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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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무너지는 가족 관계에 대해 유쾌하지만 씁쓸한 이야기였던 <불량 가족 레시피>, 세 소년의 용감무쌍한 모험담을 그린 <검은 개들의 왕>까지 다 읽어 보고 나니 문학동네 청소년 수상작에 대한 신뢰감은 쑥쑥 커졌다. 차근차근 쌓아 올린 신뢰감과 칭찬 일색인 심사위원들의 평들은 기대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형과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열아홉 살이지만 수염이 자라지 않고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엔 여행이 아닌 가출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가는 곳마다 오해를 받아 가출이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여행을 결심하고 탔던 버스에서 가방을 털어 도망갔던 소녀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19번까지... 주인공이 여행길에 만났던 사람들 덕분에 아버지와 형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비로소 진심으로 그리워하게 된다.

 

읽다 보면 형의 존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행길에 늘 붙어 다니며 티격태격 대는 형이건만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형은 조용하기만 하다.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막상 형의 존재가 밝혀지고 나니 그런 형이기에 주인공에게 좀 더 특별한 여행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딱 잘라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지만, 주인공에게 진정한 여행이 되기 위한 조건은 떠나기 전에 이미 갖춰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이 없어도 감동을 주기에는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우산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잔잔한 보슬비처럼 잠시 멈춰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 무엇이 나를 망설이고 생각하게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세상의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쏟아지던 빗방울을 한참이나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던 게 바로 이 이야기가 나에게 주는 위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남편과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책은 오문세의 <그치지 않는 비>였다. 여행 중 이만큼 어울리는 소설도 없는 것 같다. 바쁘고 정신없던 일상에서 한 템포 쉬기 위한 여행이라 소설 속의 '나'처럼 여행 중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어지는 풍족한 마음은 없었지만, 이 책이 곁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새 겨울비치고 많이 내리던 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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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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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전화'에서 자원 봉사를 하던 누마타 야에는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인생의 실패와 친구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부러움으로 자살을 결심한 다몬 에이스케라는 사람의 전화였다. 자살 결심을 하고 전화를 건 사람들의 푸념을 듣고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주게끔 하는 보통 일상적인 전화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의 전화라는 것을 감지한다. 급히 보건센터에 알려 다몬 에이스케의 자살을 막고자 하지만 현장에 달려갔을 때는 이미 실종되어버린 상태였다. 한편, 다몬 에이스케의 어릴적 친구인 호러 미스터리 소설 작가 고이치는 친구의 실종에 의심을 품고 홀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아무런 근거 없는 공포로 오싹하게 만들기 보다는 좀 더 과학적이고 이유 있는 민속학적인 요소들을 등장 시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작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피가 난무한 살인이나 엽기적인 살인이 없어도 특유의 사위스런 분위기 조성엔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 집안의 모든 불을 켜놓고도 등 뒤가 무서워 책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몰입도가 너무 좋아 책장은 쉽게 잘 넘어가는데 소설 속에 등장 인물들이 등 뒤가 무섭다 할때마다 덩달아 나까지 오싹해졌기 때문이다. 

 

반전의 묘미도 괜찮았지만 역시나 압권이었던 주인공의 빈틈없는 추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조 겐야를 언급하던 고이치의 대화는 정말 깨알같았고... 간혹 눈에 띄던 오타들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여태 나왔던 작품들이 복잡하게 꼬인 인물들과 특유의 민속적인 분위기로 책을 읽기에 조금 난해했다면 이번에 나온 <일곱명의 술래잡기>는 어렸을적 친구들과 하던 놀이를 배경으로 보다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놀이라는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너무 똑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작가 특유의 공포스런 작풍과 더불어 대중성까지 갖춰 내놓은 책이니 재미가 있고 없음을 말해 무엇하랴. 여러 출판사에서 미쓰다 신조의 책들이 나오는걸 보니 기대가 되는 작가임은 분명하다. 아무런 기대 없이 읽어도 확실히 중박은 하는 작가이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호러 장르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유가 너무 뜬금없을 때가 많아서다. 하지만 추리 소설에 근거 있는 호러를 접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미쓰다 신조의 책들은 앞으로도 계속 챙겨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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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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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전에 염병으로 돌아가신줄 알았던 할머니가 67년만에 살아서 돌아왔다. 최씨 문중 양반가의 선비다운 자태로 늘 대나무처럼 꼿꼿하시던 할아버지는 미국물 물씬 풍기며 등장한 할머니를 보자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온갖 악다구니를 입에 담으며 집에서 내쫓으려 한다. 누구 하나 반기지 않는 방문에 할머니는 온 식구를 앉혀 놓고 자신에게 60억의 재산이 있으며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67년만에 식구들을 찾아왔노라고 얘기한다. 그 말 한마디로 할머니의 유산을 얻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의 서막이 오른다. 

 

취업전쟁 88연패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나이 서른 다섯의 주인공 동석. 주야청청 새로운 시대를 꿈꾸지만 선거마다 당선 안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아들을 대신해 슈퍼를 꾸려가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는 엄마. 외모, 학벌, 직업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완벽하지만 위태로운 집안의 생계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동석의 동생 동주. 갖은 고생을 하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고모. 서로 다른 이유로 할머니의 유산을 탐내지만 60억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진짜 존재하는지 의문 투성인 자신의 유산을 가지고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희망 고문 한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할머니의 유산 60억때문에 벌어지는 가족들간의 경쟁과 서서히 드러나는 할머니의 가슴 아픈 과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알쏭달쏭한 60억의 정체도 한몫한다. 유쾌한 웃음과 덤덤한 문장으로 무장하고는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빠르게 읽히며 재미도 있고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 어떠한 주제로 얘기하는 책이든 이렇게 잘만 읽히고 잡생각 들지 않게끔 하는 책은 너무 좋다.

