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고 입 언저리 뼈가 뻐근한 것이 신경 쓰여서 만사가 귀찮은 하루다.
영화나 소설에서 누군가 두통을 호소한답시고 머리를 살짝 짚기라도 하면 무조건 꾀병으로 밖에 여겨지질 않는데, 막상 그런 꾀병 같은 것도 내게 와서 나를 괴롭힐 줄 안다.
집에 있는 동안 당신과 겨루던 이십사시간 나를 괴롭히던 그 통증.
병원엘 가도 스트레스 외엔 딱히 원인도 없고, 귀를 도려내고 싶고, 입 전저리 턱벼를 부숴버리면 통증이 멈출까 싶은 이런 증세가 재발한 것은
주말에 당신이 보여줬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야만 이런 아픔도 달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피해자인 척이라도 해야 나도 살아가기 수월하다고.
항상 '곧'이라고 말해도 이 지겹고 끔찍한 인연은 세월로 그 모습을 바꿔 상처에 앉은 딱지처럼 눌러붙어  있겠지만......

 

벌서 아프다는 엄살을 주제로 페이펄 2개나 써버렸네. 웰빙 바람이 불더니 감염됐나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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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 명화이야기 시리즈
부르스 버나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고흐:a darling kindersley book』브루스 버나드 / 김택. 디자인 하우스.1997.

 빈센트의 임파스토 기법이나 보색 사용, 조명, 채광을 중요시 한 그의 화법 위주로 일대기를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을 건성으로 읽어 온 나에게 큰 꾸짓음을 들려준다.

국내외의 책들마다 인쇄된 색감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그의 그림들이 다르게 보이는 일이 많았다. '고품격'지향의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왠일인지 그의 색깔들이 더욱 우울해 보이도록 어두운 색조로 출판되었던 그림도 있었고, 임파스토 기법인지 한눈에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마하게 출판한 책도 있었는데, 그 중 나를 가장 난감하게 한 것은 <아를의 침실>이다. 벽과 의자, 장식장의 색들이 성기게 채색된 것과, 내가 기억하는 한 충실히 면을 메꿔 밝은 분위기가 가득 찬 따뜻한 그림이 그것이었는데, 다른 그림이겠지 하다가도 출판사마다 틀린가 보다 하고 수긍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 인쇄된 그림을 보다가 지금까지 의문을 이제서야 깨쳤다. 제기랄. 지금까지 고흐를 봐오면서 대체 뭘 봤던 거냐.
<1888 아를1>, <1889 생 레미의 복사본2>과 함께 총 3장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후기 인상주의』에 실린 <아를의 침실>은 볼때(문외한인 나의 기준일 뿐)색들을 성기게 칠하고, 무엇보다 바닥의 초록색의 넓은 면처리가 눈에 띄인다. 반면 『고흐』편에 실린 그림은 꽤 정성스레 면을 메꿨고, 더 짙게 밝은 색들을 채색했으며, 바닥은 엷은 바이올렛과 팥앙금색이다. 그리고 침대에 걸린 옷이 초록이 아닌 파란색이며, 수건 모양이 틀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림 속의 사물들이 틀렸다. 자신의 자화상의 수염과 다른 여인들.
 

화가 관련 서적 중 가장 양이 많아서인지 고흐 관련 책자들을 읽다 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런 부분들은 대충대충 봐 넘기는 버릇이 생겼는데, 전작을 하고 싶으면 이것이 가장 지양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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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도 없이 그냥 코멘트부터 남깁니다. <(_ _)> )
 
알바고양이 유키뽕 1
아즈마 카즈히로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알바고양이 유키뽕 .AZUMA Kazuhiro.북박스

동물에겐 당췌 애정이 솟질 않는 나도 엉겹걸에 골라 들고만 끌리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앗! 변명 하나 물고 늘어지자면 실사의 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2D의 동물에 대해선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그래도 마시마로까지 좋아 하는 건 아니고, 토토로, 쿠우, "당근있어요"의 토끼, 강현준의 캣, 이마 이치코가 기르는 후조들, "벡"의 짜집기 개 정도에서 싱긋 웃음을 올리는 정도.
이렇게 서론을 장황하게 풀은 것은 캐릭터 자체가 이 만화의 흥미도를 반은 먹고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여.친.소>>의 전지현 비중에 비할까만은.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유키뽕이 본연의 의무인 애교떨기가 아니라, 알바를 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건 모두 주인 탓이다. 유키뽕의 주인은 허구한날 알바에 짤리고, 무능력한 주제에 술,남자에는 이성을 잃고, 최고의 이상형만 원하는 주제에, 헌팅을 당하면 외모나 됨됨이를 따지는 일 없이 무조건 안기고 보는 스타일에다, 놀고 먹는 것엔 왠지 도가 튼 듯 하고, 자신이 싸서 말라 붙인 똥 까지 유키뽕에 뒤집어 쒸우려는 파렴치한 아가씨다.

