 1 | URL
작가가 단편을 참 맛깔나게 잘 썼어요. 단편이 어떤 면에서는 더 쓰기 어려운데 능력이 탁월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