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는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예요. 영어 퍼스낼리티의 어원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하는데, 그 뜻이 변해서 성격 자체까지 가리키는 말이 되었죠. 나도 처음엔 인격이 사람 마음의 중추이자 지배 원리라고 굳게 믿었어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인격이란 외부의 상황, 특히 대인 관계에 대처하기 위해 습득하는 몇 가지 반응 유형이 집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공감. 페르소나, 가면, 퍼스낼리티, 성격
어서 기시 유스케의 싫어하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건 흠잡을 곳 없는 명작!명작!명작!' 이라고 거품 물며 칭찬할만한 작품들만 나왔던건 아니지만, 대체로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그의 작품들이 눈에 보이는 몇가지 흠들에 불구하고도 좋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공포/호러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기시 유스케와 나의 궁합은 미스터리다.
그러나, 그것이 좋기만 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을 때 '알랭 드 보통'이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재자식, 똑똑한 자식, 멋있는 대머리, 한 때 그의 집 가정부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 사실, 정말로 꿈에 알랭 드 보통 집에서 가정부를 한 적 있다. 'ㅅ' 그 이후로 이런 개드립 - ㅈㅅ ) 좋아했는데, 서서히 그 열광이 식어가고, 며칠전 서점에서 그의 신간 속의 대.단.히. 클리쉐한 문장들을 보고, 완전히 실망해버렸다. 이런 대머리자식.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대머리님들에게는 죄송. 아무 유감없음. 요즘 브루스 윌리스의 대머리는 그럭저럭 멋지다고 생각함 ... 응?)
이전에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 어쩌구 하는 책에서 완전 실망했던 것과 비슷한 정도의 실망감. 그러나 그 이후로도 나는 하루키를 읽고 있고, 하루키는 나의 좋아하는 작가쪽에 서 있는 작가다.
미야베 미유키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작품은 몇 작품 안 되지만, 늘 구매하고, 좋아하는 작가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 외에 존 버거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맨 위에 올려 놓았는데, 카잔차키스랑 함께. 요즘 존 버거를 다시 읽고 있는데, 영 맘에 안 드는거다. 아, 이 착잡함이라니.. 상대를 찾을 수 없는 원망과 배신감이 뭉글뭉글 솟아 올라서 얇은 책, 내가 처음 존 버거를 만났던 책을 꽤 오래 걸려서야 다 읽어냈다. 나 자신한테 신경질이 나서 그 다음 책으로는 존 버거의 책 중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신간 소설을 골랐다. (이게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는 며느리도 모르지만 , 무튼)
그렇게 좋아했던 작가가 싫어지는 경우는 작가는 그 대로인데, 혹은 이 경우, 존 버거의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경우겠다.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싫어하기도 하고, 다시 좋아하면서, 더 굳어질 수도 있고, 마침내 놓을 수도 있고.
근데, 기시 유스케의 경우, 좋아하는 작가 이름에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난 공포/호러소설 별로라고!) 기시 유스케의 이름이 들어가는 페이퍼는 늘 그의 칭찬만 자자하다;; 그래서, 나는, 이 다음 작품이 실망스럽고, 욕하고 싶으면, 차라리 반가울 것 같다. 파티를 열고, ..응? 좋았던 그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그래 이게 좋지. 라며 무릎팍을 팍팍 치면서 좋아하거나, 그 다음 작품은 다시 좋겠지. 어떨까. 기대해보거나.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떠남'이라고 했다. (음.. 그러고보니 이 말은 얼마전 읽은 존 버거 책에 나온 말이었던듯;)
사랑이 깊어지려면, '미움'도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두도시 이야기>
한 이틀 책을 손에서 놓았던 것 같은데, 왜그랬지? 뭐했지?
늘 몇가지인가의 생각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미친건가? 난 알고보면 광년이인것일까? 아님 뛰어난 멀티태스커인 것일까? 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잨) 무튼, 그래서 이렇게 단기기억상실에 시달리는지도.. 그래서, 나는 이렇게 페이퍼질하며 기억의 자취를 남겨놓아야 하는지도..