 

얼마만큼의 돈인지 가늠도 안되는 60억의 큰 유산 앞에서 누군들 초연해질 수 있을까. 처음에는 67년만에 돌아온 할머니를 반기는 이유가 60억의 유산때문이었지만 긴 세월동안 쌓여 왔던 오해들이 풀리고 할머니의 진심을 깨달았을때는 그냥 나의 할머니니까, 죽기 전에 자식들 얼굴 보고파서 먼 길 돌아온 할머니이기 때문에 모든걸 이해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짜 60억 있냐는 동석이의 물음에 묵묵무답이나 회피로 일삼던 할머니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할머니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60억이라 해도 할머니가 하는 말이기에 믿고 싶다.

 

p.184

그게 그렇더구나. 사람이 아무리 머리로 산다고 해도 한번 가슴이 동하면 머리 같은 건 정말 쌀 한 톨보다도 못한 게 되더라고. 나중에 후회를 해도,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또 가야 하는 길. 이제 죽을 때가 돼 가니 비로소 알 수 있단다. 그게 사람 사는 길이야. 뜬구름 같은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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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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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데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고 있는 일이 작가이고 성이 김씨이기 때문에 김작가라고 부른다. 영인의 엄마는 그렇다할 작가의 이력도 없는데 자신의 글이 잡지에 실렸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가라고 하며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서울 계동에서 글짓기 교실을 연다. 동네 코흘리개 꼬마 아이들로 시작한 글짓기 교실은 어느새 동네 아줌마들이 점령해 버린다.

 

소설 속 주인공인 영인은 일반적인 정상의 범주에 속하기엔 좀 특이하다. 다른 엄마들과 틀린 김작가의 영향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당차다고 하기엔 좀 그렇고 당돌하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이성과의 교제가 쉽지 않자 동성과의 교제를 선택하는 거나,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잘 좋아해야돼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거나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영인은 작가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는 엄마, 김작가를 무시하지만 그래도 작가인 엄마의 영향으로 책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한다. 생각만큼 쉽게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잘 쓰기 위해 노력도 하지만 자기가 쓴 글들은 쓰레기 같은게 불만이다.

 

글쓰기를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즐겨하는 일이고 제목에서처럼 글쓰기에 관한 소설일 것 같아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항상 있던 책이었다. 제목만 보곤 처음에는 글쓰는 작가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인줄 알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사는 두 모녀의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쉽게만 여겨지는 글쓰는 일이 두 모녀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지난한 삶을 위로받기 위해 치열하게 글을 썼던게 아니었나 싶다.

 

책 속에 책들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이 읽던 책들을 자주 인용했는데 작가가 써내려간 글들과 조금 겉도는 느낌. 좋은 책인건 알겠지만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도 살짝 들고... 하지만 주인공이 읽던 책이었고 자주 인용을 했고 그러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었다. 그중에서도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 나중에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p.291

"글은 말이야. 재미있게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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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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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 필립 말로처럼 코트 자락 휘날리며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고 하드보일드한 삶을 꿈꾸는 탐정 슌페이. 정작 현실은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찾아주는게 탐정 일과의 전부이다. 여비서와의 로맨스를 꿈꾸며 모집을 했지만 결국 슌페이 옆에는 독특한 캐릭터의 할머니 아야가 있게 된다. 애완동물을 찾아주는 일로 소소하게 지내다 시베리안 허스키 '꼬맹이'를 만나게 되면서 항상 꿈꾸던 진짜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캐릭터들이 통통 튀는 것처럼 살아 있다. 장점이라곤 큰 키밖에 없는 주인공 슌페이나 허풍만 늘어놓고 사건 수사에 도움은 안되지만 가끔 중요한 단서들을 물어다 주는 아야 할머니. 자신을 괴롭히는 것같은 아야 할머니에 대한 짜증도 어느새 걱정으로 변하며 둘이 점점 친해지게 되는 걸 보면서 흐뭇해지기도 한다.

 

코지 미스터리는 처음 접해봤는데 그동안 오해 아닌 오해를 했었나보다. 잔인한 살인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서 유머 코드를 삽입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강력한 포스로 무장한 미스터리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어떠하고... 미스터리 소설들은 무조건 심각해야 된다는 나의 안일한 생각을 무참히 깨준 <하드보일드 에그>. 살인 사건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유머 코드로 보는 내내 픽픽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작가가 작정하고 쓴 듯한 상황들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우연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사건 해결은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지만 참기 힘든 웃음과 마음 짠한 휴머니즘까지 아우르며 나를 웃기고 울렸다. 

 

재작년이던가...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을 갔다가 단 돈 이천원 주고 산 책이다. 싼 가격에 혹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의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얼른 집어 들었던 생각이 난다. 책의 내용을 값어치로 따질 순 없지만 제 값을 주고 샀더라도 아깝지 않을 책이었다. 요즘 우울하던 일상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주었던 소설이라 내게로 와준게 너무 고마워진다. 그리고 마침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구입한 참이었는데 필립 말로가 우상인 슌페이때문에 얼른 만나 보고 싶어졌다.

 

 

p.153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고."

 

p.333~334 

살다 보면 피해 갈 수 없는 길 앞에 서는 일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러했다. 하드하지 않더라도, 살 자격이 결여돼 있더라도, 나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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