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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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특급 호텔의 옥상. 수도권 영공방어를 위한 대공포진지가 설치되어 있고 주인공인 제훈이 이 곳에서 군복무중이다. 전 세계에 퍼져버린 바이러스 차이나플루때문에 자대 배치 후 첫 휴가가 자꾸 미뤄지게 된다. 제훈의 여자친구 영주는 처음의 마음과 달리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일이 슬슬 짜증나고 지쳐간다. 제훈은 기름을 사러 잠깐 밖으로 외출이 가능해 진 틈을 타 영주를 만나 달래주려 하지만 호텔 1층 로비에 다다른 순간 생경한 풍경에 넋을 잃게 된다. 피바다로 변해 버린 호텔 로비에서 시체를 뜯어 먹던 좀비를 발견 하게 되고 아연실색하여 부대로 다시 돌아간다.

 

좀비가 소재인 소설이나 영화에선 세상의 종말이 다가와 있음을 알려준다. 당연한 공식처럼 좀비와 세상의 종말은 늘 붙어다니곤 한다. 좀비가 소재인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와 있다. 하지만 그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외국 좀비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나 눈 앞에 그려진다. 서울은 서울인데 피바다로 변하고 시체 더미가 산을 이루는 익숙한 지명들과 거리 풍경들이 낯설기만 하다.

 

B급 정서가 물씬 풍긴다. 무언가 어설프고 질적으로 살짝 모자라 보이지만 B급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인플루엔자도> 나름의 매력으로 무장해서 그런지 제법 술술 읽힌다. 좀비가 나오는 소설이라 잔혹한 장면을 기대했지만 피바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홍익 인간의 이념을 기반으로 둔 국산 좀비라 수입산 좀비보다 덜 잔혹했는지도 모르겠다. ^.^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한국판 좀비소설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었다. 영상이든 텍스트든 좀비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인데 한국판 좀비는 볼 수 없는게 현실이라 <인플루엔자>가 너무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정도의 퀄리티와 전반적인 소설의 내용을 봤을때 2탄도 기대해보지만 실현 가능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장르소설의 볼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좀비 소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되는건지. <인플루엔자>에서의 착한 좀비보다 좀 더 잔인한 한국판 좀비를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page. 227

"각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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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 -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의
김진만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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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았던 방송국 pd가 된 후 여러차례 부서를 옮겨다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 다큐를 찍게 되었다는 김진만 피디. 책에서는 김진만 피디가 다큐를 찍었던 아마존과 남극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하고 싶다는 이유가 아니라 해야하는 일이기에 아마존으로 가게 되었다는 그. <아마존의 눈물>에서 소개되었던 원시 부족 조에족 외 여러 원시 부족들과 만나 같이 지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말로 다 설명 못할 고생을 하며 촬영했던 <남극의 눈물> 후기까지 예사롭지 않은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마존에는 조에족처럼 아직까지 원시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부족이 있는 반면 문명세계와 만나면서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들이 많이 사라진 부족들도 있다. 문명세계와 만난 원시 부족들과의 에피소드들은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었지만 마음 놓고 웃을 수는 없었다. 무분별한 아마존 숲의 개발때문에 원시 부족들도 오토바이를 끌고 보트를 원하게 되었다는 얘기에 씁쓸해졌다.  

 

어쩌다 보니 남극에 대한 이야기들을 꽤 여러편 읽어본 것 같다. 남극 대륙 횡단기, 남극 기지 연구원의 글, 김진만 피디의 남극에서의 촬영 후일담까지...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던걸까. 남극은 신만이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온통 새하얀 눈 천지인데다 영하 40~50도의 추위와 시속 100키로 이상의 블리자드때문에 사람이 살기엔 절대 적합하지 않은 곳인 남극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지는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김진만 피디와 송인혁 촬영감독 이 커플 정말 사랑스럽다. 군데 군데 깨알같은 그들의 활약때문에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방송되고 다큐를 연출했던 pd들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김진만피디와 송인혁 촬영감독의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났다. 송인혁 촬영감독의 책도 있던데 한 번 챙겨봐야겠다.

