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웃긴 가게 이후에 처음 듣는 그녀의 노래다.

담다디로 매스컴을 탈 때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어느 때 쯤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 들려주던 노래들이,

그 선머슴 같던 모습보다 이런 여인의 자태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더 편안하다.

모처럼 대학생 조카들 셋이 찾아와 떡볶이 집 철판에 다섯 사람 분의 김치볶음밥을 만드느라 

멀리서 웅얼거리는 가사와 함께 처음 들었을 때는 나의 기대가 너무 컸나 했었지만

아이들이 잠든 밤 하루종일하던 단순작업을 계속하면서 다섯 번 째로 돌려듣고 있을 때는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까지 들리면서 지루하지 않고 행복했다.

어느 평론가가 썼듯이

처음에는 <삶은 여행>이 제일 먼저 들렸지만 되풀이해서 들을수록 골고루 들린다.

옛날옛날 한 청년이 배를 타고 흘러흘러....세상을 바꾸려고도 했었지만....

이 청년이 누군인지 알고 나서는 같은 얘기도 참 심플하고도 유쾌하게 썼구나 하면서 흡족했다.

다만 그 동안 들어왔던 그녀의 노래(공무도하가,외롭고 웃긴 가게가 전부지만)와

내겐 너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옥의 티다.

자신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한 나는,

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섬세하게 분석하며 듣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아쉬워해야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좋았고 요 며칠 사이 매일 되풀이해서 듣고 있다.

미니도 몇 가지 가사를 흥얼거릴만큼...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길다면 이제 어느 정도 긴 내 삶에 콘서트에 간 것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혼자 울산에서 자취하던 시절 라디오 공개 방송에 초대된 이문세가

조명이나 무대는 허름했지만 거의 단독콘서트와 같은 무대를 보여주었던 날(입장권은 삼천원이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일본의 조용필이라 할 수 있다는 차게 앤 아스카(이름이 맞나?)의 공연이 있었지만

어두운 밤에 두뇌회전은 필요없고 손의 기억만으로 가능한 일을 하고 앉아 있으니

동생이 생일 선물로 성균관대에서 했던 콘서트 티켓을 구해서 함께 간 날이 떠올랐다.

생일은 여름이었지만 그 때는 추운 계절이었나?

아뭏든 일찍 도착하여 콘서트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야광팔찌도 샀다.

조용히 듣기도 하고 얼마동안 신나게 뛰기도 하고

끝나고 나서는 맛있어 보이는 빵도 사고 작은 액세서리 가게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 날의 작은 동작들은 기억에 또렷한데

정작 그 때 무대 위에서 노래했던 가수가 누구였는지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 노래들을 들으며 그 날 노래했던 사람도 이상은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 추억의 한 자락이 만족스럽게 완성될 것 같은 기분 ^^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보석같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던,

그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무척 자유로웠던 날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퉁명스럽기는 해도 아침을 먹다 말고 "저건 누구야?"라던 옆지기의 지지선언으로

잠깐 겨울바람이 꿰뚫고 지나기라도 한 것처럼 시리던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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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5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8-01-05 09:58   좋아요 0 | URL
아하,누구 한 사람의 단독콘서트가 아니었구나!

소나무집 2008-01-05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은, 저도 스물의 그녀는 뭐 저런? 하면서 바라보았는데 삼십대의 그녀는 가슴에 와 닿더이다. 라디오도 안 듣고 tv도 거의 안 보다 보니 대중 음악 거의 모르고 살아요. 저는.

miony 2008-01-0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데 오랫만에 앨범 한 장을 사게 되었네요.^^
 

친한 친구와 계모임을 하는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이런 신랑을 만났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자기에게 보이지 말라는 신랑.

친구의 친구이다 보니 몇 번 만났는데 예쁘장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에 박색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그냥 보통 얼굴이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낫더라.)

아뭏든 신랑의 바램이 그런지라 결혼하고 언제까지 그랬는지는 몰라도

늦은 퇴근 시간까지 세수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아침엔 항상 먼저 일어나서 화장부터 했단다.

