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켄의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열심히 읽고 있는데,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분량도 생각보다 꽤 많아서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반 이상 읽었으니, 이 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반 이상 읽었는데, 계속 기대된다.  

 

 

 

첫 20페이지를 두근거리며 읽었다고 했는데, (그러니깐 '사세요' 가 아니라, 일단 '처음 한 열장만 읽어보시라니깐'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거다. 헤헤) 그 다음에는 약간 영문 모르게 아일랜드의 두 형제가 나온다.  

동생은 예수님 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했는데, 아주 어릴때부터 막 아홉살 이 때부터 노숙자들과 어울리며, 고통 분담 차원에서 술도 마셔주고, 자신이 가진 걸 모두 내 주며 싹수를 보이더니, 뉴욕으로 건너가 빈민가에 살면서 문을 열어두고 흑인 창녀들이 그의 집을 화장실로 쓸 수 있게 해주고, 양로원에 봉사하고, 창녀들 뒤치닥거리하며 살고 있다.  

동생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형은 동생이 살고 있는 빈민 아파트를 이렇게 묘사한다. 형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   

   
 

광기와 탈출의 오랜 시간들. 빈민 아파트 단지는 절도와 바람의 희생자였다. 고층 건물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바람 덕분에 아파트 단지에는 그들만의 날씨가 만들어졌다. 비닐봉지들이 몰아치는 여름바람을 타고 날았다. 날아다니는 쓰레기들 아래로 아파트 마당에서 노인들이 앉아 도미노 놀이를 했다. 비닐봉지 소리는 라이플총 소리 같았다. 그 쓰레기를 한동안 바라보노라면 바람의 정확한 모양새를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바람은 주위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어떤 면에서는 매력적이었다. 한 덩어리로 기운차게 빠른 속도로 불어치는 소용돌이와 8자 바람, 용수철 모양 나선형과 소라 모양 나선형 바람들, 그리고 와인 병따개 모양의 바람, 때때로 비닐 조각은 파이프에 끼거나 철망 울타리 꼭대기에 닿았다가 경고라도 받은 것처럼 다시 볼품없이 물러났다. 그러다 손잡이가 서로 만나면 봉지는 떨어졌다. 비닐봉지가 걸릴 나뭇가지도 없었다. 이웃 아파트에서 남자아이 하나가 낚싯줄이 없는 낚싯대를 창밖으로 내밀었지만 봉지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비닐봉지들은 종종 한곳에 머물러 마치 이 회색 풍경 전체를 감상하듯 있다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며 공손하게 절을 하며 사라져버리곤 했다.  

 
   

 정말 우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빈민 아파트 앞의 바람 부는 스산한 풍광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비닐봉지라는 장치, 바람의 모양, 그 배경 속의 노인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 ..  

시간적 배경은 닉슨 대통령 시절, 무역센터 빌딩이 다 올라가고, 입주를 시작할랑말랑 하는 그 시점이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상류층의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신문광고에서 그녀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들에게 상류층의 그녀가 사는 파크 애비뉴는 모노폴리 게임에서나 볼 법한 곳이다.  

글로리아 집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나와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글로리아를 바라본다.  

   
 

그들은 모두 함께 일어났다. 물론 글로리아는 제외하고. 글로리아는 11층 창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무늬 있는 드레스의 가슴 높이께로 창문 창살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 높은 곳의 글로리아는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쓰레기 파업이 진행되던 중이었다. 쓰레기 옆엔 쥐들이 나와 있었다. 고가 아래 늘어선 창녀들, 눈발이 날리는데도 핫팬츠와 목 뒤로 끈을 묶는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추위를 피하고 있다가 트럭들이 지나가면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에게서 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피어났다. 만화 대사를 쓰는 말풍선 모양. 그러나 끔찍했다. 클레어는 다시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글로리아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이 지독한 쓰레기 더미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풍경과 처지와 배경이 정말이지 손에 잡힐 것 같다. 글을 읽으며, 책 속으로 들어가 보고, 듣고, 느낀다. 
이야기는 두번째 이야기와 빈민층 아파트를 통해 연결되고, 첫번째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첫번째 이야기와 연결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숨을 죽이고 다음 문장을 읽게 만든다.

그러니깐, 첫 20페이지의 그 장면은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도시, 무미건조한 일상에 매몰된 도시인들, 체념과 안타까움이 범벅된 그 도시의 그들에게 찬란한 빛,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희망, 일탈.. 등을 보여주는 정말 ... '대단한' ... '역사상 최고의, 지상 최대의 예술적 범죄' 인 것인 건가. 싶다.  

세번째 이야기도 이 전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네번째 챕터인 '거대한 지구를 영원히 돌게 하자' 이 소설의 제목과도 같은 이 챕터에선 필립 프티의 이야기도 잠깐 나온다. 이쯤되면,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구원하러 이 세계에 납신 초자연적 존재같다.  

   
  몇 초 만에 그는 순수 그 자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공기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누리며 그는 동시에 그의 몸의 안이었고 또 밖이었다. 미래도 과거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줄타기에 즉각적인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삶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각각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전 이야기들을 물고 있는 구조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보통으로 잘 쓴 연작 소설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지그소 퍼즐을 아주 세련되게 맞추어 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순간,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 어떻게 이 책을 느끼게 될지, 궁금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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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07-0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너무도 많군요. 풀썩 ;;; 요즘 책장을 바라보면서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커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가끔 암담해지기도 하지만 ^^; 이렇게 멋진 책이 존재한다는 두근거림을 알려주는 하이드님의 페이퍼를 읽으면 책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어요.그래서, 감사하다구요. 하이드님. ^^

하이드 2010-07-0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굿바이 쇼핑>처럼 1년간 책 안사기 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는데.. 안 될꺼에요. 그죠? ^^;

전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같은 책이 좋더라구요. 정말 잘 쓴 글, 첫줄부터 막줄까지 꽉 짜인 플롯,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중간중간 숨을 멈추게 하는 그런 장면들이 나와요. 숨을 멈추고,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게 되는 그런 장면들. 다 읽고 후 - 하고 숨을 내쉬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음미하게 만드는 그런 장면들이 있어요.

chika 2010-07-02 09:30   좋아요 0 | URL
하이드가 책을 안사기 해볼까 해요,는 일주일동안 굶어볼까 해요...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인거 아시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