 

 

p. 250

남극을 오가는 것은 신이 도와줘야 한다. 결국 남극은 인간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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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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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왕산 자락의 산동네 마을에서 살고 있는 동구네 집에 동구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났다. 3학년인 동구는 난독증으로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읽는데 영주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한글을 읽는다. 동구의 담임이었던 박은영 선생님의 도움으로 난독증은 점차 치유가 되고 동구는 선생님을 몰래 좋아하게 된다. 77년부터 81년 사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인왕산 자락의 산동네라는 장소는 소설의 장치이지만 근대 역사 중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를 다룬 소설이기에 그 때의 일들이 동구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저 평범한 하루 중에 하나였고 신기한 탱크 구경을 하러 전력질주한 날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최근에 나온 <사랑이 달리다>로 처음 만난 심윤경 작가였지만 그때엔 다른 작품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커다란 재미도 못느꼈고 혜나의 사랑을 납득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어서다. 11월 한달 계속 두꺼운 소설만 읽었더니 두께가 부담스러워져 얇은 책 한 권을 고른다는게 이 책이었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고 결론은 왜 여태 책장 속에 고이 보관만했을까라는 뒤늦은 후회. <사랑이 달리다>를 그저 그런 소설로 치부해버렸던게 조금 미안해졌고, 심윤경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과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문장들도 대단했고, 9살 동구의 마음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섬세한 표현력도 좋았고 무엇 하나 단점으로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내게는 좋았던 소설이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고르다가 결국엔 포기. 책 한 권이 전부 마음에 드는 문장 자체다. 나를 웃기고 울게 만들던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앞으로도 이런 책들을 또 만나게 되겠지만 감히 말한다. 그런 책들중에서 엄지손가락 치켜들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될거라는걸. 동구를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이런 책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책들과의 궁합은 괜찮았던 편이었다. 모든 수상작들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첫 수상작부터 천천히 찾아 읽어봐야겠다. 매년 나오는 수상작들이지만 내년에 나올 수상작이 더 기대되는건 이 책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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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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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지만 언니 한규란이 명나라의 공녀로 가면서 집안이 번성하기 시작하고 동생 한계란과 한확은 부귀 영화를 누리며 자라게 된다. 하지만 한규란은 모시던 황제 영락제가 죽자 산 채로 무덤 속에 묻히게 되고 한확은 동생 한계란까지 명나라의 공녀로 보내게 된다.

 

처음의 시작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져 오랜 세월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온 나이 든 한계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다 언니 한규란의 이야기로 옮겨지고 다시 한계란이 공녀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처음에는 왔다갔다 하는 시간과 자주 바뀌는 화자로 인해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길지도 않은 인생 처절하게 살다간 그녀들의 삶에 어느새 감정 이입이 되어 페이지는 술술 넘어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의 새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던 공녀 또는 진헌녀라 불리우던 이름. 치욕적이고 굴욕적이던 공녀를 보내는 일은 새시대가 열려서도 없애지 못한 일이었다. 힘이 없는 나라라는 증거이며 조선의 무능했던 권력을 대변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만 실화라는 이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한 여자 아니, 한 자매의 일생이 그토록 비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아무것도 모른채 지나쳤던 이야기라 더 그렇게 가슴 아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적 국사 시간에 배우던 조선 시대의 역사들중 비참한 공녀들의 삶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되풀이되서도 안되고 꼭 기억해야할 역사임인데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았던건지. 이 책을 통해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간 공녀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재조명 될 수 있길 바래본다.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온갖 역경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그녀들. 비록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힘으로서 그녀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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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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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로해주는 힐링 메세지가 가득 찬 책들이 많다. 억지스러운 말들만 늘어놓는 것 같아 그런 책들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구매한 적도 없고,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이상한 끌림에 임지선 기자가 쓴 이 책은 구입하면서까지 챙겨 봤다. 현시창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에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라는 문구때문이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책 제목까지 끌어와 쓴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일터, 경쟁, 여성, 돈에 대한 키워드로 사회 곳곳의 아픈 곳만 꼭꼭 꼬집어 24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 등록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이마트 지하에서 보일러 수리를 하던중 가스 유출로 사망한 22살 알바생, 대한민국 최고의 영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에 들어가서도 경쟁에 내몰리며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이유, 아버지의 공부 감옥에 갇혀버렸지만 희망을 꿈꾸던 세 자매, 지옥같은 콜센터에서의 하루. 전부 나열하기는 힘들지만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눈 감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상에서 침대로의 장소 이동만 있었을뿐 책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겠더라. 감동적인 에세이도 아니고 심금을 울리는 소설도 아니건만 자꾸 먹먹해지고 울컥하며 쏟아지는 눈물은 참기가 힘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면서도 우리네 청춘들을 이렇게까지 내모는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웠다. 아무 힘 없이 경쟁사회로 내몰리며 하루 하루 힘든 그들에게 모든게 다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위로보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있는 그런 이야기이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곳을 건드리지만 아픈 곳에 약을 발라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설픈 위로의 한마디보다 어금니 꽉 깨물게 만들고 청춘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들 수 있는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위로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얄팍한 위로로 청춘들을 농락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보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걸 또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고통받는 청춘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읽다 보면 책 제목이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써 쓰인게 전부라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4천원 인생에서 날 아프게 하더니 결국은 현시창에서 날 울리는 임지선 기자. 앞으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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