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의 숨어 있는 방 창비아동문고 228
황선미 지음, 김윤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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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가지만, 넌 여기 있잖아. 라온이 널 불러들인 건 볼기 맞을 짓이다만, 제 방을 네게 주었으니 됐다. 저만의 방과 시간은 같은 거란다. 여기는 라온과 내가 잠시 머문 곳이지만, 이제부터는 너의 방이다. 라온의 시간은 끝나도 라온의 방이 너한테 남으니 다행이구나. 네가 라온을 기억할 테니까. 라온에게 그렇게 말해 주마. 녀석은 그래도 섭섭해하겠지만 말이다. 이게 옳아. 넌 네 시간에 머물러야지."-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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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절판


스물 몇 해밖에 안 살았지만 삶이란 누구 때문인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195쪽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나는 세운 무릎을 끌어 안았다. 내가 나를 안아주는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을 때 나는 그렇게 나를 안는다. 언니도 얼마나 사랑을 받고 싶었으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냈을까.-195-196쪽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큰유진이랑 소라랑 가까워졌더라면, 그래서 그 아이들과 한방을 썼더라면, 그랬으면 내 수학여행은 아주 다른 추억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 같았다.-233쪽

건우엄마가 했다는 말을 할 때 작은유진이는 내 손을 꽉 잡았었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분노보다도 소라가 껴안아 줬을 때보다도 진정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는 또 다른 나인 것만 같다.-241쪽

감추려고, 덮어 두려고만 들지 말고 함께 상처를 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쪼여 주었으면 외할머니가 말한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 텐데.-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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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구판절판


연호는 가끔씩 깨어났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역겨운 냄새들은 무의식 속으로도 따라왔다. 젖은 빨래들, 상 위에서 상하기 시작한 음식들, 반짝반짝 빛나는 요강에서 흘러나온 냄새들이 뒤범벅된 채 어둠 속에서 부패해 가고 있었다. 연호는 그 안에서 자신도 함께 썩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170쪽

너 말고도 불행한 사람이 많다고 한 건 그 사람들을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야. 그러면 좀 쉬워지니까, 그래서 좀 쉬워지라고 이야기해 준 거야.-213쪽

너, 남의 가슴 썩는 것보다 자기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 알지? 느끼는 고통도 객관적이면 세상이 얼마나 더 억울하겠니. 그런데 안 그래.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사람이나 손톱에 가시 찔린 사람이나 느끼는 아픔은 똑같아.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는 그 사람들이랑 상관 없는 남들이나 알 수 있는거야.-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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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클럽 반올림 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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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아이는 누구일까? 무엇을 알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부를 이름이 있고, 조금 이상하더라도 그냥, 같이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이상한 것이었으니까, 끝까지 이상해도 좋을 것이다. 그제야 '이상함'을 대체할 단어가 생각났다. 그건 '특별함'이었다.-39쪽

나는 아무리 봐도 오데뜨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떨 때는 이십대, 가끔씩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른 여자들을 떠올리며 어림짐작으로 나이를 맞혀 보려 해도 불가능했다. 내가 아는 여자 어른들이란 친척과 선생들이 전부였으니까. 오데뜨는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엔 저런 여자도 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내가 알아왔던, 그런 여자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43쪽

"별로 하는 것 없어요." /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 / "하는 게 없는 게?" / "뭐든지 할 수 있단 얘기잖아."-46쪽

그리고 곧, 괴로워졌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얼굴은 밋밋하여 아무런 특징도 없다. 나는 빚다 만 반죽. 새기다 만 조각. 지운 흔적만 남은 스케치. 숨기고, 감추고, 잊으려 하는 무엇. 벽 안에 갇혀, 벽 그늘에 가려져 숨죽이고 있는 아이.-117쪽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런 게 일상이니까. 비가 내리고 얼음이 어는 것처럼, 상처는 생기니까. 그리고 또 흉터가 생겨. 그것도 어쩔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지워져 가겠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흉터는 드물지. 그럼 그 흉터를 가지고 잘 살면 돼. 거기 적응하면 돼. 상처를 받았다고, 흉터가 있다고, 그걸로 인생이 끝인 건 아니잖아. 어쩌면 그 상처와 흉터 덕분에 삶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가끔은...그래. 가끔은 그냥 아프기도 해.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막 원망스럽기도 해. 어쩌겠어. 내버려 둬야지. 지나갈 때까지.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169쪽

눈이 가려지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어디론가 실려와 눈을 가린 천이 풀렸을 때, 눈앞에 막막하고 끝없는 메마른 벌판이 펼쳐져 있어 남은 여생을 그 곳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기분이었다.-171쪽

죄책감을 가지고도, 행복해지면 안 돼? / 잘못한 사람은 더 나빠지는 것 외에, 나아질 방법은 없어?-208-209쪽

그 책은 약속의 담보 같은 것이었다고. 무엇도 믿을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기로 한 것이었다고. 아주 어렵고 길고 읽기 힘든 것을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자는 약속. 아주 어렵고 길고 힘든 때에 함께 있자는 약속.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256-257쪽

차라리 막무가내로 왜 어제 말도 없이 중간에 나갔냐고 화도 내고, 제대로 하라고 하고, 걔가 죽은 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고, 수능이 백 일도 안 남았는데 공부나 하라고 소리를 쳤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도 잔뜩 가시를 세우고 바락바락 덤비면서 소리 지르고, 맞고, 울고, 그랬을 것이다. 그럼 넘어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모두는 그렇게 여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쳐 폭발할 수 있는 벽조차 없으므로 나도 그렇게 멈추었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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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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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곧 그 일을 잊은 듯했다. 물론 학생부장이나 교무부장, 심지어 교감마저도 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가끔 교무실에 가기라도 하면 나를 바라보며 숙덕거리는 선생님들도 있다. 그뿐인가, 이모 덕분에 3학년들에게도 나는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여간이 아닌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그런 범생이었던 이보라의 처지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런 시선들이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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