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 이야기
허먼 멜빌 지음, 이정문 옮김 / 문화사랑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출근을 할 때면 매일 느끼는 단상과 먼저 인사하게 된다. 그 단상이란 바틀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커다란 회사 정문 보다는 뒷문으로 드나들길 좋아하는 때문인지, 다른 사무실이 끼어 있는 복도를 통해 출근한다.
그러면 미국산 맥주 브랜드와 유사한 상표를 가진 사무실의 문이 빼꼼히 열려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보게된다.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풍경. 복충 구조로 되어 있는 그 사무실은 하필이면 계단이 입구쪽으로 나있다. 그 계단 끝의 2층에는 한 남자와 책상이 있는데, 그는 항상 등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고 있다.

근무 중에 허리라도 좀 펼려고 바람 쐬러 나가면 자연스레 그 복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항상 똑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환하지 않아 컴컴하다고 해도 좋을 폐쇄적인 조명아래, 언제나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남자. 화장실은 가는 걸까? 담배도 피지 않나? 커피 마시는 핑계로 노닥거리는 때는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내가 아는 한 그 남자의 모습은 책상과 셋트다.
나도 하루 종일 책상에서 하루를 다 보내지만, 내 편견으로 그는 '고독한  사람'이다. 부양의 책임 때문에 '책상에 웅크린  남자'가 전부인 것 처럼 느껴졌으므로.
그래서 나는 그를 속으로만 '바틀비'라 부른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고독을 조롱하고 걱정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싱글싱글 웃으며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들에게 협조적인 사람으로 보여도 속으로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독백을 뇌까리고 있으니까.
언제가 본 <<About a Boy>>에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행복한 격언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현실에선 언제나 '인간은 섬이다'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다 읽은 후엔 여러 꿀꿀한 감상을 송두리 채 던져주긴 하지만, 사실 읽는 동안만은 제법 유쾌한 소설이 있다.
HERMAN MELVILE의 『바틀비 이야기』다.

특별한 정의감도 없이 안정적인 생할을 추구하며, 성실하게만 회사를 꾸려가려고 노력하는 늙은 변호사, 오전은 열심히 일하고 오후엔 술고래가 되어 사무실을 들썩이는 늙은 필경사, 오후엔 열심히 일하고오전엔 책상 높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체 못하는 젊은 필경사. 이렇게 세 사람이 일하던 사무실에 한 직원이 입사한다. 이름은 바틀비. 칸막이로 되어 있는 그의 자리에서, 창 밖으로는 반대편 건물의 벽돌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자리에서 그는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속에서 연명해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노동도 하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물질의 소유도 그에겐 아무 상관 없는 얘기다. 일을 시켜도, 해고를 해도, 사무실을 옮겨 버려도,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로 일축하고 외부와 전혀 소통하려 하지도 않고, 소통되지 않는데서 오는 고독에 전혀 괴로워하는 기색도 없이 스스로 방치된다. 방치되어 있는 인간, 타의와 자의로 스스로의 고독에 절어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유쾌한 해부.
고독하고 싶어서 현실을 피해 자신 속으로만 파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행히 내가 이름 붙인 '바틀비'는 퇴근은 하는 것 같다. 내가 퇴근할 때면 그 사무실 문이 잠겨 있으니까.
그러나 틈만 나면 벽을 향해 앉다 못해 아예 벽 속으로 침잠하고 싶어 하는
내 속의 처치 불가능한 바틀비는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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