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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결국 처음 읽으며 눈물을 흘리더니 마지막 덮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아, 이런... 처음 읽을 때는 츠요시에게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츠요시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란 얘기도 하지 않겠다. 언제나 우발적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회가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절대적인 노력 다음에 오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고도 냉방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떨다가 한겨울 동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에 비하면 교도소에서 갇혔다고는 해도 밥 먹고, 잠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과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아는 녀석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니 츠요시, 어리석은 녀석!
나오키의 삶을 보면서 살인자의 동생으로 살며 자신이 짓지 않은 죄로 차별을 받다니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차별은 그런 것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별별 차별이 다 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으로 차별받고,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낳았다고 차별받고, 가난하다고, 무능하다고,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차별받는다. 그리고 왕따를 당한다. 그러니 그런 차별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나쁜 녀석아! 형이 누구 때문에 죄를 지었는데 그 따위로 생각 하냐? 네가 형보다 똑똑하다면 먼저 형의 걱정을 덜어줬어야지.
츠요시의 편지와 나오키의 일상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츠요시의 편지가 너무 일상적이고 평온해서 오히려 나오키의 일상의 상황과 대조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이면에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와 그래도 몸부림이라도, 응석이라도 부릴 수 있는 자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차라리 반대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일에도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많은 지를 생각해보면 그저 말뿐인, 결코 행동할 수 없는 얘기다. 나도 그렇다. 책으로 보면 그러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이런 일을 내가 겪게 된다면 그들의 이웃으로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나 또한 피해 다닐 것이다.
죽은 피해자는 돌아오지 않고 살아갈 날이 많은 가해자는 그 날들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이 가족을 그리며 고통 속에 살면서 서서히 잊어간다 해도 가해자의 가족은 그러면 안 된다. 죄를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용서되거나 잊혀 진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잔인한 일일 테니까. 다음 생에서도 지난 생의 업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죄는 그렇게 내세에까지 연결되는 것인데 이생에서 조금이나마 더 고통스럽게 겪어야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혹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해자의 입장과 그 상황에 대해 글을 탁월하게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본 책들을 생각해보니 피해자와 탐정의 입장에서 쓴 글보다는 가해자의 입장과 가해자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피해자였다가 가해자로 바뀐 상황, 그러다 다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쳇바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소시민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모여 이 작품을 만들어낸 것 같다. 참, 어떻게 보면 독특하게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발견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글 솜씨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