(참, 성격 무던한 여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감각이 떨어지고 또 게으르다 보니 몸 치장하는 것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 신랑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치 않으셨던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느냐는 마음으로  화장하지 말라는 남편을 다행히 만났다.

심지어 드문드문 이어지다가 꼬리는 없어지는 눈썹이 신경 쓰여서 그린 듯 만 듯 했는데

그것도 그냥 두라길래 안 그리다 보니 얼굴이 우스워진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헤어스타일도 언제나 질끈 묶어올려 낡아서 빛 바랜 머리핀으로 꾹 누른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리, 구체적으로...

책 읽느라 앉아 있으니

키보다 높은 곳에 올려놓은 머리 빗을 어떻게 내렸는지 가지고 와서는

뒤에서 머리핀을 풀어내고는 차근차근 빗어내리고 부풀리고 이러고 저러고 한참이더니

이제 되었다면서 앞으로 머리핀은 금지란다.

엄마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더 예쁘다면서 다시 한 번 머리핀은 금지라고 엄포를 놓는다.

- 엄마 머리가 이렇게 치렁치렁하면 음식에도 머리카락이 들어가고 그러면 나쁘잖아?

  오늘 아침에도 김치 그릇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서 아빠도 싫다고 하셨어!

-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엄마가 예쁘게 하고 있는 것이 좋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하고 있고 핀 꽂는 것은 하지 마, 알겠지, 응?

이러면서 달래는 투다.

속으로 뜨끔하면서 알겠다고 얼버무리고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앞에 와 서더니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 (옆 머리카락 몇 가닥을 들어올려 빗으로 어깨쯤 닿을 부분을 가리키며)

  언제 미용실에 한 번 가서 이 정도로 자르는 건 어때? 그게 딱 예쁠 것 같은데..

- 그,그래, 아라언니네 놀러가면 미용실에 가서 이 정도로 자르자.

-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그러면 되겠네!

 

네 돌이 지나고 아직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이 분은 다시 생각할 수도 없는 상대인지라

앞으로 함께 가는 길이 험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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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2-1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대단하네요. 아이 귀여워라.

순오기 2007-12-1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네 돌이 지나고 아직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그 분도 유치원 가면 달라집니다! 제 친구 생기면 엄마를 덜 간섭할텐데... 그때 섭섭해하지 마셔용! ^^

miony 2007-12-14 12:40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늙고 볼품없는 엄마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러잖아도 걱정이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이런 얘기를 들으니 잠시 멍~ 하더라구요. 얼른 유치원에 보내야겠네요.^^

알맹이 2007-12-2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구례 연지








가을이라 여러가지 약재를 갈무리하느라 바쁩니다.

생지황 바다에서 아이들도 한 손 거드는(?) 중.

이 모습을 꼭 찍어달라나요?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여서도 꼬고 있던 발, 아직까지 여전합니다.







미니의 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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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07-11-1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수민이 못 본 사이에 넘 많이 컷다!!!/>ㅂ<)/~♥
겨울에 꼭 놀러와!!!

hsh2886 2007-11-26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랑 일곱번째가 제일 수민이다워요^^

소나무집 2007-12-0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발이 너무 예뻐요. 광고 사진에서 본 듯한 발이네요.

miony 2007-12-07 13:18   좋아요 0 | URL
이런 뜻하지 않은 칭찬을 해주시다니요^^;;
 

아버님 기일 며칠 전부터 시댁에 가 있다가 며칠 지나고 돌아오니 꼭 일주일이 지났다.

아버님은 하나 뿐인 아가씨가 초등학교 5학년, 미니 아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을 걷이를 마치고 나자마자 그만 쓰러지셔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빈 손으로 큰 댁에서 분가하여 정말 열심히 농사를 지어 논 마지기나 장만한 때였다는데...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40대 과로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잔치 집에 다녀오실 땐 조끼 주머니에서 먹을 것을 꺼내어 주시고

소를 팔아서 아들이 갖고 싶어하는 전축을 사주셨다던 아버님,

아가씨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싫다고 가슴 아픈 소리를 했다.

