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읍내에 나갔다.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흘러내리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막으면서 열심히 먹느라고

아빠만 시장으로 들어가고 우리 셋은 차 안에 남았다.

어제까지는 장마가 <나 아직 안 죽었소> 라고 외치는 듯 며칠동안 비가 줄기차게 내렸는데

오늘 낮엔 또 끈끈하고 덥다.

한 쪽 문을 열어놓고 앉았는데 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엄마, '바다나라'라고 써 있다!>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이다.

이제 읽을 수 있는 글씨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그 옆 가게엔 <또마>라고 씌어져 있단다.

꼬마를 또마라고 읽었지만 어느 정도 한글에 감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는 <태민아, 사랑해>라고 쓰고 하트모양 두 개를 그린 편지를 역시 하트모양으로 봉한 편지봉투에 넣어 동생에게 내밀기도 했다.

어릴 적 시장통에서 엄마가 하시던 아마도 식료품 가게 문간에 서서 읽었던 넉 자,

엄마가 <정말 한글을 읽을 줄 아는구나!> 하고 반기시며 칭찬을 해주신 덕분에

내가 읽었던 첫 글자로 기억되고 있는 넉 자는 바로 '안주일절'이다.ㅋㅋ

가게 앞 포장마차 파란 천막에 씌어져 있던 그 넉 자의 뜻을 알게 된 것은 물론 한참 자란 후였다.

<천지현황> 우주의 이야기로 가르침을 시작하는 천자문에 비해

< I'm dog. I bark. >이렇게 짖으며 시작되었다는 옛 영어교과서가 한탄스럽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 안 보태고 일 년 365일 중에서 360일 이상 술을 마시는 신랑을 만나게 된 까닭이 설마?!

우리 미니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 푸른 감성과 이성을 지닌 사내를 만나 파도처럼 높고 낮게 일렁이는 삶도 잠시도 멈추지 않는 또 그 파도처럼 늘 한결같이 함께 이루어 나가길 빌어본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한글을 배울 때 어떤 글자를 처음으로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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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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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7-09-05 19:39   좋아요 0 | URL
겨우 가부터 하까지 읽을 수 있는거야. 바다나라 - 그 속에 다 들어있잖아.^^

미설 2007-09-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도는 토마토 였답니다. 민이의 한글읽기 축하해!!! 하은이 이제 죽었쓰 ㅋㅋㅋ

miony 2007-09-05 19:42   좋아요 0 | URL
고마워. 2학기부터 유치원 안 가서 룰루랄라 하고 있는데 내년 봄엔 어떨지... 토마토가 웰빙음식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알도는 늘 건강한 생활 하겠네!^^

2007-09-05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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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7-09-05 19:43   좋아요 0 | URL
진짜 대단하다. 그대가 어찌 그걸 기억하우? 그리고 우리가 단어의 냇가에서 헤엄칠 때 그대는 문장의 바다를 항해한 듯!!!

hsh2886 2008-07-15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마자!!하은이이제 죽었쓰~~
 

미니가 몸 속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요즘 유난히 꼭 안아달라고 하는 일이 많은데 어느 날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나보다.

병원놀이하면서 진맥하느라 손목에 맥박이 뛰는 것을 느껴보라고 했더니

엄마 배에서도 두근두근한다며 눈이 동그래진다.

그래서 간단하게 심장이 하는 일을 설명해주었더니

얼마 전부터 궁금해하던 위장과 간까지 덧붙여져 몸 속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대충 그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영 이상해서 아무래도 책을 하나 사주는 것이 좋겠는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보아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땅히 이거다 싶은 것이 눈에 띄질 않는다.

만 4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소녀 미니에게 적당한 인체 그림책 좀 추천해주세요!

소화, 혈관과 호흡기 순환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담긴 그림책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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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체에 관한 그림책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8-27 08:41 
    안녕하세요. 초면에 불쑥 실례합니다. 아영엄마님이 한 번 가보라고 다리를 놔줘서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가장 초보적인 책이죠. 호기심 유발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만 4살이니까 가장 맞춤한 건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리즈인 듯. 이외에도 '영리한 눈' '재주 많은 손' '기운센 발' '꿈꾸는 뇌' '갈아입는 피부' '신통방통 귀와 코' 등이 더 있어요.     사실 님의 페이퍼를 보고 제일 먼
 
 
2007-08-30 0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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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7-08-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척이나 흡사한 경우네. 사실 내가 태민이한테 좀 더 얘기도 많이하고 기타등등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엄마가 문제인 것 같다. 얼마동안 머리 찧으면 야단도 치지말고 모른 척 해보아야겠다. 고마워!!!

2007-09-03 14: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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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의숙에 내려가 있으면 베란다로 뛰어나가서

동동거리며 달리다가 난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지나가는 자동차 구경하기,

베란다와 계단이 만나는 끝부분에 마무리가 덜 되어 한 사람쯤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한 손으로만 난간 잡고 앞으로 몸 기울이기,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모든 것은 흉기가 될텐데 물건 아무거나 집어던지기,

조심한다고 문단속을 하지만 아무래도 요즘 잠금장치를 돌려서 열 수 있게 된 듯

열어놓은 창문턱에 올라앉아 10여 미터 아래를 내려다보기,

손님들이 다녀가시다 계단 앞 문을 혹시 슬쩍 닫아놓기라도 하면 어느 새 도로에 뛰어들기...

이런 까닭으로 너덜이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였는데

무척이나 가파른 시멘트 진입로에 페트병이나 장난감 하나 떨어뜨려놓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다시피 내려가는 것이 재미있는지

비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내리쬐어도 잠시만 방심하면

어느 새 문 밖을 나서 종종거리는 모습이 창을 통해 내다보인다.

