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가의 남자친구가 살해당한다. 명색이 추리 소설가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주인공은 사건을, 아니 자기가 이제 2달밖에 사귀지 않은 남자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음을 깨닫고 친구 겸 자신의 편집자와 함께 조사에 뛰어들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이 조사에 뛰어들기 무섭게 그들이 만나서 얘기를 하려던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주인공의 집에 도둑이 들어 남자 친구의 유품을 훔쳐간다. 점점 윤곽은 과거의 한 지점으로 좁혀지고 그 속의 인물들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11문자 살인사건이라 살인이 일어날 때마다 11문자로 된 쪽지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어디가 11문자 살인사건이란 거야? 라고 구시렁거릴 때 그것마저도 보여주면 안 되는 커다란 단서인 냥, 아니 그것을 미리 보여주면 너무 쉽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그 11문자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제목은 스포일러였던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성선설과 성악설은 충돌하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가진 본성을 숨길 수 있다. 여유가 있는데 본성을 드러낼 바보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친구는 가장 위험한 순간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하고 사랑도 고비를 맞아야 비로소 그 사랑이 참사랑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믿고 싶은 인간 본성의 대단함에 대한 것인지를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사람은 사실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몸 사리기 바쁘다. 제 몸 하나 간수 못하고 의지해야 할 판에 그 어떤 선택의 여지는 이미 사라져 버리는 거 아닐까? 앞의 말들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보호본능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위대한 사람들로만 넘쳐나는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극한의 상황에서의 인간 본성이라는 것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능력이 더 많은 사람만이 세상을 살 가치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사실이 때론 거짓보다 더 잔인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뭐, 결국 히가시노 게이고 식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이런 트릭과 범인 찾기의 고전적 추리소설에서는 심플한 게 좋은데 그게 아쉬웠다. 모든 게 미스터리지만 그 미스터리도 좀 정도껏이어야 하는데 너무 히가시노 게이고다워서 마음에 안 찬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