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캄보디아에서의 1달러
캄보디아에서는 1달러의 힘이 세다. 앙코르와트의 도시인 씨엠립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1달러의 위용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비자와 입국을 담당하는 심사대를 통과하려면 1달러의 웃돈이 필요하다. 일렬로 앉아 있는 담당자들은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원딸라’를 외친다. 입국 수속 때 웃돈이 필수처럼 따라붙는 곳이 이곳 캄보디아란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은 터라 요구하는 그들에게 1달러씩을 헌납해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다. 입국을 하려는 누구나 그런 과정을 겪는다. 웃돈을 주지 않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입국 지연을 시키기 때문에 팁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불합리한 관행조차 그 나라의 문화려니 하는 마음이 있어야 편한 여행이 된다.
캄보디아에서 1달러는 어디서건 유효하다. 호텔 매너 팁은 당연한 거고, 급할 때 도움을 주던 현지 보조 가이드에게도 1달러,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꼬마 악동에게도 1달러, 수상가옥촌 배 위에서 앵벌이하던 아기에게도 1달러. 그렇지, 전신 마사지하던 안마사에게는 고마운 나머지 5달러의 팁을 건네기도 했구나. 그러고 보니 입국 심사 때만 강제적 팁이지 나머지는 스스로 우러난 팁의 행렬이었다. 단 며칠간의 씨엠립 여정은 그렇게 1달러에서 시작해 1달러로 끝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버릇 되는데다 자생력을 잃게 하니 팁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자생력은 정치적 여건이 만든다.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을 다그칠 수는 없다. ‘기브미 초코렛’을 외치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때도 초콜릿을 건네는 쪽이 옳았지, 자생력 운운하며 때 묻은 고사리 손을 외면한 쪽이 옳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조적 가난과 부패 앞에서 백성은 언제나 무죄이다. 오직 정치에 그 죄를 물을 일이다. 애절하게 구걸하든 교묘하게 강탈하든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 단죄의 제일 대상은 백성을 방치하거나 그 상황을 즐기는 정치세력일 뿐이다. 잠시 본 캄보디아는 1달러의 힘에 갇혀 있는, 아직은 가난한 나라였다.
맨발의 순정한 눈빛들, 1달러가 목적이다.
사원 입구에서 큰 소리로 글 읽는 귀요미 아해들. 역시 1달러를 위해.
수상가옥촌의 원딸라 아기.
캄보디아 빈민 또는 베트남 보트 피플 출신으로 이루어진 톤레샵 호수의 가옥촌.
오빠는 노 젓고, 여동생은 원딸라 손짓하기.
수많은 사원 중 최종 목표점인 앙코르와트 원경.
2. 옵션 인생
알라딘 친구 아롬님이 새 차를 샀다. 와우, 그것도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남편분을 위해 통 큰 선물을 했다나. 부러워라. 어디 흠 잡을 데 없는 아롬님. 비슷한 연비의 도요타나 혼다에 비해 조금 싸기도 하고 애국도 하고 싶어 산타페를 샀단다. 친구의 선택에 무조건 힘을 실어주었다. 국내에서보다 괜찮은 가격인데다 서비스에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십여 년 이상 그 차종을 몰았던 남편도 별 불만이 없더라는 말로 나는 아주 잘 샀다고 응원을 했다.
근데 아롬님 말이 의미심장하다. 차를 사긴 했는데 사기 당한 기분이란다. 알람 장착하고 방수 코팅하고 등등, 약간씩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차 값이 올라갔기 때문.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현실이 그러므로 나는 이런 카톡 문자를 전송했다. “기본으로 시작해 옵션으로 끝나는 게 인생이다.” 라고. (이 말 써먹어도 되냐고 하는 아롬님께 맘껏 그래도 좋다고 했다. 나 역시 써먹을 거라 했다.ㅋ)
그렇다. 짧은 여행에서도 그런 걸 느낀다. 패키지여행의 최대 묘미는 싼 값으로 편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다. 항공료도 싸고 숙박비도 할인이 된다. 자유 여행에 비해 움직임이 타이트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자유여행에서 느껴야 할 불안이나 압박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고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는 패키지여행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하지만 패기지 여행의 최대 약점은 바로 옵션이다. 관광지마다 상점을 순회하는 것이 애교 섞인 불만이라면, 관광 코스를 덤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뭉근한 압박이 된다. 이럴 경우 나는 심리적 · 신체적 위해가 걱정 되지 않는 한 무조건 옵션을 선택한다. 어차피 여행사에는 옵션 항목 전제하에 일정을 짠다. 그러니 옵션 사항보다 나은 일정을 감행할 자신이 없으면 그 일정을 따르는 게 속편하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옵션은 기본에 없는 쾌락이나 즐거움을 수반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옵션을 택할 이유는 없다. 내 책무를 줄이고 싶을 때 기본을 속삭이고, 내 위안을 구하고 싶을 때 옵션을 외치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기본 없는 시작 없고 옵션 없는 마감 없는 게 생이더라. 중요한 건 기본이든 옵션이든 한 번 택했으면 그걸 즐기면 그만이라는 것.
앙코르와트에서의 소년 스님의 망중한. 저 눈빛을 담은 것만도 감사한 일.
수상가옥촌의 젊은 엄마 사공. 미소가 선하다. 주민들이 젊은데다 아이들이 많아서 의외였다.
이행나무, 라고 가이드가 말하던데 사원마다 높이 솟았다.
앙코르와트 측면 근경.