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133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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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는다. 90년대 초에 나는 이 시인을 알았고 그때 이 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오래 기억만 하고 있었지 다시 잡지는 못했다. 이제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그때 내 청춘에 그의 시는 머리를 한 대 쾅 쥐어박는 느낌을 주었더랬다. 사랑 타령의 시들만, 곱게 쓰인 시들만 알던 내게 시가 이럴 수도 있다고, 아니 시란 이래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던 시인. 다시 보니 시인의 시는 이제 명치끝에 걸려 나를 체하게 한다. 시가 넘어가다 걸렸다. 목이 메고, 가슴이 막히고, 내 영혼이 바스라 지는 소리를 듣게 하고 공감할 수 있는 품을 준다.

 

그때 제기동에 대한 시가 있었더랬다. 나도 제기동에 살았더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 골목 그와 내가 같이 걷지 않았을까, 언제 그 짧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같은 목욕탕에라도 갔었더라면 그이 때 한줌이라도 고이 모셔왔을 텐데 그랬더랬다.

 

이제 시인도 나이가 들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스무 살 겨우 넘긴 아이는 없다. 마흔을 바라보는 늙은 아이가 있다. 그 마흔이라는 시가 와 닿는다. 내 마흔이 그러하므로.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
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는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
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아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병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나는 유리벽과 더불어 다시 떨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넓은 궁륭 같으리라 생각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겠지만 그래도 내게도 저버릴 수 없는 믿음과 희망이 있으므로. 시인과 내 생각이 닮아간다는 건 반가우면서도 이제 더는 누군가 내 귀싸대기 때려줄 이가 없다는 상실이다.

 

그 시대가 나도 좋을 줄 알았고 지금은 더 좋을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시인처럼 아니더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더 좋던 날들은 지난날들인 모양입니다. 당신이 더 좋았던 때도 아마 그때가 아니었을까 저어됩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지만 가슴 뛰는 첫사랑의 감정이 아님을 알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시가 명치에서 오래 머물다 설령 배설된다 하더라도 다시 집어 먹을 수 있기를, 그런 용기가 남아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당신의 시를 다시 읽으니 그래도 좋습니다. 그래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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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2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저도 그래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젠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인걸요^^ 님도요~

비로그인 2007-01-02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만두언니라 불러야 할까요? ^^)
드넓은 궁륭같은 평야에서 좋은 한 해 보내시기를...
저는 만두님의 리뷰에 또한 숨이 턱 막혀하고 갑니다.

물만두 2007-01-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시님 무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손가는대로 쓰는 리뷰인걸요^^;;;

2007-01-07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1-0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시가 이해가 됩니다... 사실 씩씩하게 살게 하는 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막히게 하는 시라고 생각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