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도코노라는 멋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단편집이면서 하나로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성의 작품이다.


모두 열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커다란 서랍>이 맨 처음 시작을 장식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작게나마 담아내고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입질이다. 하루타의 일가는 도코노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신들만의 서랍에 담고 있는 이들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담고 있는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하루타는 여행 작가로 위장해서 각지에 흩어지게 된 도코노 일족들을 찾아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도코노라는 사실을 잊은 이들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고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에 맨 처음을 장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작가가 나중에 하루타 일가만의 이야기를 했어도 좋았겠다고 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다시 쓰면 될 일이고. 아니 미리 하루타 일가가 도코노 일족을 찾아다니며 한 명 한 명 찾아내는 작품이 먼저 나왔다면 이 연작은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 개의 찻종>이 뜬금없이 왜 등장했나 하고 읽으며 의아해했다. 이것도 포석이다. 도코노 일가가 다음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준비하려고 하는 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내용인데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진흙바닥을 함께 구를 결심을 하다니 도코노 일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작가가 현실에 대한, 정치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은 <편지>와 함께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은 도코노 일족을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들이 문헌에, 사람들의 생각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루마 산은 또한 도코노 일족의 근거지, 신성시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셀로 게임>은 이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코노들은 무조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발휘하는 인간을 초월하는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도 거대한 힘에 당할 수가 있고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방어태세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원치 않는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가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또한 연작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니 더욱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빛의 제국>은 두루미 선생님이라는 도코노 일족의 수장 같은 할아버지를 등장시켜 그들이 전쟁 중에 어떤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2차 세계 대전 때 러시아나 독일에서 초능력자들에 대한 실험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일본도 생체 실험을 했으니 아마도 이런 일족이 있었다면 능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빛의 제국은 그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제국, 도코노 일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제국이리라.

 

<역사의 시간>은 <검은 탑>과 맨 앞의 <커다란 서랍>, <두 개의 찻종>과 함께 봐야 한다. 아니 <빛의 제국>이 그 시작이 아닐까 싶다. 도코노 일족이 아닌 자에게 맡겨진 아이는 능력이 봉인되고 스스로 기억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둔다. 하루타 일가의 장녀는 그 봉인된 기억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이코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주목된다. <검은 탑>에서 그는 기억을 되찾고 도코노 일족으로서의 능력을 되찾고 정치가가 된 이에게 운명적 계시를 받는데 어디까지 이어질지 도코노 일족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단편들이다.

 

<잡초 뽑기>는 그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나쁜 기운이랄까 악이랄까 하는 것들을 잡초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을 보면 잘라내고 있다. 그것들은 어디에서도 자란다. 물론 인간에게서도 자라고. 잡초가 자라는 것보다 뽑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잡초가 없다면 뽑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없었을 테니 어쩌면 그들의 싸움은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묵묵히 한 가지 일만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아직까지 있다는 건 희망의 증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국도를 벗어나>에서 이 작품, 도코노 이야기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막을 내린다. 그들은 모인다. 집결해서 축제를 벌인다. 그 뒤 그들의 앞에 어떤 것이 또 펼쳐질지 끝을 보니 다음 작품을 빨리 읽고 싶어진다.

 

저 푸른 초원이 우리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우거진 산림과 조용한 냇물 소리, 바람 소리, 해 맑은 사람들 웃음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도코노 일족이 아니더라도 귀 기울여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주려는 귀와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하고자 하는 눈과 작은 이야기라도 소중히 담아 간직하려는 마음과 이들을 조용히 이끌어 주려는 스승과 따르려는 제자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지키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도코노 일족이 찾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도코노 일족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스텔지어의 여왕은 결코 과거의 향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노스텔지어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꿈꾸고 나아가서 가꾸어야할 미래, 그것이 도코노 이야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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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2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노스텔지어라는 말부터 예사롭지 않은 리뷰입니다. ^^

물만두 2007-02-2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이 작가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고 칭송받는것은 아마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노스텔지어를 과거와 공유하기때문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