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없는 독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작품 속 탐정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예외도 있지만 거의 그렇다. 그리고 고독하고 사회에 냉소적이다. 대부분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부자들의 의뢰를 받거나 누군가의 의뢰비로 생활을 한다. 아마도 작가는 그런 탐정들은 이제 그만 이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부족할 거 하나 없어 보이는 대 기업 회장 딸과 결혼해서 그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스기무라 사부로는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사실 속은 약간 비어 있다. 그것은 그가 이제는 절대 예전의 그리운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친구가 없다는 것, 부모, 형제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을 택하고 그의 이전 인생 모두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인물이 남아도는 시간과 허전한 마음, 그리고 자신과 같았던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 작품은 세 가지 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연쇄 청산가리 독살 사건이다. 이 무차별적인 살인 사건은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겪었던 일이다. 두 번째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해고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는 인간의 독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의 세치 혀가 얼마나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세 번째는 우리의 환경에 퍼져있는 독성물질에 대한 심각성이다. 새집증후군이라던가, 토양오염으로 인해 야기되는 아이들의 천식과 원인 모를 병들.
스기무라 사부로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잘못 뽑아 또 다시 우연적인 청산가리 사건과 만나게 된다. 경찰을 그만두고 사건을 조금이나마 미연에 방지해보고 싶은 마음에 탐정이 된 암에 걸린 남자를 만난 것이 그에게는 우연이기도 하고 필연이기도 하다. 탐정은 취미로 하는 거라며 생계를 위해 이혼당한 남자와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어 탐정을 취미로 해도 되는 남자의 만남을 우연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 어쩌면 이후의 스기무라 사부로의 변신을 위한 작가의 포석은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사건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에서 출발을 한다. 내가 괴롭기 때문에, 또는 홧김에 누군가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이기적인 것이다. 왜 나만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내가 괴로운 만큼 그들도 나름대로 괴롭겠지 라는 생각을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예 생각을 안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태초부터 인간은 그렇게 생겨났지만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것이 다시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가 이랬던 것을 눈감고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면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날개 없는 천사들이란 말인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이런 말이 나온다.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이 마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책에서는 보통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진짜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끌어내리려고 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것이 독이 되어 세상을 점점 잠식해가고 사람들 마음을 똑같이 잠식해 가서 양심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제때 돌보지 못하는 것, 가진 것이 많은 자가 나누지 않는 것, 국가와 사회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것 때문에 독은 더 퍼져서 맨 꼭대기에 자신들이 권력자라 생각하는 이들에게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독은, 이름 없는 독일수록 빨리 퍼진다. 그리고 그 독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인 까닭에. 같은 인간으로 같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해독제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믿음을 주고 희망을 주는... 그런데 그런 해독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건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어떤 작품에서도 사회 문제를 빠트리지 않는다. <누군가>보다 훨씬 좋았다. 이제 슬슬 샌님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돈 많으니 무보수로 서민에게 봉사해라. 당신의 의무는 그것일지니. 미미여사께서 명령하셨으니 충실히 따르도록. 어설프게 하지 말고. 그리고 고향 부모님과도 형제들과도 이제 슬슬 만나야지. 아이가 부자 엄마 쪽 가족만 알고 보통의 아빠 쪽 가족을 모른다는 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안 좋다고. 계급의식이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기왕 말이 안 되는 설정으로 가고 있으니 화기애애하고 행복하게 살게 스기무라 사부로의 집안은 평화롭게 만들라구요. 미미여사. 그 대신 탐정의 임무는 좀 세게 시키시고요. 그럼, 다음 작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기무라 사부로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