무튼, <두도시 이야기>
글은 헉!소리 나는데, 내용은 밍밍하다가 프랑스 혁명직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술집 주인과 뜨개질녀, 그리고 검은 머리의 험상궂은 스파이와 자크들이 나오면서, 프랑스쪽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박사가 있는데, 그 박사가 프랑스의 감옥에 같혀서 온갖 고초를 다 당해서 방어기제로 그 기억을 놓아버렸다. 기억도 못하고, 그 일을 기억할라치면, 발작직전까지 가거나 다시 이전의 그 정신 놓은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거. 근데, 그 박사를 어째어째 구해내서 영국으로 데리고 왔는데, 그의 딸이 그에게 구원의 동앗줄이 되어준다.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한쪽 도시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준비중이고, 다른 한쪽 도시 영국에서는 그 딸래미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이 이어지다 마침내 박사를 살린 그 딸이 결혼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온 남자랑.
박사가 다시 이전의 상태로 며칠간 돌아가게 된다.맨 처음 그를 구해왔을때 몰두했던 구두만들기 작업을 하며 아무도 못 알아보는.. 맨 첫장부터 나왔던 로리라는 은행가와 괴팍한 프리스라는 아줌마가 그의 상태를 보고 걱정하기 시작하고, 의논 끝에, 박사가 갑자기 정신줄을 놓았던 것처럼 갑자기 다시 정신줄을 잡고 그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자, 로리가 박사에게 우정을 담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장면이 참 멋지고 가슴 벅차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후, 박사와 그가 단둘이 남게 된 틈을 타서 미스터 로리는 최대한의 지성을 발휘해 말을 건네 보았다.
"마네트 박사님, 실은 박사님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데요. 제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상한 환자의 증세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의학 지식이 풍부하신 박사님께서는 아마 그렇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몹시 이상한 증세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박사는 어제까지의 작업으로 더러워진 자기의 두 손을 흘끔 바라보며 사뭇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박사는 지금 이전에도 수차례 자기 손을 보곤 했었다.
"마네트 박사님."
로리는 다정하게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 환자란 저와 각별히 친한 친구인데요, 그 환자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딸을 위해서 박사님께서 제발 좀 제게 충고를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마네트 박사님."
박사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어떤 정신적 충격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박사는 말했다.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그 증세에 대해서... 아주 세밀한 점까지 빼놓지 말고."
로리는 두 사람이 서로의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말을 계속했다.
"마네트 박사님, 그것은 옛날에 오래 지속되던 충격에서 오는 병입니다. 사랑이랄 할까 감정이라 할까.... 박사님 말씀처럼 정신적으로 크나큰 고통과 쓰라림을 받은 데서 오는 병입니다. 즉, 정신이 문제란 말이죠. 그 환자의 경우에 있어 충격을 받은 그는 시간조차도 짐작할 수 없었기에, 그 충격이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었나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환자 자신의 시간 관념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그 기간을 알아낼 길이 없으니까요. (..중략...) 그 후 환자는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높은 지성의 소지자가 되었으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활동도 하게 되었고, 더욱이 본디의 풍부한 지식에다 항상 새로운 지식을 얻어 대가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기서 그는 잠시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병이 다시 재발했어요."
박사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동안 계속됐나요?"
"꼬박 아흐레 동안 밤낮으로."
"그런데, 그 환자는 어떠한 꼴을 하고 잇었나요?"
자기의 두 손을 흘끔 내려다보며 박사는 말했다.
"그 충격과 관련이 있는 옛 직업을 되풀이했으리라 추측되는데."
"사실 그랬습니다."
(중략)
"아까 환자의 딸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의 딸은 아버지의 병이 재발한 것을 알고 있나요?"
"아뇨, 따님에겐 비밀로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이외에 또 믿을 만한 사람 한명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박사는 로리의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거 참 고맙소이다! 거 참 잘생각하셨소이다!"
이렇게 둘은 조심스레 박사의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리의 우정이 돋보이는 장면, 박사의 섬세한 마음과 격정, 우정에 감사하는 장면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 대화가 끝나고 또 끝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
박사가 집을 떠나 딸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 그날 밤, 로리는 미스 프로스와 함께 도끼, 톱, 끌, 망치를 들고 박사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아 놓고 무슨 범죄라도 저지르는 듯, 무슨 괴상한 짓이라도 하듯, 구두공의 의자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정말이지 그녀의 그 무시무시한 얼굴은 살인 방조자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체의 소각은 지체없이 부엌 아궁이에서 집행되었다. 그리고 연장, 구두 및 가죽은 뜰에다 파묻어 버렸다. 그 파괴 행동은 너무도 사악했고, 따라서 그들의 정직한 마음속에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이 범죄 행위에 종사하고, 그 흔적의 인멸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로리와 미스 프로스는 정말로 무서운 범죄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 모르지만, 이런게 디킨스적인게 아닐까 싶다. 디킨스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