술 먹고 들어와서 홧김에 유키뽕을 걷어차며 나가서 돈 벌어와!라고 타박했던 탓에 알바를 시작하게 됐던 유키뽕은 굶어 죽을 위협에 처할 때 마다 내용불문, 일당불문, 한계불문하고 알바를 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유키뽕이 번 돈은 주인 누나의 유흥비로 갈취당하고 마는 것이다.
애완동물인 고양이의 인권(?)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실사영화화 된다고 가정 한다면 보호협회에서 충분히 들고 일어날 그런 일들이 번번이 자행된다.
그래도 아자!! 주인 누나의 애정에 굶주려 살신성인의 자세로 알바를 튀는 유키뽕에게 건투를!! 하고 나도 모르게 외치게 되는 이 만화.
새디즘과 메저키즘의 양극단을 이 만화가 확실히 보여준다.
시간이 무한정이고, 뭔가 쌈박하고 웃기는 것이 요원할 때 당신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유키뽕, '원츄'.

* 이 만화의 작가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잔인한 발상을 했을까?
일반인이 섣불리 이해하기엔 너무 公事 구분이 잘 된 것이 아마 작가의 정신세계일지도.
고양이를 애지중지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예의 고양이 살해극을 그렇게 잔인하게 표현했을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더랬다.
나는 고양이와 개가 참 두렵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다.

** 최근 하이쿠의 명인을 소재로 한 만화를 읽었는데, 거기엔 작가의 해석이 달려 있어서 읽기 편하고, 하이쿠의 묘미가 조금은 다가왔다.
그렇지만 유키뽕에 조금씩 실린 독자의 하이쿠들은 일본어를 모르기에 운율을 알 수 없어선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좀체로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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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나 TIM BURTON이 구원하는 아버지 상은 모진 현실이더라도 동화적인 면면이나 환상으로 부풀린 모습으로라도 자식의 뇌리와 추억에 남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 또한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참 잔인한 영화다. 현실의 많은 사람들 중에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다수일까? 나는 항상 아버지를 부정해 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부정해갈 듯한 그런 불확신한 확신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나의 분신에게 어떤 부모로 부정될지 확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위용을 자랑하는 행복한 CG의 환타지. 스윙의 선율 아래 TIM BURTON에 대한 애초의 기대는 살짝 접을 수 밖에

PEARL JAM "Man of the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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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이야기
허먼 멜빌 지음, 이정문 옮김 / 문화사랑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출근을 할 때면 매일 느끼는 단상과 먼저 인사하게 된다. 그 단상이란 바틀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커다란 회사 정문 보다는 뒷문으로 드나들길 좋아하는 때문인지, 다른 사무실이 끼어 있는 복도를 통해 출근한다.
그러면 미국산 맥주 브랜드와 유사한 상표를 가진 사무실의 문이 빼꼼히 열려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보게된다.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풍경. 복충 구조로 되어 있는 그 사무실은 하필이면 계단이 입구쪽으로 나있다. 그 계단 끝의 2층에는 한 남자와 책상이 있는데, 그는 항상 등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고 있다.

근무 중에 허리라도 좀 펼려고 바람 쐬러 나가면 자연스레 그 복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항상 똑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환하지 않아 컴컴하다고 해도 좋을 폐쇄적인 조명아래, 언제나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남자. 화장실은 가는 걸까? 담배도 피지 않나? 커피 마시는 핑계로 노닥거리는 때는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내가 아는 한 그 남자의 모습은 책상과 셋트다.
나도 하루 종일 책상에서 하루를 다 보내지만, 내 편견으로 그는 '고독한  사람'이다. 부양의 책임 때문에 '책상에 웅크린  남자'가 전부인 것 처럼 느껴졌으므로.
그래서 나는 그를 속으로만 '바틀비'라 부른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고독을 조롱하고 걱정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싱글싱글 웃으며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들에게 협조적인 사람으로 보여도 속으로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독백을 뇌까리고 있으니까.
언제가 본 <<About a Boy>>에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행복한 격언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현실에선 언제나 '인간은 섬이다'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다 읽은 후엔 여러 꿀꿀한 감상을 송두리 채 던져주긴 하지만, 사실 읽는 동안만은 제법 유쾌한 소설이 있다.
HERMAN MELVILE의 『바틀비 이야기』다.

특별한 정의감도 없이 안정적인 생할을 추구하며, 성실하게만 회사를 꾸려가려고 노력하는 늙은 변호사, 오전은 열심히 일하고 오후엔 술고래가 되어 사무실을 들썩이는 늙은 필경사, 오후엔 열심히 일하고오전엔 책상 높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체 못하는 젊은 필경사. 이렇게 세 사람이 일하던 사무실에 한 직원이 입사한다. 이름은 바틀비. 칸막이로 되어 있는 그의 자리에서, 창 밖으로는 반대편 건물의 벽돌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자리에서 그는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속에서 연명해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노동도 하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물질의 소유도 그에겐 아무 상관 없는 얘기다. 일을 시켜도, 해고를 해도, 사무실을 옮겨 버려도,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로 일축하고 외부와 전혀 소통하려 하지도 않고, 소통되지 않는데서 오는 고독에 전혀 괴로워하는 기색도 없이 스스로 방치된다. 방치되어 있는 인간, 타의와 자의로 스스로의 고독에 절어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유쾌한 해부.
고독하고 싶어서 현실을 피해 자신 속으로만 파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행히 내가 이름 붙인 '바틀비'는 퇴근은 하는 것 같다. 내가 퇴근할 때면 그 사무실 문이 잠겨 있으니까.
그러나 틈만 나면 벽을 향해 앉다 못해 아예 벽 속으로 침잠하고 싶어 하는
내 속의 처치 불가능한 바틀비는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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