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밖에 들리지 않아
오츠 이치 지음, 서승연 옮김 / 나무와숲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외로워한다.
때로는 곁에 사람이 없어서, 또 때로는 곁에 사람이 있어도.
책을 거듭해서 볼때마다 소심한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게하는 오츠이치의 단편집 "너밖에 들리지 않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정확히는 어디 의지할 곳없는 외톨이이거나,
소심한 성격이나 초월적인 정신세계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번에 읽은 <쓸쓸함의 주파수>보다 훨씬 쓸쓸하고 섬뜩한 기운이 드글드글 도사리는
가장 오츠이치다운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수작이다.
 
<Calling you>에서는 핸드폰을 가지고 싶은 소녀 료우가 등장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테마곡 Calling you가 벨소리로 울려퍼지는 하얗고 매끈한 핸드폰을 가지고 싶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그녀가 가지지 못한 이유는 전화해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도 없고, 전화해줄 사람도 없고.
마음속으로 핸드폰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의 핸드폰으로 어느 소년이 전화를 건다.
드디어 미쳤구나,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어버리다니...라고 생각하는 료우.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던 소년과 만나기로 한 료우는 두 사람 사이의 시간에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실제로 만나기로 한 소년 소녀는 기이한 운명에 휘말리게 된다.
대충 시간떼움용으로 읽어보려고 했다가  "앗!!"하게 되고 좀 더 책에 빠져들게 만든 첫번째 단편.

두번째 단편 <상처>에는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는 소년이 등장한다.
그만큼 포용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옮기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소년 아사토는 아파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옮겨놓고,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선택하고,
아사토와 친구가 된 주인공 '나'는 증오하는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되자,
아사토가 타인에게서 받아온 상처들을 반쯤 죽어있는 아버지에게 옮겨버리자는 섬뜩한 제안을 한다.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는 초월적인 포용력을 가진 소년.
착하고 못된 것의 문제에 앞서, 자신의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소년의 모습은 상당히 마음이 아프게 만든다.
타인을 끌어안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쓸쓸함으로 가득찬 단편이다.
 
마지막 단편 <꽃의 노래> 역시, 별 기대감을 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던 단편이다.
어느 병원, 커다란 고목아래 피어있는 꽃속에 아주 작은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꽃속의 소녀는 늘상 눈을 감고, 나즈막히 노래를 부르는데,
아픈 사람들로 가득찬 병실에서, 꽃속의 소녀는 삶의 희망이 된다.
꽃속에 사람 얼굴이 들어있다니...엉뚱하고 엽기적인 발상이지만, 후반부에 얘기를 아우르는 반전이 있어서
다소 붕 떠버린 것같은 이야기가 정돈되는 느낌이 드는 단편이다.
 
단편속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어디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들이다.
스스로가 외톨이임을 자각하는 것이 어딘지 자학같아 보여서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 단편들은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외로움에서 태어난 환타지가 아닐까.
재밌고 즐겁기도 했지만, 정체를 알수 없는 쓸쓸한 여운을 남겨놓는 오츠이치 다운 고독환타지.

책 뒷편에 실리는 단편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듣다보면, 오츠이치가 점점 귀엽게 느껴져서 읽을때마다 미소를 짓게된다.
솔직도 하시지, 지난번 <쓸쓸함의 주파수>에서는 시간에 쫓겨 마구 지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했지만,
이 책의 단편들은 대부분이 현실도피용으로 지어진 단편들임을 시인했다.
몽상가다운 기질때문인지, 역시 현실도피용으로 만들어진 단편들의 퀄리티가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할수밖에.
N소설같은 느낌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편집에의 불만은 있지만, 내용만은 알차다.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런 이야기들을 읽을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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