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4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이다지도 유머없는 만화는 그다지 없다.
이 작가의 전작인 이나중 탁구부가 엽기유머의 극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나중 탁구부나 그린힐, 크레이지 군단에서부터
이 작가의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시선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다지도 적나라하지는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도 피해받지 않는 두더지처럼 숨어사는 생활이
유일한 꿈인 염세적인 중학생 스미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나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거리로 나서 자기보다 나쁜 사람을 찾아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면죄부를 얻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던 중학생 스미다.
 
염세적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현실부터 따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그런데도 스미다는 충분히 암흑에 가득차있다.
상황의 갑갑함도 있겠지만, 스미다의 인생에 가득찬 차가운 암흑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미다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결국 중학생은 중학생.
세상에서 자기보다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결론내리고는,
자살해버리는 이 중학생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결국은 중학생으로
한켠으로는 마음이 여려, 자기자신에게 상처받았던 것이다.
 
가끔씩 스미다 같은 아이들을 본다.
어린 나이에, 꿈도 희망도 그 무엇도 남지 않고,
(차라리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열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인생에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끔 볼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볼때마다 "살아"라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어떤 가치는 찾을수 있다고.
얼마 살지도 않은 주제에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지옥속에서도 꽃을 찾을수 있는건 마음먹기에 따른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후루야 미노루의 시선은 나와는 정반대로,
"그렇다면 죽어버려."였다.
 
나는 꽤 냉소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 만화를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긍정적인 인간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슨 만화가 이다지도 숨통을 조일정도로 괴롭도록 현실적이란 말인가.
읽고 나서 머릿속에 "명작"이라고 선명하게 써졌으나,
이 괴로움은 어쩐단 말이지.
괴로워서 잊어버릴때까지 다시 읽지 않으려고 책장에 그냥 꽂아놓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새 세번이나 다시 읽어버렸다.
 
아아...
이 사람.
천재다.
정말, 정말로,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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