나이 터울이 많이 지는 형제들이라 오빠들은 모두 자라 취직이다 공부다 해서 타지로 나가고

초등학교 다니던 아가씨 혼자 집에 남아 있으니 그 정이 더 애틋하셨던지

비 오는 날이면 (다른 아버지들은 안 그랬는데 우리 아버지만) 우산을 들고 딸을 마중나가셨단다.

여름에 농부는 비가 오면 논이고 밭이고 보살펴야 할 것이 많아 더 바빴을테니

아마도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이나 겨울 쯤이 아니었을까?

봄비, 여름비보다 더 차고 시린 겨울비를 막아주던 아버지의 우산이 걷히자

그 후로 10 여년 세월이 먹구름이더란다.

아버지랑 함께 했던 일들, 말씀들은 기억나지만 이젠 아버지 얼굴이 가물가물하다는 아가씨에게

그래도 니는 얼굴이 가물거리기라도 하지, 나는 아예 기억이 없다

며 설움을 더하는 작은 형님을 보니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아버지 사랑을 모르고 지낸 형님이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갓 시집 온 5년 전만해도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소처럼 부지런히 일하시던 어머님도

이제는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지는 날들이 많고 녹내장, 백내장이 겹쳐서 온통 눈 앞이 흐려지시니

아버님 제사를 지낸 다음 날 결국 백내장 수술을 하고 돌아오셨다.

그나마 대학에 다니는 큰 조카가 할머니 곁에 며칠 있기로 하여 돌아오는 걸음을 간신히 옮겼지만

잘 지내셨냐는 미니아범 물음에

" 외로버서..."

하시며 한숨을 지으시던 어머님을 답싹 안아 모셔오지 못하는 내가 참 부끄럽다.

큰 형님께서 혼자 힘이 드시니 거처를 옮겨가시자고 자주 말씀드리지만

"소도 먹여야 되고 내가 거기(아파트) 가서 뭐 하게! 싫다." 하시던 어머님이

조카에게는 "거기 방이 있나? " 라며 한 걸음 물러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친정부모님도 여전히 힘드시지만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새삼스러운 일주일이었다.

날마다 지지고 볶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 받으며 힘들어하는 시간들이 되풀이 되어도

마지막까지 서로 기대고 의지할 이는 자식보다는 친구보다는 아내와 남편인가 보다.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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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1-11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머니 인생은 아마 허전하실 거예요. 자식들 다 성공하면 뭘 하겠어요. 당신 곁엔 아무도 없는데... 저도 요즘 저희 부모님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한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하는데도 친정엄마께서는 항상 "왜 이제야 전화를 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나마 저도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 천만 다행이지요. 님, 자주 전화 드리고 생각해 드리는 예쁜 며느리 되어 드리세요. 늘그막에 무슨 낙이 있겠어요. 그죠?
우산과 아가씨 이야기는 가슴이 아리네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아요.

순오기 2007-11-1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핑하네요~~~ 부모님은 누구의 부모님이나 한결같은 사랑을 갖고 계셔요!
저도 아버님 혼자 계셔서 남 얘기 같지 않네요.
 

 엄청 다정한 척 하는 부자

아빠 품에 안길 때는 주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좋아하는데...- 시소, 천장으로 던져올려주기

웬일로 가만있을까 했더니 젓가락을 관찰하는 중인가?

 젓가락 보이 - 그래도 요즘은 젓가락에 덜 집착한다.

 아빠랑 동생만 올려주면 섭섭하니까 누나도 한 장!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모습이 엄마 마음에 든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사다리도 같이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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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7-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수민이 사진 넘 멋지다^^ 그리고 테민이는 넘 판박이야. 완전 총각이 되었어^^

miony 2007-07-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각은 총각인데 아직 젖 먹고, 기저귀 차는 총각이란다.^^

살구꽃 2007-07-19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한 부자이기도 하고 판박이 부자이기도 하다...어쩜...ㅋㅋ

알맹이 2007-07-2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민이랑 아빠랑 너무 똑같다. 헉.. 그리고 동감의숙? 저기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