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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여자
츠쯔이 토모미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리 두껍지 않은 조그마한 책에 무려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니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먹는여자'라는 책의 제목만 보면 요리와 관련된 로맨스 소설 정도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연애관과 결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을 들어가기 전 '저자의말' 에 이 책의 저자는 대담하게도 '슬로우 푸드, 슬로우 섹스 선언' 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이 책을 쓴 의도를 말한다. '슬로우 푸드'는 그래도 좀 들어봤지만 '슬로우 섹스'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천천히 섹스를 하자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천천히 하는 것' 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숙한 테크닉을 말하는 것도 아닌 당신의 마음과 몸이 진지하게 원하는 것이'슬로우 푸드, 슬로우 섹스' 라고 한다.
사람은 맛있는 식사를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사랑이 담긴 섹스를 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음식에 관한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었으나 음식과 함께 섹스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제가 덧붙여지니 읽기가 망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직 저런말을 공감할 만큼 경험이 없기에 단순한 어른들(?)의 이야기이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한번 읽어보기로 하고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주인공들은 주로 도시적인 여성과 남성이고 그들의 사고방식도 모두 도시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이틀만에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다시 첫장의 '저자의말' 을 펴서 읽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저자가 말한 자기의 가치관과 주제를 소설속에서는 많이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연히 만나 관계를 가지게 된 두 남녀 이야기에 앞서 어떻게 슬로우 섹스라는 말을 붙인것인지 이런 만남과 관계가 진정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나역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다소 보수적이거나 고리타분한 입장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서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전제하에 관계를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를 '프리섹스'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이 책에서는 한마디로 '자유연애'와 '프리섹스'를 지향한다. 여기서는 결혼이란 두 남녀를 구속하는 수단으로 밖에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18편의 단편들 중 결혼을 한 주인공도 별로 없고, 결혼을 했더라도 그 결혼생활이 남들과 다른 어떤 장애가 하나씩 있다.
요즘에는 현실에서도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젊은 층에서 많이 생겨나기 때문에 요즘에는 '동거'를 한다는 것도 사람들이 옛날처럼 무슨 악덕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 처럼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하다고나 할까...
오늘날과 같은 결혼의 형태가 생겨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자유연애와 프리섹스는 현대적인 삶이 잉태한 문화의 한 형태가 아니라 생래적으로 우리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짐승이 아닌 이상 인간은 진화함으로써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또 그 이성적인 생각으로 사회의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혼과 같은 사회적제도가 생겨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 책과 내가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인 것 같고, 내가 평소에 연애와 결혼에 대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일본에서 3개월만에 50만부가 팔렸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정말 젊은 세대에서 결혼이라는게 각자를 구속하는 수단일 뿐인 것인지 등등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