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제목에서 (책읽기)는 (커피마시기)로 바꿔도 됨.
2010년 6월 29일 11시. 나는 무척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땡볕 벽돌위에 교보문고 쇼핑백을 깔고 앉아 있었다. 바람이 의외로 시원하게 불어와서 덜 마른 머리를 풀어 놓기까지 했지만, 구름은 점점 걷혀서 해가 나고 있었고, 안그래도 오만상인 얼굴은 햇빛덕분에 더 더 찌그러지고 있었다.
11시에 오픈이면, 10분전에는 나와서 오픈 준비를 해야할 것이 아닌가,
별다방 가서 아이스 커피 마시며 네코무라 비닐 뜯고 킥킥 거리면서 보고 오는 것이 내가 네코무라를 보는 신성한 의식인데! 오늘은 찾으러 오라던 더치 커피도 사갈겸, 맛난 드립 아이스도 마실겸(리필도 되고, 집도 가까운) 지난 번에 새로 발견한 동네 카페에서 그 의식을 치루기로 했기에, 몇시에 나오나 두고보자며 기다렸다.
11시 13분, 주인장이 오고,
'어디서 오셨어요?' 라고 의아해하며 물었을 때
잔뜩 심통이 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에서 책 찾아서 집에 가는 길인데요' 라고 비교적 성실한 답변을 했다.
물론 주인장은 나를 커피 볶은 거 사러 와서 기둘리는 카페 쥔장쯤으로 생각하고 물었던 거다 'ㅅ'
교보에서 왔다는 나의 지극히 사적인 답변에 뭐라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원두.. 받으러 오셨어요?' 라고 끝을 흐리며 되묻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심통난 나는, 너무 심통 나서 쪽팔린것도 못 느낀채 '마시러 왔어요'
그랬다. 근데, 왜 마시러 왔어요. 라고 하면서 나의 손은 소주잔 꺾는 모션이었던 걸까 orz
심통도 참 간지 없게 났다. 젝일
무튼, 나는 덥고, 피곤하고, 졸렸고 (어제 밤 샜긔) , 기다리느라 짜증 났고,
오늘 찾으러 오라던 더치 커피는 어제 다 팔렸다고 하고!
아이스커피가 나오기 전까지 읽고 있는 <책 사용법>은 당췌 재미도 없고,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 책을 읽다 보면 이 계열의 작가들의 작품이라도 이런 방식의 책읽기만으로는 다 확정할 수 없는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이런 것이다. 먼저 작가들이 의식의 흐름이나 하부담화를 그대로 쓸어 담아 기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어를 선택하고 문자를 고르고 하는 과정에서 이는 선별, 또는 조정된다. 또 글쓰기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퇴고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작동하기도 한다. 책의 세계는 작가에 의해 한 차례 더 비의에 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책의 세계가, 작가의 세계가 간단치 않은 과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도 이 점에 유의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독자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요청된다.'
이 부분까지를 꾹 참고 읽다가 포스트잇을 쫘악- 뜯어서 나의 몽블랑 보엠을 꺼내어 '뭔소리야?!' 분노로 휘갈겨서 책에 떡 붙여 놓았다. <편집자 분투기>는 그래도 읽을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책책은 많이 읽어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깝깝- 하다. 무튼, 그래도 아이스커피 나올때까지는 네코무라를 봉인하겠어라고 굳게 결심하며
심통, 오만상 하고 있다가
짜잔 - 아이스커피 나오고, 얼음물 받고, 네코무라씨 넷 비닐 뜯었다.
4권에서는 작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심각한 갈등을 그려내는 장면에서 놀라고, 감탄하고, 연필로 쓱쓱 그린 만화의 심오함과 사랑에 빠질 것만 같고, 네코무라를 보며 얼굴엔 어느새 엄마미소 - (혹은 집사미소? 네코무라님, 제가 모시고 싶어요. ) 지금까지 앞의 세 권에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고양이짓에 감탄하고, 폭소하고 ..
션한 바람 맞으며, 이번에는 의자도 있고, 테이블도 있으며, 위에 커다란 파라솔도 쳐 주었고, 맛있는 아이스커피가 앞에 있고, 네코무라씨가 있어서
심통은 바람결에 휘이휘이 날려보내고, 활짝 웃는 얼굴로 닐리리 닐리리 노래 부르면서 카페를 나섰다.
가슴에는 네코무라씨 만화책을 꼭 끌어 안은채 ... 일리는 없지요. 하하
무튼 나의 돌변에 ... 흡사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돌.변.에 스트라이다를 타고 다니는 연두색 크록스 카페 쥔장은 쫌 놀랐을지도.. 약간 눈 크게 뜨고 '안녕히 가세요' 했던 것 같기도 ...
그러니깐..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
책읽기 전과 책읽고 난 후의 마음 틀리다더니...
모두들 네코무라하고 아이스커피한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