달려내려가서 붙잡아 안고 올라오는 것도 한 번, 두 번이지 너무 힘들어서 어쩌나 잠시 두고 보면

실컷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동네 길로 나서지는 않고 결국 돌아올라오는데

현관 앞에 이를 즈음이면 하아하아 숨을 몰아쉰다.

그러고도 자꾸 뛰쳐나가니 요즘 엄마는 대부분의 일들을 문 앞에 앉아서 한다.

책도 읽고, 바느질도 하고, 과일도 깎고 ...

그래도 동감의숙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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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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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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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아기나 클레멘타인,슈베르트,브람스의 곡 등 전통적인 자장가를 불러주던 시기가 지나고

개구리소년 빰빠바, 랄랄라 랄랄라 파트라슈,외로워도 슬퍼도 캔디 등 만화영화 주제곡을 지나

산타루치아(잔잔한 바다 위로, 창공에 빛난 별로 시작되는 두 곡),

4월의 노래(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들으며 이리저리 뒹굴다가 잠이 든다.

한 가지 노래를 잠들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 불러주어야 되는 것이 힘들어서

엄마찾아 삼만리, 그 집 앞, 봄처녀, 그네, 돌아오라 소렌토로, 꿈길, 가고파,보리수 등

새로운 곡을 시도해 보았지만 성공한 것은 4월의 노래 한 곡 뿐이다.

다른 곡을 한 소절 부르면 <어~,어~>라고 부르짖으며

거부의 몸짓으로 머리를 땅에 콩콩 부딪치고, 잠시라도 멈추면 역시 같은 반응이다.

같은 노래를 어찌나 많이 불렀는지 드디어 오늘 밤에는 누나가 불러주는 산타루치아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산타루치아와 4월의 노래에 음악적으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노래들을 즐겨들으며 잠드는 태민이가 좋아할 만한 다른 자장가 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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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0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들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는데
저 역시 같은 레파토리를 부르는게 지겨워
학창시절 배웠던 가곡까지 다 튀어나오곤 했지요.
지금은 알아서 자지만
자장가를 불러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5년이 흐른것을 생각하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또 느낄 수 밖에요.

miony 2007-08-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가 요즘 한창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난간에 올라가고, 도로로 뛰어들기도 하고, 급경사 시멘트 비탈길을 걸어내려가곤 해서 정말 하루종일 뒤를 따라다녀야 합니다. 잠깐만 놓치면 간담이 서늘한 일이 생기곤 해서.. 아이들을 다 키우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2007-08-11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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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와 봄이가 열흘 정도 머물다 갔다.

봄이는 그 야무진 말솜씨하며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아직 말과는 담을 쌓고 있는 <아기>태민이는 따로 엄마한테 안겨 놀고

<언니>봄이는 알도와 미니가 하는 일에 빠지지 않고 동참하였다.

처음 사나흘은 그야말로 사이좋게 양보도 잘 해주고 노는 듯 하였으나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장난감을 놓고 서로 밀고 당기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정말 정말 미워!> <우리 집에 오지 마!> 등의 대사가 오간 끝에

토라져서 시무룩하게 있다가 낮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루 미니가 동감의숙에 내려가자

미니는 미니대로 왜 너덜이에 있고 싶은데 나를 데리고 왔느냐며

당장 다시 올라가자고, 민우오빠만 좋고 다른 친구들은 다 싫다고 대성통곡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미니까지 집을 비우자 알도는 알도대로 훌쩍였다고 한다.

지난 번엔 떠받들어주고 돌봐주며 놀아주던 아라언니, 해빛나 언니와 헤어지고

너무너무 심심하다며 역시나 아라언니, 해빛나 언니만 좋고 다 싫다며 엉엉 울었지만,

산골에서 여러 손님을 맞고 떠나보내다보니 미니도 많이 적응이 되기도 해서

" 영우야, 다음에 또 놀러 와!"

라는 말로(다행히 눈물을 흘리지 않고)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었다.

조그만 다툼은 있어도 아침에 눈만 뜨면 할머니 댁에 가서 알도와 노느라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았던데다

오늘 전원생활에서 품앗이 육아 기사를 읽고 보니 또 더욱 미니에게 함께 놀 친구가 없는 것이 걱정스럽다.

태민이도 아직은 너무 어리고...

아뭏든 오빠가 선물해주고 간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더하기 1이다.

98 더하기 1까지 완벽하게(?) 답할 수 있고 100 더하기 1은 101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99 더하기 1은 무엇일까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미니.^^

10까지의 수 개념도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오빠 덕분에 더하기 1부터 먼저 배웠다.

그나저나 흐린 날씨 탓에 일주일만에 만난 아빠와 계곡에는 가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방콕하다가

다음 날 물놀이 5종 세트를 챙겨들고 목포에 들러 상경한다던 오빠는

사흘 째 제법 많이 내리는 빗 속에서 무사히 귀가했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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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8-08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이 다녀가셨군요..아이들이 서로 한참을 그리워하겟는걸요..

miony 2007-08-0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하트모양 종이에 <오빠,미안해. 오빠가 갖고 싶은 것 자꾸 달라고 해서. 다음에는 양보 많이 할께. 또 놀러 와!>라고 글로 쓰지는 못하고^^;; 말로 편지를 썼답니다.

2007-08-09 0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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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h2886 2007-08-09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말로 편지를

miony 2007-08-0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동안 산에는 줄기차게 굵은 빗줄기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정말 잘했다. 지난 주말부터 계속 햇빛 한 자락 안 비치고 매일 비의 나날이다. 오히려 요즘이 장마처럼 느껴져.

2007-08-11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